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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예 Aug 11. 2024

집사와 애용이의 일과


집사의 하루     


나는 저녁형 인간이다. 말 그대로 아침 늦게 일어나고 새벽까지 깨어있길 좋아하는 전형적인 올빼미스타일이다. 그런데 말이지, 아침 7시만 되면 누가 나를 호출하는 소리가 들린다.    

 

“왜애용....왜용...”     


눈도 못 뜨고 비몽사몽 현관문을 열어주는 이 기막힌 루틴은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그렇게 다시 잠에 빠져든 후 두 시간이나 지나서야 겨우 기운을 차린다.      


그 사이 애용이는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다. 몸 구석구석을 전용 타올로 야무지게 닦은 후 녀석은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열심히 글루밍 한 다음 꿈나라로 직행한다.      

  

겨울 나른한 오후의 애용


점심쯤 집을 나서서 식사와 커피를 마시고 돌아오면,  녀석이 슬슬 깨어날 시간이다. 집안에 들어서면 애용이는 특유의 심드렁한 표정을 지어 보인 후 이내 기지개를 켠다. 그렇다. 이제는 애용이의 가장 최애 시간인 마사지 시간이다. 현란한 손놀림으로 리듬을 타며 엉덩이를 두드리고 얼굴을 긁어주면, 녀석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고양이가 된다. 하지만 내가 강도를 조절 못하면, “왜애용~!” 하는 경고가 날아온다. 고양이 비위 맞추는 게 쉽지가 않다.    


마사지를 받은 뒤에는 잠깐의 휴식, 그리고 애용이의 오후 외출 시간이다. 두 번째 외출은 저녁시간까지 꽤나 걸리므로 나는 그동안 집안일과 작업실 일을 끝내고 다녀온다. 돌아와 보면 애용이는 대문 위에서, 혹은 정원 한구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도 몸을 타올로 정성껏 닦아주고, 습식도 챙겨주며 마사지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제는 내가 고양이 스케줄에 맞추는 건지, 애용이가 내 스케줄에 맞추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잠들기 전 애용이는 흐르는 물로 물을 가득 마시는 습관이 있다. 고양이치곤 음수량이 굉장하다. 고양이가 물을 안 마셔서 고생하시는 집사들을 보면 난 정말 복 받은 집사이긴 하다.      


그렇게 한참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면 꼭 새벽 4시쯤 다시 깨운다. 물을 틀어 달라는 거다. 이 습관을 없애기 위해 정수기만 5개를 바꿔봤지만, 수도꼭지 물이 아니면 마시지 않는 이 고양이, 정말 물에 있어서는 까다롭기 짝이 없다.     


그렇게 잠자는 동안 두 번의 부름과 하루 중 두 번의 외출이 애용에게는 중요한 루틴이다. 물론 이 루틴은 오직 여름뿐이며 추운 겨울엔 시간만 좀 다를 뿐 외출의 빈도수와 물 마시는 패턴은 거의 일정하다. 고양이들이 자기들만의 루틴과 일상에 맞추어 산다고 하지만 이 놈은 정말 지독한 파워 J 고양이 임이 분명하다.               


      

애용이의 하루     


나는 전형적인 파워 J 고양이다. 아침형 인간... 아니, 아침형 고양이랄까? 밤 11시쯤 깊은 잠에 빠지지만 새벽 4시가 되면 목이 말라 잠깐 눈을 뜬다. 그런데 집사 녀석은 아직도 꿈나라에 있지 뭐야? 하, 이래서 내가 직접 깨워야 한다.     


“야, 일어나라냥... 야...”     


억지로 잠에서 깨어나 물을 틀어주는 집사. 이제는 뭐, 익숙한 듯 물을 틀어주고는 다시 잠자리에 든다. 물을 마신 뒤 조용한 거실로 나가본다. 이 시간, 이 공간은 온전히 내 것이다... 혼자만의 소울 타임이 지나면 다시 잠에 든다.     


아침 7시.

외출 시간이다. 요즘 날씨가 너무 더우니 일찍 나가야 한다. 하지만 이 게으른 집사, 아직도 자고 있다. 

다시 가서 깨워야 한다.     


“야, 일어나라냥! 나 나가야 한다냥!”     


비틀거리며 문을 열어주는 집사. 이제 내 하루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우선 정원 수도에서 물을 한 잔 시원하게 마신다.      



쾌냥의 물 마시는 법. 도대체 왜 저렇게 마시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촵촵촵~~!!     


얼굴이 흠뻑 젖을 정도로 한참을 마시고 나면  정원에서 지내는 손자뻘 되는 녀석들이 나와 인사한다. 

어른 공경할 줄 아는 놈들이다. 인사를 받고 건너편 정원으로 나가본다. 

집사가 내 아지트를 알아채고 나서부터는 좀 더 조심스러워졌다.

왜 이 인간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싶어 하는 걸까? 난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냥인데. 

동네를 한 바퀴 휘돌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서 잠이나 자야겠다.     



외출에서 돌아온 후 거실창문을 두드리는 애용씨



“문 열라냥! 내가 왔다냥!”     


잠깐의 아침 외출을 마친 뒤 집으로 와서 문을 두들긴다. 

집사 녀석이 수건을 들고 나타난다. 집에 들어가야 하니 수건으로 닦이는 건 피할 수 없지만, 

참으로 짜증이 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목마른 냥이가 우울을 파야지. 내가 참는다.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털을 단정히 정리한다. 피곤한 오전 일정을 마치고 이제 꿀잠 타임이다.    

 

......


얼마나 잤을까... 문이 열리고 집사가 돌아왔다. 기지개를 켜고 마사지를 유도해 본다. 손맛은 꽤 괜찮은 집사다. 한참 마사지를 받고 나서는 잠깐 사냥 놀이도 해준다. 내가 반응하면 집사는 신나서 더 애쓰지만, 난 일정이 빡빡하다. 정원도 지켜야 하고, 옥상, 건너편 정원, 동네 주변까지 다 돌봐야 직성이 풀린다. 요즘은 더위도 문제지만 몸이 예전 같지 않아 금방 지친다. 그래도 이젠 돌아갈 집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만족스럽다.               

순서대로 집 옥상 위를 순찰 중인 애용.  뒤 집 개와는 앙숙인 애용이. 담벼락에서 감시 중이다.  집 골목에서 만난 애용.   요즘은 외출할 때 목걸이는 필수다.   


노을이 지면 나는 옥상에서 하늘을 본다. 그렇다. 나는 노을을 즐길 줄 아는 낭만냥이다. 저녁은 온실에 항상 준비된 사료들이 있지만 허기만 조금 채우고 집사를 기다린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더 맛난 게 있다는 걸 나는 아니까.      


집사가 돌아오면 또 한 번 타올로 닦아주는데, 지긋지긋하지만 어쩔 수 없는 절차인 듯하다. 온몸을 닦고 나면 맛있는 습식을 먹고 마사지를 받은 후 집사 옆에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집사가 가끔 귀찮을 때도 있지만, 눈앞에 없으면 허전한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다. 집사는 알까. 이런 내 맘을... 집사가 방으로 들어가면 마지막 마사지를 받을 기회다. 화장실에서 마지막으로 물을 마시고 궁디팡팡 시간을 마친 뒤 집사와 함께 잠을 청한다.  오늘도 잠자리는 폭신하고 하루도 완벽했다. 집사를 보니 핸드폰 보다가 곯아떨어졌군... 많이 피곤했구나... 그럼 나도 자야겠다냥... 잘 자고 4시간 뒤에 보자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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