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의 백팩킹은 고단하고 피곤한 일들로 가득하다. 물 한 모금 마시기 위해 최소 30미터를 걸어가 필터로 정수해야 하고 운이 나쁘면 캠핑장에 도착하기 전 몇 킬로미터를 걸어 물을 구해야 한다. 화장실 문제는 더 복잡하다. 산속 캠핑장에 있는 사방이 뚫린 오픈 재래식 화장실도 곤욕스럽고, 등산 중 급한 용무가 생기면 등산로를 벗어나 20cm 깊이로 땅을 파고 야생동물의 습격을 대비하면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볼일을 봐야 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런 불편한 여행을 즐기는 걸까?
이유는 무궁무진하지만 나의 첫 장거리 등산은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었다. 사람의 흔적이 없는 미지의 자연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순수한 호기심 말이다. 그러나 그 호기심은 30분 만에 후회로 변했다. 종아리는 터질 듯이 아프고, 숨은 헐떡이며, 가방은 마치 돌덩이를 짊어진 듯 무겁게 느껴졌다. 호기심으로 시작한 등산 치고는 너무나 가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두 발로 걸어와야만 보고 느낄 수 있는 자연은 이내 큰 위안이 되었다.
이런저런 고생을 하고 산을 내려오면, 세상에는 수많은 기적들이 존재한다는 걸 경험하게 된다. 수도꼭지만 틀면 찬물과 뜨거운 물이 나오고, 자동차는 며칠을 걸어야 하는 목적지까지 단숨에 데려다준다. 그리고 찬바람이 나오는 에어컨까지, 그야말로 감동의 쓰나미인 것이다. 긴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가진 것들을 돌아보면, 주변에는 소소하지만 소중한 기적들이 가득하다. 편안한 집,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따뜻한 샤워 등. 이처럼 기적은 거대한 것이 아니라, 익숙함에 가려 미처 느끼지 못한 소소한 것들이 아닐까? 결국, 우리가 산을 오르며 얻는 것은 고생이 아니라, 그 고생을 통해 깨닫게 되는 일상의 기적들이다. 삶의 작지만 위대한 기적들을 깨닫기 위해 우리는 때때로 산을 오를 필요가 있다. 설령 그것이 진짜 산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자. 마치 냉장고를 다시 열었을 때, 그 안에 있던 아이스크림이 더 달콤해지는 것처럼 삶은 매번 새롭고 감동적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