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이 없으면 일탈도 없다.
고 1 때 영어 선생님인 조모 선생님은 내가 공부하는 모습을 보더니 나에게 스터디 머신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 7시에 등교하여 밤 10시나 11시까지 밥 먹고 쉬는 시간 빼고 약 10시간(30분씩 20회)의 공부량을 1년 365일 휴일 없이 진행했기 때문이다. 지금 계산해보니 3년간 약 1만 시간 정도 공부했으니, 1만 시간 법칙에도 위배되지 않는 공부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시간이 지나 전공의 1년 차 때 나의 일하는 모습을 본 1년 차 위 선배는 나에게 꼭 컴퓨터처럼 일한다고 하였다. 명령어를 입력하면 늘 정해진 시간에 정확한 결과를 도출하는 컴퓨터처럼 한 번 익숙해진 일은 펑크를 내지 않고 한다는 의미였다.
이런 기계적 면모는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다른 면에서도 나타나는데, 그것은 바로 걸음 수였다. 이전 게시물에도 포스트 했듯이 당시는 하루 2만 보 걷는 것을 목표로 하였고, 하루에도 정해진 양이 차지 않으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끊임없이 걷고 뛰었다. 이렇게 2년 정도 하고 나니 몸무게도 10kg 정도 빠지고 허벅지 근육도 굉장히 탄탄해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행위들의 공통점은 바로 나의 루틴에 편입된 행위라는 것이다. 목표나 계획을 정해놓고 그것을 위한 행동을 3일 동안 반복하면 그것이 곧 루틴이 된다. 이것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쭉 가는 것, 그것이 곧 루틴인 것이다. 이러한 루틴은 무언가를 이루어 나가는데 지대한 역할을 해 준다. 매일 하는 것을 못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 루틴이란 것의 매력은 바로 그 반대인 일탈을 만날 때 배가된다. 우리는 사람인지라 매일 정형화된 루틴을 똑같이 반복할 수 없다. 때에 따라 시간이나 형태에서 어느 정도의 일탈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루틴이 견고하면 견고할수록 이러한 일탈에서 맛보는 쾌감이 상당한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매일 라면만 먹는 사람이 라면의 참맛을 알 수 없지만 매일 쌀밥만 먹는 사람이 라면의 맛을 봤을 때의 그것과 일치할 것이다.
일탈이라고 거창할 필요가 없다. 공부하기로 정해진 시간에 잠깐 친구들과 농구 한게임 하는 것, 일을 빼먹고 동기와 수다를 떠는 것, 그날 운동을 쉬고 패스트푸드를 먹는 것 등도 모두 일탈이었다. 작은 일탈도 견고한 루틴 속에 있다면 행복 그 자체 이리라.
모든 가치는 그 반대가 존재하기에 더 아름답게 빛난다. 루틴이 없는 일탈은 지루하고 지난할 뿐이다. 더 짜릿한 일탈을 위해 지금이라도 루틴을 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