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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Apr 01. 2018

2. 확신은 없어도

치명 프로젝트라기보다는 그림일기 2


지난 이야기


한 200미터 밖에서 보면 닮았나 싶음


  그림을 그릴 때 가장 많이 드는 감정은 아무래도 미안함이다. 기꺼이(아니 사실은 반 강제로) 사진을 내준 이가 결과물을 보고 불쾌해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나를 지배한다. 애석하게도 실력은 제자리걸음이고, 따로 배우는 것도 아니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시간을 투자하고, 사진을 조금 더 들여다보는 것뿐이다.


  그림을 그려보겠다고 말하면 주변에서 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열심히 하라.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 응원도 있지만 기억에 더 오래 남는 것은 사실 조롱들이다. 2014년 여름, 별안간에 그림이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페이스북에 한 장씩 그려 올릴 때와 비교하면 많이 늘긴 했다. 물론 내가 매 순간 그림 그리는 것에 몰두하거나, 따로 시간을 내어 열심히 하지 않았기에 실력이 마디게 자라는 것은 순전히 내 불찰이다. 하지만 나 재밌자고 시작한 일도 평가와 조롱 그리고 훈수가 개입되면 즐겁지 않게 되더라. 상대의 최선을 손쉽게 평가하고 짓밟는 행위는 결코 그를 위한 것은 아니다. 


  최고가 될 필요는 없다. 직업으로 삼을 만큼 대단한 실력이 있지 않아도 된다. 다만 나에게 소중한 것은 그리는 순간 몰입의 경험이다. 그리고 어제보다는 나아지고 있다는 효능감을 얻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는 또 이렇게 말한다. "내가 진심으로 충고하는데, 미술학원을 다녀보는 게 어때?"라고 말이다. 나는 그에게 진심으로 말하고 싶다. 미안하지만 그 충고는 거절하겠다고 말이다.


  나는 이상한 고집이 있다. 그것은 색의 다양성에 대한 집착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흑백 스케치해놓고 무슨 소리가 하겠지...) 내가 말하는 색은 쉽게 말해 '색깔'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색을 갖고 있고, 같은 것은 그리거나 글로 표현해도 결코 똑같이 표현되지 않는다. 나에게 충고를 해준 이의 선량한 의도는 분명하다. 기본기를 먼저 익힌 후에 표현의 폭을 넓히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구태여 거절하는 이유는 하나다. 색을 만들어가고 싶어서다. 세상에 글을 잘 쓰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은 쎄고 쎘다. 그렇지만 자신의 특색 있는 문체, 화풍을 가진 이는 드물다. 나는 잘 하는 사람보다는 특색 있는 사람이 되고 싶고, 조금 늦더라도 스타일을 만들어가고 싶다. 어쩌면 평생 닿지 못할 꿈일지도 모른다.


  확신이 없다. 그렇지만 선선히 나아가고 싶다. 그림으로 밥벌이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그저 '노천카페에서 맞은편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내 스타일로 슥삭슥삭 그려내는 정도.' 실력을 원한다. 한 30년이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뭐 안 되면 마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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