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산예 Aug 08. 2024

프롤로그 -내 사랑 애용: 첫 만남


정원에서의 첫 만남     


애용이를 처음 만난 건 2017년 우리 집 정원에서다. 

가드닝이 취미인 내가 정원에 나무를 심고 잔디를 깔자, 작은 정원에는 새와 벌레들이 모여들었고, 그 뒤를 따라 길고양이들도 찾아오곤 했다. 그중 하나, 특별한 고양이가 눈에 띄었는데 평범한 길고양이들과는 달리 중성화된 품종묘였던 고양이. 동네 어르신의 말에 따르면, 누군가 이사를 가며 고양이를 버리고 갔다고 한다. 

그중 한 마리가 이 고양이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한 집에 가족처럼 살다가 이사 갈 때 버리는 짐처럼 키우던 녀석을 위험한 길바닥에 버리고 간 것이다. 어쩜 그렇게 나쁜 사람들이 있을까?     


처음엔 다른 고양이들처럼 연못에서 물을 마시고 사라지던 고양이. 하지만 깨끗한 물과 사료를 제공하자 도망만 가던 녀석은 점점 우리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얼굴이 익숙해지자 언제부턴가 정원의 단골손님이 되어버린 녀석이다.     


정원 속 모험을 즐기는 애용이. 이럴땐 정말 퓨마같다.



특별한 순간


어느 날, 외출 준비 중이던 내게 고양이가 다가와 다리에 몸을 비비더니 벌러덩 누워버렸다. 드디어 마음을 연 것일까. 고양이가 먼저 다가와 준 덕분에 우리 사이에 유대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애용이를 처음 안아본 순간이 생생하다. 예전에 고양이를 키운 친구 덕분에 고양이가 낯설진 않았지만, 여전히 할퀴지 않을까 불안했었다. 무릎에 앉길래 얼굴을 긁어 주었는데 이내 눈을 감고 그르렁 거리기 시작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사람 손길 이었을까. 그런데 눈을 깜박거릴 때마다 보이는 희번덕한 눈꺼풀이 이상해 보였다. 병원을 데려가야 하나 걱정을 하며 검색해 보니 고양이 안구보호를 위해 있는 눈꺼풀이었고 지극히 정상이라는 걸 알게 됐었다. 그만큼 정상인지 아닌지 모를 정도로 나는 고양이에 대해 무지했었던 것이다. 



녀석의 이름은 애용     


당시 내가 외출만 하려 하면 어디선가 나타나 "애용~" 하고 달려와 인사를 했다. 야옹인지, 애용인지 헷갈리지만, 분명 나를 부르는 소리다. 그렇게 나도 녀석을 부를 때마다 "애용"이라 했더니, 어느새 이름이 애용이가 되어버렸다.      


웃긴 건, 내가 한창 빠져 있던 좀비 웹툰 속 주인공의 반려묘 이름도 애용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녀석의 소리가 '야옹' 보다는 '애용'으로 들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렇게 해서 우리 집에 애용이가 탄생한 것이다.

                     

집 정원에 피어난 능소화와 함께



비밀스러운 동거


첫 만남 당시는 작업실이 집 밖 별채에 있어서 애용이를 작업실에 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몇 개의 계절을 작업실과 정원, 온실에서 지냈고 세 번째 겨울이 오자, 결국 애용이를 한 평 남짓한 내 방으로 밤마다 몰래 들이기로 결심했다. 아무래도 위생문제가 있다 보니 한 번도 씻기지를 않은 고양이를 집안으로 들여 한방에 같이 잔다는 게 내키지는 않았다. 소리 내서 울진 않을까,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침대 위를 올라오는 건 아니가 하는 걱정들도 앞섰지만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워서 실내로 들이기 마음먹었다.      

방으로 처음 들인 날 밤, 애용이에게 조용히 말했다.     


"애용아, 여긴 할아버지(나의 아버지)가 있으니까 절대 소리 내지 마. 

 들키면 너나 나나 쫓겨나는 거야."     


동물을 좋아하시지만 집안에 들이는 걸 탐탁지 않아 하시는 아버지 몰래 더러운 고양이를 방으로 들이는 건 나에겐 큰 부담이었는데 신기한 건 이 녀석이 알아들은 건지, 혹은 추위에 몸 고생을 해서인지 밤마다 방에 몰래 들여도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정해준 자리에 그대로 누워 항상 조용히 잠만 잤다는 거다. 

어떻게 이렇게 기특할 수 있을까!     



드러난 비밀


그렇게 낮에는 밖으로, 밤에는 집안으로 들이는 아슬아슬 위험한 동거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화장실에 가느라 문이 살짝 열린 틈을 타 애용이가 거실로 나갔던 모양이다. 다음 날 아버지께서 고양이를 발견하고는 크게 한 소리 하셨다. 그렇게 안면을 튼 후에는 어찌어찌하여 이젠 집안에 눌러앉아 외출하는 냥이로 우리 집에서 5년째 지내고 있는 중이다.     



생각지도 못한 인연


애초에 동물을 키울 생각은 없었다. 집을 자주 비우는 데다, 초등학생 시절 키우던 강아지를 끝까지 책임지지 못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고양이 한 마리가 내 인생에 들어오다니,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이런 걸 간택이라고 하는 걸까. 


아버지는 가끔 나이 든 고양이라고 면박을 주시지만, 내가 없을 때는 사료를 챙겨주시는 츤데레 스타일이시다. 애용이는 영특하게도 아버지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현관문 앞에서 강아지처럼 반겨주곤 한다.

선을 지킬 줄 아는 고양님인 것이다.      


애용이는 하루 루틴이 마치 군대처럼 딱딱 맞아떨어지는 영리한 고양이다. 밥 달라는 타이밍은 물론이고, 나를 졸라댈 때의 눈빛과 목소리는 사람을 조정할 만큼 영특하다.  2017년에 처음 만났을 때 이미 성묘였으니, 대충 계산해 보면 올해로 최소한 10년은 되었을 나이다. 고양이 나이로 따지면 사람 나이 50대 중반, 말 그대로 중년의 품격을 갖춘 고양이인 셈이다.     


최근 애용이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잠도 많아지고, 뱃살은 마치 작은 베개처럼 축축 처지고 있다. 

하지만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그 특유의 깐깐한 성격과 요구는 사라지지 않았다.     


애용이와 함께하는 일상은 특별하지 않은 듯 특별하다. 

이 중년 고양이의 독특한 매력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이제 소소하게 시작해 보려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