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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Apr 09. 2018

0. 햄버거를 먹지 않으면 죽는 병

고독한 셀럽은 라멘을 먹는다 프롤로그

*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지 모르는 콘텐츠입니다.

* 본 콘텐츠에 나오는 이야기는 모두 주관적인 견해입니다.


#0 프롤로그


공허하다. 그리고 불안하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느냐마는 요즘 나는 텅 빈 껍데기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어느 날 갑자기 거울을 봤는데, 그 안에 내가 알던 내가 없었어."

(더블 디. 븨제이. 유노? 리쓴)


다이나믹 듀오의 U-Turn이라는 노래의 인트로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보는 거울이지만 가끔 내가 낯설 때가 있다. 내가 언젠가 썼던 글, 내가 언젠가 그렸던 그림, 내가 언젠가 찍었던 동영상을 볼 때도 남을 보는 듯한 기시감을 느낄 때가 있다. 요즘이 그렇다.


뭔가를 잊어버린 것 같은 느낌. 나사 하나가 빠진 듯한 느낌. 매일 어디론가 달려가고는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느낌. 어떤 수식을 갖다 붙여도 '내가 나인 것 같지 않은 느낌'을 지금만큼 느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과거의 나는 '나'만 쓸 수 있는 글을 썼고 가진 것 하나 없어도 종이와 펜만 있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객기도 있었던 것 같다. 간직하던 '반짝거림'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두 가지 징후가 찾아오더라.


첫째는, 언어다. 과거의 나는 나만이 구사할 수 있는 문체에 집착했다. 베이비 붐 세대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20대라는 (아무도 관심 없을 것 같은) 포지셔닝을 하고 이를테면 브레이브 사운드- 라든지 그루비룸 에븨웨얼- 같은 시그니처 사운드처럼 글마다 메다(미터), 테레비(텔레비전), 뻬빠(사포)등의 단어들을 때려 박았었다. 그렇지만 언젠가부터는 약간, 조금, 뭔가 같은 단어를 쓰는 빈도가 많아졌다. 내 말 한마디 한 마디에 대한 확신이 없어지고, 나도 모르게 주저하게 되더라.


2500원 이상은 캐쥬얼하게 햄버거 하나 땡긴 것이다.


둘째는, 영수증이었다. 통근 시간이 순수하게 대중교통을 타는 시간만 2시간, 늦으면 3시간까지 걸린다. 그렇다 보니 환승을 하는 지점이 두 곳 정도 된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지하철로 갈아타는 곳 혹은 지하철에서 버스로 갈아타는 곳에 도착하면 이-상하게 당이 떨어진다. 버스 혹은 지하철에서 내리는 순간 깊은 짜증이 몰려오는 순간이 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 짓(통근)을 해야 할까? 같은 소확빡(소소하지만 확실한 빡침)이 몰려오면 잠시 눈을 감고 걷는다. 그리고 눈을 뜨면 한 줄기 빛이 내려온다. 대개의 버스 정류장, 지하철 역 근처에 있는 가장 밝은 빛. 바로 편의점이다.


그 간판을 보고 있노라면, 앞으로 한 시간 더 가야 할 소확빡의 상황에서 지금 당장 나의 화를 풀어내지 아니하면 큰일이 생길 것 같다는 강박이 생긴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나를 위해(^^) 당충전을 위해 편의점에 들렀고, 그렇게 퇴근길에 편의점 햄버거를 먹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편의점 햄버거를 먹지 않으면 죽는 병은 사람마다 다르게 찾아온다. 떡볶이를 먹지 않으면 죽는 병에 걸린 이도 있고, 가방에 소세지가 없으면 죽는 사람, 옥수수 수염차가 없으면 남을 의심하는 증상이 생기는 사람 등 살면서 한 번은 찾아오는 성장통 같은 병인 것이다.


그깟 주전부리 좀 끊으면 되지 않느냐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 그깟 개소리 좀 그만할 수 없느냐고 따질 것이다. 퇴근길의 햄버거는 내겐 이었다. 하지만 월말에 가계부를 정리하다가 발견한 햄버거들은 내게 으로 다가왔다. 한 달 동안 편의점에 15만 1150원을 쓴 것이었다. 그 달 밥값이 14만 9350원이었으니 경이로운 숫자였다.


믿을 수 없어 가계부 상세 내역을 살펴보니, 이게 웬걸. 환승 포인트에서 캐쥬얼하게 집어먹은 햄버거들의 기록이 주말을 빼고는 매일 같이 찍혀있었다. 계산을 해보았다. 일주일에 5일, 퇴근길에 햄버거를 먹는다면 평균 2,500원이라 잡으면 일주일에 12,500원. 한 달이면 5만 원이 나온다. 그럼 남은 10만 원은? 상식적으로 햄버거만 먹었겠는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 영화찍으려고 일부러 햄버거를 먹는다던데


일부러 실험하려고 해도 이렇게 정기적으로 먹기도 어려웠다. 돈도 돈이었지만 정신적으로 자괴감이 들었다. 느빌말고는 이렇다 하게 사람을 만나지도 않고, 술과 담배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학원을 다니거나 자기계발을 하는 것도 아닌데 어딘가 아깝게 돈을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달리 생각해보기로 했다. 어쨌든 햄버거를 먹지 않으면 죽는 병은 중독이다. 그렇다면 중독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렇다. 중독은 중독으로 잊는 것이다. 운동중독이나 일중독 혹은 독서중독 같은 건설적인 중독이 생기면 좋겠다만, 나는 내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매사에 미쳐서 무언가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엔 한 번 미쳐보는 기획을 꾸려보았다.(점점 사심 충족을 위한 개인 콘텐츠를 만드는 것 같다. 히히히)


그거슨 바로...


고독한 셀럽은 라멘을 먹는다.


이다. 기획의 내용은 간단하다. 편의점 햄버거 5일 먹을 것을 일주일에 한 번 괜찮은 라멘집에 가서 사이즈업에 차슈 추가를 해서 먹자. 인 것이다. 다소 한심해 보일지 모르지만 어쩌면 이 뻘짓이 내가 고민하던 '나다운 것'을, '미쳐서 무언가를 해보는 경험'을 그리고 '맛집 리스트 작성'을 할 수 있는 일석삼조의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합정-상수-망원-홍대 부근의 라멘집. 첫 리뷰할 곳은 빨간원이 힌트!


매주 화요일. 특별한 일이 없다면 라멘을 먹으러 갈 생각이다. 네이버 지도에 '라멘'을 검색하면 합정-상수-망원-홍대-신촌에 21곳의 가게가 검색된다. 매주 한 곳 씩 21주 방문을 하면, 당장 이번 주에 시작해도 8월에 끝나는 대형 프로젝트가 된다. 인생은 짧고 라멘집은 많다는 옛말을 곱씹게 되는 대목이다.


맛집 리뷰나 별점으로 평가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나는 미각이 둔한 편이어서 맛의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다만 퇴근길에 혼자(혹은 친구와) 라멘집에 들어앉아서 흠... 우마이... 하는 리얼 셀럽이 되고 싶을 뿐이다.(써놓고 보니 셀럽의 조건이 너무 소박하다)


좌절하기엔 나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내가 나다움을 찾아갈 수 있게, 햄버거를 먹지 않으면 죽는 병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나는 라멘을 먹기로 했다. 라멘 한 그릇에 인생을. 라멘 한 그릇에 축복을. 그리고 세상에 모든 당신들의 외길인생을 응원하며. 프롤로그 끝.






다음 주 예고 - <덜 익힌 면은 나를 겸손하게 해>


핥은 거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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