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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J Jul 24. 2024

알래스카 유콘의 제레미 하우스

만남

 오늘은 여행을 하며 만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의 이름은 제레미, 2019년에 알래스카에서 만난 사냥꾼이다. 평소 계획적으로 여행을 다니는 나에게, 그의 거처에서 4박 5일을 머문 것은 꽤나 즉흥적인 결정이었고, 그 덕에 난 아주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겨울의 알래스카를 찾은 목적은 오로라를 보고 데날리 공원에서 캠핑과 로드 트립을 즐기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개썰매를 체험하기 위해 작은 가족 농장을 방문했는데, 그곳의 주인장이 제레미와의 만남을 주선해 주었다. 데날리 산에서의 캠핑이 짧게 끝나 아쉬움을 토로하던 차에, 주인장은 자신의 오빠가 운영하는 산장에서 머물러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한 것이다. 전기도 물도 없는 숲 속 오두막이라 불편함이 많겠지만, 정말 특별한 경험이 될 거라는 말에 우리는 목적지를 즉흥적으로 정했다.     


썰매를 끌고 오면 고기를 주는 방식으로 훈련이 되어 있어서 출발 전에 썰매개들이 흥분을 해서 난리였다. 썰매는 생각보다 굉장히 빨랐다.


그 오두막은 알래스카 가장 북단에 있는 유콘이라는 지역에 있었으며 북극권 Arctic Circle에서 굉장히 가까운 만큼 날씨는 혹독했고, 알래스카와 캐나다를 가로지르는 길이 3,017km의  유콘강이 흐르는 곳이었다. 페어뱅크스에서 약 5시간이 걸리는 곳으로 BBC가 선정한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도로중 하나로 선정한 달튼 하이웨이 Dalton Highway를 거쳐서 도착해야 하는 그런 곳이다.  


*북극권은 지구의 북쪽 끝 인근을 뜻하는 말로, 일반적으로 백야가 나타나는 북위 66도 33분선 지역부터 북극점까지를 북극 지방으로 본다. _출처 : 나무 위키     


왼쪽에 안내받은 주유소가 보이고 인디언 거주지 스티븐 빌리지 사이에 제리미가 살고 있다. 아마 여름이라 이동거리가 짧게 검색되는 듯하다.


떠나는 날, 썰매 주인으로부터 받은 정보는 전화번호도 주소도 아닌 오직 ‘유콘 리버 캠프 Yukon River Camp ’라는 동네 주유소 이름뿐이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서 유콘 다리를 건너면 바로 왼편에 주유소가 보인다며 절대 놓칠 수 없는 곳이라고 설명을 해 준 뒤, 그곳 주유소에서 유콘 제레미를 찾으면 된다고 안내해 주었다. 제레미가 거기서 일하냐고 하니 아니라는 답변이 온다.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당황스러웠다.      

‘유콘 제레미?? 그게 다라고???’     


“5시간을 운전해서 가는데 유콘의 제레미를 찾으라고?”     


마치 ‘아무개 동네를 가서 김서방을 찾아라.’와 같은 이 미션은 참으로 생뚱맞아 보였는데 달튼 하이웨이를 건너는 내내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었다. 5시간을 달려도 보이는 건 끝없는 설산과 눈에 뒤 덮인 나무들 뿐이었으니.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평소에 그 주유소 식당을 찾는 주민은 오직 제레미뿐이었고 대부분은 북극권을 가는 관광객들이 잠시 들르는 아주 조그마한 주유소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여튼, 썰매 주인은 가는 길 중간에 주유소도 없기 때문에 만약을 대비해서 차 기름을 넣을 수 있는 기름통을 사고 갈 것을 추천하였다. 우리는 겨울에 얼어붙은 비포장 도로 위를 몇 시간을 달려야 한다는 부담감에 사실 많이 망설였지만 궁금증이 증폭되어 다음날 간단한 간식거리와 함께 바로 출발하였다.    


 

달튼 하이웨이 Dalton Highway에서 보이는 풍경. 모든 것이 얼어 붙은 겨울왕국 그 자체였다.
달튼 하이웨이 Dalton Highway 꼭대기에는 눈에 쌓인 나무들이 가득했다.  저날 꼭대기의 온도는 영하 35도 정도였다.  
눈에 쌓인 나무의 형상들이 순례자나 세인트를 연상시켰다.



유콘으로 가는 길은 정말이지 험난했다. 하지만 드넓게 펼쳐진 자연풍경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설경을 보여줬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풍경과 지지직 거리는 라디오 주파수를 들으며 5시간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설명해 준 다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차를 돌려 주유소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식당까지 들어가는데도 어찌나 바람이 차고 매섭던지 다리가 후덜거렸다.      



유콘 리버캠프 식당




‘끼이익~’      


문을 열고 간단하게 인사를 건넨 뒤 우리는 유콘의 제레미를 보러 왔다고 설명했다.

( 말하는 동안에도 뭔가 나 자신이 굉장히 생뚱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웨이터로 보이는 사람이 잠시 기다리면 그가 올 것이라고 안내해 주었고 그의 몸짓과 말투에서 여기서는 그가 꽤나 유명인사인걸 넌지시 알 수 있었다.      


 간단한 요기를 하며 기다리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굉음.      


‘부아아아아앙~~~~~~~~’     


제트스키 한 대가 식당 앞에 주차되었고      


이내 문이 열렸다.          


아주 작은 키에 누가 봐도 며칠 아니 몇 년은 씻지 않은 듯해 보이는, 옷은 몇 겹을 입었는지 가늠 초차 할 수 없는 폭탄머리에 그가 들어왔다. 작은 체구였지만 드럼통을 삶아 먹은 듯 한 목청과 특유의 억양과 말투, 굉장히 소탈하고 에너지가 넘치던 그는 동생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다며 악수를 청하였는데 얼마나 일을 하였는지 새까맣게 묵은 때는 그의 겹겹이 입은 옷차림처럼 손에 여러 세월의 겹을 쌓은 듯해 보였다.      


만남부터가 충격적이라 다소 당황스러웠는데 그것도 잠시, 5분 뒤에 정신을 차려보니 제레미 등 뒤 제트스키에 몸을 실은 채 미치광이 속도로 숲 속을 달리고 있었다. 인생에서 처음 타 본 제트 스키는 그렇게 낯선 상남자 제레미 등 뒤였다.      


유콘리버캠프 옆 조그마하게 차려진 제레미의 기프트샵 앞에서 그날의 제트스키와 함께


어찌나 시끄럽고 빠르게 달리던지 주변의 풍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아니 날려드는 눈발에 얼굴 싸데기를 맞으며 있었기에 눈을 뜰 수 도 없었다.  제레미는 이곳에서 주민은 자신이 유일하고 집 주변 모두가 자신의 사유지이기 때문에 허락 없이는 아무도 여기를 들어올 수 없다며 괴성을 지르며 설명해 주었다. 버려진 제트스키들도 곳곳에 보였는데 고장 나서 그냥 버린 것들이라며 특유의  웃음소리로  깔깔거렸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눈길을 뚫고 도착한 곳엔 작지 않은 통나무로 지어진 오두막이 있었다. 아니 오두막이라고 하기엔 사이즈가 일반 집보다 컸다. 잠시 후 제트스키를 끄고 나니 그곳이 얼마나 평온하고 아름다운 곳인지 이내 눈에 들어왔다. 전선줄도 자동차도, 아무것도 없는 자연 속에 덩그러니 지어진 나무집이었다.      

통나무로 지어진 DIY 제레미 하우스



“왈왈!!”     


엄청난 크기의 개가 갑자기 달려들었다. 사냥개로 제레미가 키우는 도베르만 대니였다. 큰 개가 이리저리 날뛰어 반겨줬는데 어찌나 사이즈가 컸던지 꽤나 당황스러웠다.

     

이내 집 앞에 사냥하여 잡은 죽은 동물들이 옷장 속 하나씩 개어 놓은 옷가지마냥 차곡차곡 드럼통 위에 쌓인 게 눈에 들어왔다. 맙소사...  현대화가 되어가는 요즘 시대에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에겐 이것 또한 일상의 한 부분일 뿐. 낮에도 영하 20도 보다 낮은 알래스카의 겨울이었기에 냉장고는 산속에서 그저 사치스러운 물품인 건 확실해 보였다. 쌓인 사체들을 보니 멘탈이 탈탈 털리는 나의 내면적 소리가 크게 들렸다. 충격적이면서 신선하고 흥미로웠다. 내가 놀라워하는 걸 보고 제레미는 자신은 허가증을 가진 알래스카 전문사냥꾼이라며 친절하게 어떻게 사냥을 하는지도 설명도 해 주었다.      


(며칠 뒤 우린 그 사냥이라는 것을 함께 해 보기로 한다.)     


그러고 곧 시작된 집 투어.  통나무로 지어진 집은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가족들이 그 땅에서 자란 나무들을 일일이 깎고 다듬어 몇 년에 걸쳐 만든 집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집을 직접 만들다니. DIY의 끝판 왕이 알래스카에 있었다.


집안 곳곳에 멋드러진 여러 장식물들이 보였다. 사냥하고 뽑은 늑대의 이로 드림캐쳐나 모빌을 만들어 팔았고 주변에 버려진 사슴뿔들은 멋진 문 손잡이가 되었다.



게스트하우스는 나무로 지어져서인지 생각보다 아늑하고 따뜻해 보였는데 창밖으로 오로라를 보기 위해 크기가 큰 창이 여러 개 달려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손님을 위해 미리 드럼통 같은 난로에 엄청난 크기의 땔감 (땔감보다는 1미터 이상의 통나무가 맞을 듯하다)을 넣어둔 상태라 실내는 훈훈한 열기가 감돌았다. 1층의 공간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니 여러 개의 도미토리 형식의 침대들이 창밑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중에 그나마 괜찮은 자리로 자리 잡고 짐을 푼 뒤 다시 집 투어를 시작하였다.      



오로라를 보기 위해 큰 창으로 만들어진 오두막



여름에는 집 앞으로 흐르는 큰 유콘 강을 이용해 뗏목으로 생활품과 손님들을 나르고 이렇게 겨울에는 제트스키로 주유소를 왕복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이내, 게스트하우스와 연결되었지만 따로 지어진 자신의 주거공간도 함께 보여주었는데 거실 겸 침실과 조그마한 부엌, 그리고 동물의 가죽을 보관하는 공간으로 나누어진 그의 공간은 사람 냄새 찐하게 나는, 제레미의 외모만큼이나 확실한 캐릭터를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오로라를 보기 위한 게스트하우스 2층 내부



차례대로 제레미의 거실겸 침실, 부엌 그리고 가죽보관하던 장소


어느덧 저녁시간이 되었고 친절하게도 제레미가 준비해 준 음식으로 우리는 저녁을 함께 먹었다.

출발 전 여동생이 오빠에게 전해 달라며 건네준 사슴고기를 제레미에게 건넸다.

하지만 자신은 생고기로 요리한 음식은 안 좋아한다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럼 너는 사냥을 하는데 사냥한 고기는 먹지 않아?”   내가 물었다.

  

“에~ 난 그런 고기 싫어해. 신선한 거. 난 코스트코 냉동음식들을 더 좋아하지!!”   

  

맙소사...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친구와 나는 빵 웃음을 터트렸다.


뭐지...?? 이 사냥꾼의 모순된 일상은?     


제레미는 이렇게 삶 자체가 유쾌하고 취향 확실한 남자였던 것이다.


사냥한 고기감은 주변에 나눠주고 나머지는 대니가 먹는다며 너스레를 떨었고 자신의 주식은 달에 한 번씩 코스트코에 가서 사 오는 냉동음식들과 몬스터 에너지 음료가 다라고 깔깔거렸다. 실제로 며칠을 함께 지내다 보니 그에게 몬스터는 물과 같은 존재였단 걸 알 수 있었다. 그 만의 홀리 워터...

싫어하는 사슴고기는 결국 우리의 저녁이 되었고 다른 손님이 없었기 때문에 제레미와 우리는 늦은 저녁까지 함께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집 앞 풍경은 그야말로 광활한 자연 그 자체였다. 그 앞에는 제레미의 애견 도베르만 대니.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갑자기 뛰어나가 보초를 서는 중이다.


제레미는 해가 지고 나면 발전기를 돌려 최소한의 전기를  만들어 쓰고 있었다. 많은 DVD 영화들은 산속에서의 긴 밤을 위한 유일한 오락거리로 보였다. 자정이 되면 발전기마저도 꺼 버렸기 때문에 지내는 4일 동안 우리는 황금시간대를 노려 늘 핸드폰을 충전해야 했다.      



깊어져가는 숲 속에서



새벽이 되면 더 추워져서 오로라가 잘 보일 거라는 말에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고 새벽에 창문 밖을 여러 번 체크했었지만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행운은 오지 않았다. 잠을 설쳐가며 제레미 하우스에서의 첫날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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