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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예 Jul 22. 2024

로키에서의 공포의 밤

강렬하다 못해 짜릿했던


2024년 7월 19일, 오늘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다 말고 다시 맑은 하늘을 보이며 후덥지근한 날씨가 이어진다. 비가 종일 계속되는 장마를 보내고 있자니 비와 관련한 여러 백패킹 에피소드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데 그중 내 인생 가장 끔찍하고도 공포스러웠던 순간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2014년 로키산에서


때는 바야흐로 정확하게 10년 전인 2014년 7월 때의 일이다. 평소에 단거리 백패킹을 즐기던 내가 큰 결심을 하고 첫 장거리 백패킹을 계획했던 때다.


어디로 갈지 고민하다가, 평소 좋아하던 존 덴버의 노래 속 로키마운틴을 실제로 보고 싶어서 콜로라도로 향하게 되었다. 오늘은 여러 트레일 코스를 끝내고 백패킹이 끝나가던 시점인 그날 오후의 일을 집중적으로 이야기해 보겠다.          


로키마운틴은 변덕스러운 날씨로 유명하다. 해발 3000m가 넘는 고지대에선 우박이 비로 바뀌고, 다시 맑아지곤 한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나였다. 땀을뻘뻘 흘리며 도착한 보울 더 브룩(Boulder Brook) 백컨트리에 도착해 바로 텐트를 치고 저녁을 준비했다.


*미국은  차 없이 오로지 걸어서 숲 속에서 캠핑하는 곳을 백컨트리 Backcountry

  국립공원 내 차량으로 이동하며 캠핑하는 곳은 프런트컨트리 Frontcountry라고 구분한다.


미국 하이커들 사이에서는 통상적으로 저녁 8시는 자정을 의미하므로 그전까지 모든 용무를 마치고 바로 잠자리에 든다.  사실, 깊은 숲 속이라 딱히 할 것도 없거니와 하루 종일 걸은 피곤함 때문에 저녁만 먹고 나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들 넉다운이 되기 때문에 대부분 잠자리에 일찍 드는 것이 현실이다.  




그날의 캠핑장은 아니었지만 로키산을 등산하며 사용한 빅아그네스 2인 텐트. 이곳도 로키산 어딘가이다.



여하튼, 보울 더 브룩 boulder brook 캠핑장은 3100m가 넘는 고지대에 놓인 2개의 개인 사이트, 하나의 그룹사이트가 있는 크지 않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날 캠핑장에는 우리만이 유일한 손님이었고, 흔치 않은 일이지만 백컨트리 중 불을 지필 수 있는 아주 한정적인 캠핑장들이 있는데 보울 더 브룩은 불을 허용하는 파이어링이 있었다. 우리는 주위에 정말 아무도 없는 깊은 산속 깊은 하늘 아래  불을 피우고 저녁을 먹은 후 8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잠자리에 들었다. 이 날은 숲 속에서의 백패킹 막바지 무렵이었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마무리를 할 수 있었던 아름다운 밤이었다. 여기까지는.  



잠들기 전 찍었던 그날 밤의 풍경


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한두 방울씩 빗방울이 떨어졌다.

변덕스러운 날씨를 경험한 터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계속 잠을 청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빗방울은  심상치 않게 쏟아지기 시작했고, 이내 물길까지 만들어져 텐트를 후려치며 흐르고 있었다. 엄청나게 불어난 비의 양에 텐트바닥은 얼마 지나지 않아 비로 축축해지기 시작했는데 갑자기 하늘이 번쩍하는 번개가 내려쳤다. 심상치 않은 긴 밝음이었다. 경험상 번개의 밝음이 오래될수록 소리는 좀 더 길고 무섭게 퍼지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내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가 내려쳤다.



오 마이갓... 친구와 나는 젖어버린 텐트 속에 더 이상 바짝 누울 수도 없을 정도로 땅바닥에 바싹 엎드렸다. 그 소리를 흉내 내자면 '우르르 쾅쾅'이 아니라 '쮀쯔으아아악쫘쫙!'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말 그대로 하늘이 찢어지는 비명 같은 소리였다. 세상 태어나서 듣지도 보지도 못한  그 소리는 한동안 계속되었는데 아무래도 고도가 높다 보니 평소에 듣던 청둥소리보다 훨씬 가까웠던게 아닌가 생각도 해 보지만 어쨌든 그 소리는 귀 바로 옆에서 내리치는 소리라 해도 절대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실 나는 공포영화 마니아다. 귀신은 신비롭고 궁금한 존재이며, 동물들은 위험하지만 귀엽고 사랑스럽다.(물론 곰들은 예외가 되곤 한다. 이 썰은 다음에 풀어 보겠다) 정말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고 늘 생각했는데 그날 밤은 극한의 공포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준 밤이었다.


늘 삶에 집착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번개가 치는 내내 "죽고 싶지 않다"라고 외쳤다. 며칠 전 공원 관리자로부터 주차장에서 벼락를 맞아 사망한 사람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번개를 맞아 죽을 확률은 약 1년에 1/1,222,000이다. 미국에서는 매년 약 20~30명이 벼락에 맞아 사망하며, 이는 번개에 맞을 확률 중 약 10% 미만이다. 그 주차장에서 돌아가신 분은 안타깝게 그 20~30명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공원관계자도 숲으로 들어가는 우리에게 조심할 것을 당부했기 때문에 그 말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숲 속에는 우리뿐이었고 텐트는 알루미늄 폴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번개가 내리친다면 우리 텐트 위로 내리칠 확률이 높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빗소리와 천둥소리에 벌벌떨며 죽고 싶지 않다고 흐느꼈다. 친구도 겉으론 괜찮다고 했지만, 손이 떨리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얼마쯤이 지났을까. 갑자기 비가 뚝 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럼통으로 콸콸 붓듯이 들이쳐오더니 이내 잠잠해진 밖으로 나가보았다. 아니 침낭이고 옷이고 모든 게 젖어버린 상황에서 더 이상 텐트 속에 남아 있을 수가 없었다. 하늘은 거짓말처럼 평온했고 주위는 온통 진흙탕에 쓰러진 나무에 난리도 아니었다.  



불은 언제나 위안을 준다. 사진은 다른 날 다른 장소에서...



한여름이었지만  높은 산의 밤은 기온이 뚝 떨어지기 때문에 저체온증도 조심해야 했다. 자다 말고 모든 짐들과 텐트까지 나무에 걸어서 말리고 옷을 갈아입고 몇 년 동안 쌓여온 불지피기 기술로 간신히 불도 지폈다. 모든 것이 젖었지만 끝끝내 불을 지핀 뒤 불 주위로 둘러앉아 몸을 말리며 한 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뭔가 짧은 시간에 일어난 충격 같은 거랄까... 한 동안 정말 말도 없이 가만히 있다가 간신히 한마디 했다.


"우리 정말 죽을 뻔했어...'


"응... 맞아..."


그리고 또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불을 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발자국 소리가 가까이 들려왔다. 동물 소리였다. 이내 들리는 하울링...     



"아우우우우우~~~~~~"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발소리)


몇 마리나 되는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늑대 무리가 주위에 있었다.


"왓 더...도대체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야...?!"


정신도 차리기 전에 늑대 밥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 다시 겁이 났다..


"불이 있기 때문에 여기로 절대 오지 않아. 괜찮아. 괜찮아!"


하지만 발소리가 너무 가까워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다행히도 늑대 무리는 지나가는 길이었는지 발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그날 밤은 그렇게 꼬박 새벽까지 옷과 텐트를 말리며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 들었다.



늑대는 식육목 중에서 가장 체계적인 무리 생활을 하는 사회적인 동물 중 하나이다. 사진 및 내용 출처_나무위키



다음날 아침, 아직도 젖어있는 텐트와 옷가지 짐들을 대충 싸고 다시 등산로로 향했다. 산을 올라가는 내내 그날 저녁에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산속에서 죽었다면 언제 발견될까, 늑대들이 내 시체를 먹었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마지막 날 일정인 시에라 구역으로 접어들었다. 사실 마지막 날 밤은 돌 산 위에 지어진 특별한 쉘터에서의 하룻밤이었는데 너나 할 것 없이 전 날 밤의 끔찍했던 경험을 떠올리니 탁 트인 능선에서의 밤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아 하루 일찍 마을로 돌아가는 걸로 백패킹은 마무리되었다.



마지막 날 밤은 이곳 쉘터였으나 포기하고 돌아선 곳. 사진출처 : Martin Gotthard



그날 이후로, 나는 로키마운틴을 떠올릴 때마다 그날 밤의 번개와 늑대 소리를 기억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깨닫는다. 인생은 산의 날씨만큼이나 예측 불가능하고, 그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는 걸.  그리고 익스트림 했지만 때로는 인생이 주는 예상치 못한 모험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되기도 한다.  다음에 또 어떤 모험이 나를 기다릴지 몰라도, 나는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그 모험을 두 팔 벌려 맞이할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비 오는 날에는 자연의 위력을 기억하며, 따뜻한 집에서 영화나 한 편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걸 유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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