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을 만났을 때의 대처 요령법
백패킹하며 사슴, 산양, 여우, 무스, 곰 등 정말 많은 야생의 동물들을 만났다. 야생에서 동물을 만나는 건 동물원에서의 감동 100배 정도쯤 될까. 사슴이 어떤지는 알고 있지만 야생에서 풀을 뜯는 사슴들의 모습은 등산 중 큰 기쁨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많은 반가운 만남 중에서도 위험한 순간들이 있는데 바로 곰들이 그러하다.
한국의 산에는 반달곰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곰을 만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면적당 곰의 개체수가 적기 때문 일 텐데 미국과 캐나다의 숲 속에서는 인간보다 곰의 개체가 압도적으로 높으므로 곰을 마주칠 확률이 굉장히 높다. 북미에는 흑곰, 갈색곰(회색곰 포함), 북극곰 등 세 종의 곰이 서식하고 있으며 숲 속에서 마주칠 수 있는 곰은 흑금과 갈색곰들이다. 그렇다면 곰을 만났을 때, 혹은 만남을 피하기 위한 행동원칙들은 무엇이 있을까.
10년간의 베어 컨트리에 여행하며 겪은 경험과 국립공원에서 권고하는 사항들을 바탕으로 정리해 보았다.
먼저 곰을 피하기 위한 행동 원칙들이다.
모든 야생동물은 위험할 수 있다. 특히 곰이나 늑대 같은 상위 포식자들은 100야드(91m) 이상의 거리유지가 중요하다. 만약 동물의 행동에 변화가 있다면 너무 가까이에 있는 것이므로 뒤로 천천히 물러나 것이 좋다.
특히, 새끼들과 함께 있는 어미들을 보았을 때는 그 즉시 자리를 피하는 것이 좋다.
어미가 보호본능 때문에 더 위협적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숲 속에서 등산을 할 때는 조용히 걷는 것보다 노래를 부르거나 박수를 친다든지 큰소리로 이야기하며 나의 위치를 동물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곰이 좋아하는 베리류가 가득한 공간에 들어서면 더욱 이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갑자기 곰을 만나면 사람도 당황하는 것처럼 곰도 갑자기 만난 사람들에게 당황하여 공격적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하이커들이 방울을 Bear Bell 가방에 달고 다니지만 경험상 방울보다는 컵이나 숟가락을 가방 밖으로 매달아 걸을 때마다 짜그랑 소리가 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한 번은 한국에서 가져와 선물해 준 작은 양은 냄비를 친구가 뚜껑과 함께 두들기니 곰이 시끄러웠는지 이내 자리를 피해 주었다. 소리를 낼 때는 목소리는 피치가 높은 여자 목소리보다는 저음의 남자 목소리로 크고 우렁차게 알려 주는 것이 옳다.
숲 속을 들어갈 때는 되도록 많은 인원의 수가 함께 움직이는 걸 추천한다.
실제로 2022년 JMT 당시, 여자 하이커가 곰을 발견하고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기다리다 우리와 합류해서 같이 움직였던 경험이 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음식이 모자란 숲 속에서 가방 가득 음식을 가지고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곰과 같은 포식자의 좋은 표적이 되기도 한다. 그룹으로 같이 다니며 큰 무리처럼 위장하여 곰을 피할 수 있다. 대부분의 나의 여행은 2인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늘 이런 부분이 고민이 되기도 하는데 실제로 위험한 순간들이 몇 번씩이나 있었다.
최소한의 보류로 준비하는 스프레이다. 실제로 백컨트리를 허가받을 때 베어스프레이는 옵션이 아닌 필수가 되는 장소들이 있다. 그런데 근래 추세는 스프레이가 크게 효과가 없으며 오히려 화를 더 부추긴다는 말들이 있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국립공원들이 필수로 지녀야 하는 아이템으로 권장한다. 필자도 초반에는 늘 지니고 다녔으나 근래에는 잘 들고 다니지는 않는다. 공원마다 규칙이 다르므로 꼭 체크해야 하는 부분이다.
곰은 후각이 예민한 동물이다. 하지만 바람이 역풍으로 불거나, 개울이 있는 경우 등 여러 환경의 여건 상, 하이커들이 주변에 온 걸 인지 못할 때가 있다. 명심하자. 동물은 당황하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므로 등산을 하는 동안 늘 주변을 경계하며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등산 중 보이는 곰의 배설물( 베리가 섞인 큰 배설물)이 보일 경우, 신속히 그 공간을 빠져나오는 것이 좋다. 특히 그 배설물이 따끈따끈한 신상(?) 일 때는 더더욱.
동물들이 가장 활발한 시간은 이른 아침과 해 질 녘이다. 그 시간을 특히 조심하고 곰이 좋아하는 식물이 있는 곳이나 환경이 있다면 특히나 조심해야 한다.
야생동물, 특히 곰으로부터 음식을 보호하기 위해 들고 다녀야 하는 음식보관함이다. 요즘은 가방형식으로 된 여러 종류도 있지만 패브릭으로 만든 걸 허가하지 않는 국립공원들도 존재한다. 가장 클래식한 방법은 두꺼운 플라스틱으로 만든 통 안에 음식을 보관하는 것이다. 두께 때문에 무겁고 둥근 원통형이라 짐을 쌀 때 가장 곤혹스러운 아이템이기도 하지만 필수이기 때문에 빼놓을 수 없다.
산행 중에 생기는 모든 쓰레기는 다시 가져와야 하므로 쓰레기 보관도 중요하다. 음식을 담았던 봉지나 코펠도 잠을 자는 텐트 속으로 절대 들여선 안 되는 아이템들이다.
화장품, 음식을 담았던 가방, 조리도구(깨끗하든 아니든), 여성용 제품, 심지어 물도 텐트에 들이면 위험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잠들기 전 항상 음식물이 든 베어캐니스터와 쓰레기는 텐트로부터 20~50미터 이상 떨어진 공간에 두고 자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다음은 곰을 마주쳤을 때의 행동 원칙들이다
가장 중요하지만 지키기 힘든 일이다.
숲 속에서 곰을 마주하면 공포가 상당하므로 본능적으로 등을 돌려 달리고픈 충동이 강하게 든다. 실제로 필자도 처음 곰을 마주했을 때 당황하여 달린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다행히 숲 속이 아니라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사람이 등을 보이고 달리는 순간, 곰은 사냥의 본능이 깨어나 당신을 덮칠 수 있다. 기억하자. 곰은 우사인볼트보다 날쌔고 나무도 쉽게 타는 동물이다.
곰을 마주쳤을 때 가능하다면 최대한 천천히 등을 보이지 않고 뒷걸음질로 물러서서 길을 비켜 지나가게 한다.
곰이 공격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저음의 목소리와 차분하고 조용한 어조로 경고를 해 준다.
절대 곰을 흥분시킬 수 있는 고함이나 소리는 지르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면 위협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주변을 경계하며 상황이 허락하는 한 계속 물러선다.
곰이 점점 접근하며 위협적인 행동을 보일 시, 그룹이 모여서 큰 소리로 경고를 한다.
그룹이 없는 경우, 최대한 자신의 모습이 커 보일 수 있도록 손을 위로 올리거나 사마귀 권법과 같이 등산스틱으로 몸을 커 보일 수 있도록 한다. 최대의 방어선이 무너졌을 때 스프레이를 사용하여 공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한다.
접촉이 입박한 상황이면 엎드려 가슴과 복부를 보호하고 목 뒤로 두 손을 꽉 잡고 목을 보호한다. 배낭은 당신의 등을 보호할 수 있는 보호막이 될 수 있으므로 절대 벗어서 주지 않는다.
공격이 멈추지 않을 경우, 맞서 싸워야 한다는 국립공원의 지침이 있다.
곰과 한판 뜰 배짱 정도는 가지고 산을 타야 하는 것이다.
어떻게 싸울 수 있을까. 정말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상황이지만 나는 늘 작은 칼을 배낭 허리에 넣고 등산을 한다.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지만 상상은 한다. 공격 시 가능하다면 칼을 손에 쥐고 가능하다면 곰의 눈을 찌르는...
많은 백패킹을 하며 나는 다행(?) 스럽게도 곰과는 3,4 단계까지의 만남과 두 번의 큰 고비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한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백패킹을 포기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아슬아슬한 스릴이 여행을 좀 떠 짜릿하게 해 주는 것 같다. 물론 안전한 선에서 말이다.
숲 속에서 야생동물을 마주 한다는 건 기쁘고 흥분되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언제 어떻게 상황이 바뀔지 모르므로 항상 주변을 경계해야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론 도시캠핑에서 쓰는 안대와 귀마개 사용은 숲 속에서 절대 사용하지 않도록 권고하고 싶다. 실제로 이른 새벽 텐트 주변으로 몰려든 무스 떼들의 한판 싸움이 간담을 서늘하게 한 기억이 있다. 숲 속에서는 나를 지켜줄 이가 아무도 없다. 오로지 자신과 동료의 힘으로 상황을 이겨내야 한다.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일은 없도록 준비도 철저히 하고 늘 경계태세를 유지하자. 이상!
도시 여행을 가는 사람들에겐 이 글이 그저 가벼운 글로 읽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북미의 백패킹을 계획 중이라면 이 글들이 당신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으니 웃어넘기지 말고 정독하길 권한다. 미국에서 곰을 마주칠 확률은 생각보다 높고 행동원칙을 인지하지 않고 조우한 곰과는 좋은 관계로 마무리하기 힘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