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ay we boiled heads
오로라가 없었던 3번째 밤이 지나고 날이 밝았다. 이쯤 되면 오로라는 포기를 해야 하는 건가.
이 날은 집안에서 제레미의 일상을 쫓아가 보기로 한 날이다.
아침부터 주섬주섬 이것저것 차리던 제레미
플라스틱 통에 든 무언가를 가지고 왔다.
그 통 안에는 놀랍게도 가죽이 벗겨진, 꽁꽁 얼은 동물의 머리들이 들어 있었다.
그와의 일상은 이렇게 새롭고 충격의 연속이다.
끔찍한 비주얼들이었지만 평소 공포물에 적응된 나는 이내 평온함을 되찾았다.
“에~~ 오늘은 머리를 끓여야 해. 이를 뽑아야 하거든.”
제레미가 말했다.
머리를 끓이다니.
공포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대사를 천연덕스럽게 치는 제레미.
“아... 그래?... 그럼 우린 뭘 해야 해?”
최대한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며 물었다.
“뭐 별건 없어. 이 머리들을 냄비에 넣고 난로 위에서 삶으면 돼.
넘치지 않게 잘 보고 있으라고. “
이때, 대니가 고기를 보고 날뛰기 시작했다.
“쒸쒸~!! 대니!! 저리 가!!
머리를 끓일 때 제일 신나는 놈은 대니야.
고기 냄새 때문에 미치지 캬캬캬캬~~!!”
비현실적인 이 상황과 대니의 군침 흘리는 얼굴이 오버랩되면서 기분이 묘해졌다.
일단. 시키는 대로 난로에 장작을 가득 채운 뒤 머리가 든 냄비를 난로에 올린다.
얼마나 지났을까.
집안 전체에 고기 삶은 냄새가 가득했다.
냄새는 생각했던 고기의 냄새와는 사뭇 달랐는데 여러 종류의 동물들이 섞여 있어서 그런지
냄새는 일반 고기와는 다르게 불편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옆에서 군침을 흘리는 대니.
반나절이 넘게 머리 삶기는 계속되었고 그동안 집 청소와 통나무 줍기의 일상이 반복되었다.
한참을 삶았던 머리를 꺼내어 살과 분리된 두개골들을 꺼내 보이며
“이건 늑대... 이것도 늑대... 이건 곰...”
제레미가 선별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다 식은 두개골들은 작업대 위에서 턱뼈와 이빨을 분리하는 과정을 거쳤는데 몇 시간을 삶아도
이빨은 생각보다 단단하게 턱관절에 붙어있어 분리하기 힘들어 보였다.
그렇게 분리된 이빨에 드릴로 구멍을 뚫고 목걸이나 다른 액세서리로 만들기 위해 분리하며
하루의 시간이 꼬박 지나갔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아, 어디선가 여러 대의 제트스키 소리가 들려왔다.
제레미가 또 뛰어 나갔다.
창문으로 보니 3대의 제트스키와 여러 명의 사람들이 보였다.
20대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던 젊은이들이었는데 제레미는 긴장을 하였지만 자기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우릴 이해시켰다. 제레미에게 뭔가 필요한 걸 주문하는 듯해 보였는데 이내 자리를
잡더니 한참을 떠들다가 날이 어두워졌으니 하룻밤 신세를 지고 가겠다고 제레미에게 부탁을 했다.
손님이 있어서 안될 거 같다고 제레미가 달래는 걸 보았는데 무리 중 한 명이 이미 취했는지 꿈쩍을 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게스트 하우스로 옮겼다.
당황스러웠다.
어떤 사람들 인지도 모르는데 함께 방을 쓰고 밤을 지내야 하는 상황이 벌어져 버렸다.
마을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은 상태라 꽤나 걱정이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제레미도 당황하여 미안하다는 말만 연신 해 댔다.
당황스러웠지만,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며 그들이 위험해 보이지 않음을 확인했다.
어차피 우리도 이 집에 게스트일 뿐...
그렇게 제레미 집에서의 마지막 날 밤은 약간의 불안감을 가지고 오로라를 기다리며 보냈다.
밤중에 인기척이 들리면 화들짝 놀래긴 했지만 별 탈 없이 밤은 지났다.
아침이 되자 젊은 친구들은 일찍 떠났고, 우리도 오두막을 떠날 채비를 했다.
짐을 제트스키에 달린 썰매에 싣고 대니와 작별 인사를 한 뒤, 차가 주차된 유콘 리버 캠프로 이동했다.
멀어져 가는 제레미의 집을 보며 이곳에서의 여름은 어떨지 상상을 해 보았다.
눈으로 덮인 나무들은 여름이면 울창한 숲으로 변해 있을 테고
집 앞의 강은 녹아서 유유히 알래스카를 종단하고 있을 것이다.
그 위로 뗏목 배를 탄 제레미를 상상하니 도저히 여긴 다시 안 올 수가 없을 것 같다.
5일 동안 함께한 제레미와의 특별했던 시간은 긴 작별의 시간을 가진 뒤 마무리 되었다.
글을 쓰는 동안 많은 고민을 했다.
글 솜씨도 부족하고 순화해서 적다 보니 실제로 겪었던 일들의 현실감이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태평양을 건너 먼 알래스카의 야생 땅에서 야생의 남자 제레미를 만나 그의 삶을 함께 나눈 경험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
마지막 날까지 오로라는 보지 못했지만, 그래서 알래스카에 다시 가야 할 이유가 생겼다. 언젠가 다시 유콘을 갈 날을 기대하며, 오두막에서 무한한 친절과 특별한 일상을 공유해 준 친구 제레미에게 편지를 남기며 알래스카 이야기를 마친다.
친애하는 제레미에게
안녕?
그동안 잘 지냈니?
네가 기억을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한국에서 온 킴이야.
2019년 겨울에 ㅇㅇ와 함께 너의 멋진 집을 방문했었는데 넌 날 킴이라 불렀지.
너의 오두막을 방문한 것도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렸어.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알래스카에서 지냈던 멋진 시간들이 문득문득 생각이 나.
알래스카 기억에서 대부분이 너의 집에서 보낸 추억들이 가장 많이 나는 걸 보면
그 시간은 정말 인생에서 특별했던 것 같아. 소중한 기억들을 많이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아. 도로시와 너의 여동생 가족들도 잘 지내는지,
귀여운 대니는 아직 너의 곁을 지키고 있는지,
네가 그렇게 원하던 좋은 사람과의 결혼은 성사됐는지도 궁금해.
네가 아직도 게스트 하우스를 운영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녹음이 가득한 유콘의 계절은 어떤 모습일지, 언제쯤 다시 방문할 수 있을지 ㅇㅇ와 이야기를 하곤 해.
언젠가 기회가 되면 너의 뗏목을 타고 유콘강을 한번 건너보는 것도 너무 멋질 거 같아.
그리고 그때의 사진들을 너에게 보내주기로 했었는데 결국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
기회가 된다면 직접 전해주고 싶다. 언젠가 다시 유콘의 아름다움을 다시 볼 수 있길…….
그럼 몸 건강히 잘 지내고. 몬스터 음료는 조금만 줄여봐 친구.
언제 한번 꼭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한다!
그럼 다음에 보기 전까지 안녕!
친애하는 너의 친구
한국에서 킴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