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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곱슬머리앤 Aug 10. 2023

그래도, 죽을 때까지 살림은 하기 싫은 것





살림 (housekeeping)


1. 한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

2. 살아가는 형편이나 정도.

3. 집 안에서 주로 쓰는 세간.




 결혼 10년 차. 살림 10년 차. 아니, 솔직히 결혼하고 2년은 살림이라고 하기 뭐 하니까 살림 8년 차라고 해두자.

어릴 때 상상했던 나이는 20대까지였다. 30대 이상은 떠올린 적이 없었다. 그런 나이를 훌쩍 너머 나이 40이(6월부터 40이란다ㅎㅎ) 되었는데, 우리 집 세간 살림들을 돌아보며 문득 지난 10년의 시간 동안 내가 내세울 수 있는 커리어는 무엇일까 자문해 봤다.

 엄마로만 사는 게 싫어서 나름대로 여기저기에 손, 발을 걸치고 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나는 여전히 그리 뛰어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그런 존재로 있다. 20대가 되면 커리어우먼이 되어 있을 거라는 막연한 바람과 성공한 여성의 이미지를 떠올렸던 나의 10대에게 미안하기만 하다.


 그래도 하나, 꾸준히 차곡차곡 쌓아간 게 있다면, 살림하는 능력이 아닐까?

 아니 살림이 무슨 능력이냐고, 경력이냐고.

 먼저 우선, 살림도 경력이 될까?를 생각해 봐야겠다. 사전적 의미의 살림은 꽤 중차대하고, 어마무시한 일이다. '한 집안을 이루어 살아가는 일'이라는 게 가장 첫 번째 뜻이다. 갑자기 어깨가 으쓱해진다. '살리다'의 줄임말이 살림이라는 글귀도 어느 책에서 봤었다. 그러면 정말 살림도 능력이자 경력이 될 수 있을까?


 살림경력이 정말 경력이 되려면, 실은 그 노동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쓸모 있는 일이 되고, 갖고 싶는 직업이 되고, 누구나 잘하고 싶어 하는 일이 될 거다. 하지만 '살림'하는 일을 정말 돈을 벌어다 주는 '일'로써 존중하거나, 그 '기술'에 관심 갖는 이는 거의 없다. 거의 99프로는 잘 나가는 남편 혹은 와이프가 일하러 간 사이 그들이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내조한 그 누군가가 살림에 쏟은 시간, 노동력, 손길에는 대체로 관심이 없다. 단지 그 누군가의 남편 혹은 마누라의 직업, 소득, 어떻게 그렇게 성공했나에만 관심을 갖는 게 현실이다.


 물론 최근에야 조금씩 가사노동에 대한 노동의 가치와 이를 임금으로 환산했을 때 얼마나 되는지, 그러니까 "집에서 노는데 이것도 못해?!", "살림이나 해", "밖에 나가서 돈이나 벌어와."라는 말들이 구시대적인 발상을 하는 개**라는 걸 요즘은 인정하는 분위기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는 그 누군가의 노동은 지운다. 집에 우렁각시 한 명씩은 존재하는 셈 친다.

 10년의 시간 중 전업주부로 7할, 나머지 3할은 밥벌이하는 와이프 혹은 엄마로 지냈다. 그래, 그럼 너는 살림이 그리 중하면, 집에서 살림만 하지 3할은 뭐냐 묻는다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나에게 살림을 한다는 건, 우선 안정감을 주는 일이었다. 내가 사는 공간이 온전히 나를 위한 공간이기를 소망했던 나는 결혼 후 마련한 내 집도 아닌 전셋집을 정성 들여 치우고, 꾸미고, 취향껏 세간 살림을 골라 채우는 일이 좋았다. 부모님과 살 때 방과 책상을 나의 우주들로 채워 넣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만족감이었던 거 같다. 누군가의 통제 없이, 살아온 습관과 흔적들을 고스란히 드러내어도 되는 게 살림이었다. 물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나를 포용해 주었던 신랑 덕분이기도 했다.

 살림에는 크게 집청소, 설거지, 요리, 장보기, 빨래, 정리정돈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정리와 청소는 가장 하기 싫으면서도 가장 좋아하는 살림 중 하나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고?!


 나는 정리정돈 된 공간에 있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바닥은 좀 지저분해도 좋은데 정리와 청소를 하고 난 비워진 그 공간 안에서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그 순간이 좋다. 그리고 있어야 할 자리에 딱 들어맞아 자리한 물건들을 보는 게 좋다.

 매우 귀찮은 일이면서도 다 하고 나면 즉각적인 안정과 만족감을 주는 게 바로 정리와 청소다.


 정리에도 법칙이 있고, 청소에도 순서가 있다는 걸 살림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정리와 청소를 잘하려면 가족원들의 동선과 습관, 라이프 스타일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일을 두 번 하지 않고, 그 사람과 싸우지 않는다.  그리고 깔끔한 집이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총량의 법칙을 지켜야 한다는 거다. 물건을 둘 공간도 없는데 싸다고, 할인한다고, 1+1이라고 무작정 쟁여두는 것은 정리와 청소가 싫어지는 지름길이다. 전자제품을 사든 가구, 생활용품을 사든 우선은 관리하는데 손이 많이 가는 건 아닌지, 둘 공간은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그래야, 사고 나서 스트레스가 없고, 버려지는 일이 적다.

 그에 비하면 음식 하기. '요리'는 만족도가 떨어진다. 청소와 요리 중에 무엇을 할래 하면, 나는 청소를 고른다. 사람에게 먹는 게 참 중요하다는 걸 알고, 그걸 지키려고 하면서도 부엌에 서서 재료를 손질하고 양념하고 다듬고 그릇에 담아내는 그 과정이 참 지난하다. 왜 그런지 모르겠다. 그 자체가 즐거움인 사람도 있을 텐데, 나는 빨리 해서 먹어 치워야 할 일이라는 강박이 더 커졌다. 물론 신혼 때는 안 그랬다. 그때는 아마 음식 하는 일이 소꿉놀이 같은 일이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매일 3끼가 아니라 하루 한 끼 혹은 주말에 2~3끼 2인 식구 해서 먹는 것쯤이야, 그때는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 음식을 해서 먹는 일은 숙제가 되어버린 거 같다. 요즘은 음식을 하기 싫어서 장을 안 본 적도 있었다. 대부분 주부들은 냉장고가 꽉꽉 차 있어야 안 불안하다는데, 나는 꽉 차있는 냉장고 앞에 서면 마치 쏟아져 내려오는 테트리스 조각들을 어디에 맞춰야 할까 고민하다가 게임오버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늘 냉장고는 반쯤만 차있게 하는 게 좋다. 꽉 채워놓다가 모르고 또 사서 버리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그래도 가끔은 배달의 유혹을 뿌리치고, 냉장고에 있는 남은 몇 가지 재료로 한 끼를 만들어 내는 날이나 장을 보지 않고, 도장 깨기 하듯 자투리 채소들과 식재료들로 메뉴를 생각하고 하나하나 차려내면 그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깨기 힘들었던 라스트 퀘스트 하나 깬 기분이랄까?


 하지만, 살림하는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즐겁지가 않다. 그 이유는 뭘까?


 아마도 살림은 어디서부터가 시작이고, 어디까지가 끝인 건지 맺고 끊음이 없는 지난하고 더딘, 반복된 일이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보상과 결과에 익숙한 요즘 우리에게 그런 면에서 살림은 매력을 느끼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가사를 줄일 수 있을까', '음식하느니 외식하고 그 시간에 더 생산적인 일을 하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 특히나 아기를 낳고 키우게 되면 살림의 강도는 상상 이상으로 커진다. 육아를 얹은 살림을 해 본 사람이라면, 가정을 살리려다 내가 죽겠다 소리가 나도 모르게 입에서 튀어나와도 욕할 수 없을 거다. 종종 출근하는 게 더 좋다는 엄마 혹은 아빠들 이야기를 들으면 조용히 '나도 출근하고 싶다.'소리가 나온 적도 많으니까.

 또 하나의 이유를 들자면, 앞에서 얘기했던 살림에 들인 나의 시간과 노동을 돈으로 보상받지 않기 때문이다. 이 얘기가 좀 불편하게 들리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게 가장 그 이유의 본질임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살림을 하면서 또 다른 재능을 발견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자아실현을 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전업주부로 살림만 하다가 자신의 진짜 능력을 발휘하고 성공하는 분들도 정말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살림하는 일은 아직도 가정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과 같다. 그래서 살림은 가정을 꾸려나가는데 가장 중차대한 일임이 분명한데도 어딘가 모르게 하다 보면 맥이 빠진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죽을 때까지 살림은 하기 싫은 것이라고 외쳐버린다. 그렇게라도 해서 살림의 늪에서 빠져나오싶다. 10년을 했어도 살림은 여전히 어렵고, 마음먹어야 하는 일인 걸 보면 말이다.

 그래도 살림이라는 글자를 다시 곱씹어 본다. 먼저 살림은 정말 나를 살렸다. 때로는 지루하고 티도 나지 않는 일들을 꿋꿋이 하고 있는 걸 보면 정말 그런 거 같다.

 살림한다고 누가 돈을 주지는 않지만 대신 그 시간은 내가 다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시간을 잘 분배하여 쓰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주어진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안 읽던 책도 보고, 블로그로 부업도 하고, 글도 썼다. 설거지는 어떤 순서로 하는 게 좋은지, 그릇정리는 어떻게 하는 게 편한지, 어떤 살림들을 고르는 게 좋은지 등등 종갓집 며느리의 요리비책까지는 아닐지라도 이제 막 결혼한 새댁에게는 막막할 수 있는 살림에 도움이 될 만한 팁 몇 가지는 알려줄 수 있는 지혜도 얻었다.

 그리고 살림은 정말 가정을 살리는 일이 맞다. 바깥일을 하는 양반이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신체로 일할 수 있게 영양을 공급해 주고, 안락한 공간을 위해 청소도 신경 쓴다. 외출 시 비교적 깔끔한 차림새로 옷을 찾아 입고 나갈 수 있게 해 주며, 본인의 커리어와 업무에 매진할 수 있도록, 아이 공부, 학교생활, 양가식구 대소사 등등도 챙긴다. 물론 살림은 가정에서 한 사람이 전적으로 도맡아 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으레 맞벌이의 경우라도 살림의 주도권을 가진 사람이 있게 마련이니까 그렇다. 그런 경우엔 각자 잘할 수 있는 살림이 있다면 나눠하는 게 서로의 건강을 위해 좋다.


그럼, 다시 돌아와서. 살림하는 능력이 경력이 될 수 있을까. 나는 될 수 있다에 손을 들겠다. 그 안에서 내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걸 잘 다듬어 내 준비하고 있다 보면 분명 언젠가는 기회가 있을 때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살림의 영역이 시작과 끝이 없었던 만큼 경력이 된 살림의 형태 또한 한정 지을 수 없을 거다. 그만큼 의외로 블루오션의 영역일 수도 있다.


 죽을 때까지 하기 싫은 살림인데, 10년 정 붙이고 하다 보니 좋은 점이 꽤 여럿 있다. 어쩌겠나, 오늘도 꾸역꾸역 해야지. 그게 살림의 매력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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