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청약으로 계약까지
2022년 11월인가. 올림픽파크포레온, 구 둔촌주공 재건축 현장에 대한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이 아파트는 2년 전 양양 살 때부터 와이프가 눈여겨봤던 아파트로, 입지는 너무도 좋은데 조합원과 시공사의 갈등으로 인하여 공사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빚고 2년 뒤에나 분양하게 된 아파트였다.
그리하여 우리와는 연이 없을 줄 알았던 아파트가 우리가 서울로 주소지를 옮긴 지 6개월이 되어 본격적으로 청약시장에 입문하게 된 2022년 하반기에 우리의 레이더망에 걸린 것이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우리가 감히 이런 좋은 입지의 아파트에 당첨될 줄은 언감생심이었다. 당시 하락기가 시작되었다곤 하나 우리가 사는 중랑구의 한 신축 아파트도 거의 완판 될 정도로 청약 열기는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시점이었고, 우리 또한 다른 아파트에 도전하려고 청약 첫 타자로 삼을까 하다가 임장을 해본 후 막 패스한 시점이었다. (주변에 노후 빌라가 너무 많은 지역이었다)
그러기에 청약을 처음 경험할 것이면 이왕이면 매력적인 매물로 해보자는 생각으로 첫 청약을 넣은 아파트가 바로 이 올림픽 파크 포레온이라는 아파트였다. 청약 공고가 올라온 시점부터 주방뷰, 복도식, 비싼 가격, 공사중단 등으로 만천하에 까이고 있는 아파트였지만, 우리는 이 아파트가 그러한 단점들을 커버하고도 남을만한 장점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2개 역 동시 역세권, 메이저 시공사, 초품아, 단지 내 중, 고교, 학군, 올림픽파크 바로 옆, 남향, 뻥 뚫린 자동차 교통, 언덕이 거의 없는 평지, 빵빵한 커뮤니티 시설, 서울 외부로의 용이한 접근성 등 장점이 정말 많았다. 그리하야 청약을 넣게 되었는데, 청약을 넣은 시점으로부터 2개월 간 참 많은 것이 변하게 되었다.
우선, 부동산 시장이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거래량이 많아 서울 신축 대단지 부동산의 지표가 되는 헬리오시티 등 잠실 대단지 아파트들의 가격이 줄줄이 하락하여 고점대비 60퍼센트가량까지 빠지게 된다. 무려 40퍼센트의 급락! 그리하여 올림픽 파크 포레온보다 입지 면에서는 한 단계 상급지로 여겨지는 헬리오 시티 가격과 올파포의 동일평수의 가격 갭이 국평 기준 2억까지 좁혀져서, 사실상 투자로서의 가격적 메리트는 상실이 되었다. 부동산 규제가 완화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러한 소식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어서, 올파포의 경쟁률은 겨우 한자릿수에 육박하게 된다. 이전에는 수백, 수천 대 일이었던 서울 대단지 아파트의 경쟁률이 손에 꼽을 정도라니!
덕분에 우리 또한 예비당첨이라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5 배수를 뽑는 예비당첨에서 1 배수 안에 들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최종 당첨 여부는 긴가민가 했다. 아무리 청약시장이 얼어붙었다 한들 청약 당첨자들이 청약 통장을 날리면서까지 청약을 포기해서 예비 한 바퀴가 돌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또한 청약 경쟁률을 본 정부의 규제 완화에 힘입어 대출이 용이해짐에 따라, 청약계약률 또한 높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하지만 정당 계약 결과를 까보니 그게 아니었다. 조합과 시공사 측은 계약률 공개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똑똑이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합리적 추산을 해본 결과, 언론 홍보 찌라시로 떠도는 70퍼센트의 정당 계약률보다는 50퍼센트의 정당 계약률이 합리적으로 보였다. 그 말인즉슨 예비 1 배수인 나에게도 당첨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소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넣은 평수는 예비 인원 전원을 부르는 희소식이 들렸다. 그 말인즉슨 물량이 굉장히 많이 남았다는 소리였다. (실제로 예비 물량 추첨장에 가서 본 결과, 로얄 매물을 포함하여 물량이 절반 가량 남아있었다!)
사실 나는 예비 인원 전원을 부른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계약 포기를 생각하기도 했다. 이렇게 미분양이 많은 매물의 경우 나중에 무이자 할부나 할인 분양등 파격적 혜택이 주어질 가능성이 높고, 입주 후에는 마이너스피가 뜰 수도 있기 때문에 그랬다. 하지만 물량이 많이 남아서 로얄 물량 또한 많이 남았을 거라는 희망과 주변 부동산 고수 님들의 견해는 나에게 계약 신호를 보내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추첨에 참여하게 되고, 대망의 추첨날. 나는 거의 대입 면접 때처럼 긴장되었다. 추첨장에 10시까지 도착해야 하는데, 차를 타고 가다가 길이 막혀서 중간에 내려서 지하철을 타야 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다행히 10분 남기고 제시간에 도착했다. 예비추첨 특성상 시간에 1분이라도 늦으면 추첨에 참여할 수 없으므로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은 천만다행이다.
추첨장 안은 적막이 흘렀고, 매우 엄숙했다. 시행사 직원이 분위기를 띄워보려고 농담도 하곤 했지만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진 못했다. 추첨을 시작하기에 앞서 동호수를 보여주는데, 이때 사람들 중 일부는 바로 계약을 포기하고 나갔다. 남은 사람들에 한해 추첨이 시작되자 사람들의 탄식과 박수 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주로 저층을 뽑은 분들에게는 별 반응이 없거나 안타까운 탄식이 흘러나왔지만, 고층을 뽑은 분들은 축하와 부러움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나는 그러한 과정을 보면서, 뽑힌 동호수를 소거하고, 기도하고, 내가 뽑을 동호수를 확언하며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긴장한 동시에 이성을 사용해야 돼서 극도로 예민하고 과부화 된 상태였던 것 같다. 그렇게 나의 차례가 되었고, 나는 운명에 순응하는 왼손을 내밀어 추첨통 안으로 넣었다. 나의 왼손은 뽑은 종이를 펼쳐 들었다. 그렇게 최종 간택을 받은 종이에는 고층이 적혀있었다.
처음에는 내가 바라던 동수가 아니어서 그저 층만 고층이어서 계약은 해야겠다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내려가서 내가 뽑은 동호수를 자세히 분석해 보니 아주 물건이었다.
내가 뽑은 동호수는 도로에 인접해 있으면서도 상가가 앞에 있고 다른 세대가 앞에 있어서 도로 소음을 차단해 준다. 그래서 앞에 방음벽으로 가리는 것도 없다. 게다가 고층이어서 단지 안쪽에 있으면서도 남향으로 뷰가 확 틔어있었다. 나는 뷰를 잡으면 소음을 포기하고, 소음을 잡으면 뷰를 포기해야 되나 싶었는데, 둘 다 잡는 동호수가 거기 있었던 것이다. 아주 절묘한 위치였고, 생각하지도 못한 위치였다! 내가 바라던 올공 뷰를 얻으면서도 소음을 차단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
거기다가 편의성 측면에서도 지하철역과 1분 거리였다. 또한 앞으로 자주 이용할 조식 카페테리아가 가까웠고, 메인 상가 바로 앞이라 추후 개원했을 때 출퇴근 1분 컷도 가능해 보였다. 그뿐이랴? 바로 앞에는 초등학교와 얼집도 1분 거리에 있어서 아직 어린 우리 아가들에게 최적의 통학 환경을 제공해 줄 수 있었다.
이 단지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하면 9호선이 좀 멀다는 것이었는데, 두 호선을 동시에 끼고 있는 대단지 아파트의 특성상 한 역에 극도로 근접하면 다른 호선에는 조금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정헌 이치였다. 그 외에 타 단지와 비교할 때 다른 단점은 없어 보였다. 그야말로 나만의 RR(Royal of Royal) 매물이었다.
그래서 나는 동호수 추첨이 끝나고 계약할 때는 긴장이 풀린 상태에서 즐거운 나머지 녹초가 되었다. 그것은 마치 수능이 끝난 뒤 나의 모습과 같았는데, 다른 점이라면 그때에 비해 나의 체력과 정신력이 다소 모자랐는지 덜 힘들었는데도 더 피곤하고 머리가 아파왔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계약을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도 모르게 마치고 왔을 때 밖의 공기는 미세먼지 가득한 추운 날씨 었지만 나에게는 한없이 상쾌하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나의 청약 당첨 및 계약기는 막을 내리게 된다.
에필로그
계약을 하고 어디 가서 맛난 거 먹으면서 파티하기는커녕 조촐히 집에 처박혀서 치킨 시켜 먹고 육아했다. 당첨과 계약도 단톡방에는 함구하고 소수 지인에게만 알렸다. 이미 계약일을 알고 있는 사람들 정도에게만. 원래 큰 이득을 본 다음에는 조용히 있어야 한다. 그렇게 너무 설레는 계약일을 가족과 함께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