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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Apr 25. 2018

#1 덜 익힌 면은 날 겸손하게 해

고독한 셀럽은 라멘을 먹는다 1. 오레노 라멘

*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질지 모르는 콘텐츠입니다.

* 본 콘텐츠에 나오는 이야기는 모두 주관적인 견해입니다.



지난 이야기






#1 덜 익힌 면은 날 겸손하게 해


봄기운이 만연한 어느 날. 옆자리의 팀장님이 라멘이야기를 꺼냈다.

합정에 괜찮은 라멘집이 있는데 격이 다른 인생 라멘이었노라고 열의를 다해 설명하더라.

당시 센티멘털한 상태였던 나는 라멘이 그래 봐야 라멘 아닌가? 하는 그릇된 생각을 했고,

다음날 외근 나갔다가 만난 '그 라멘'은 대국민 사과를 하고 싶을 정도 임팩트의 맛이었다.

마침 그 주의 느빌모임이 취소되면서,

서울에 올라온 에디터 동석을 꼬드겨 퇴근 후 그곳을 한 번 더 찾았다.




1. 찾아가며

오레노 라멘의 위치는 합정과 상수의 딱 중간!


우리가 향한 곳은 합정역 7번 출구에서 7분 정도 걸어가면 나오는 <오레노 라멘>이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친숙한 이름을 흥얼거리면서 가다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쿠사나기 쿄의 승리 대사: "오레노... 카치다!"

사진 출처: 루리웹- http://bbs.ruliweb.com/game/ps/76683/board/read/2601892


왠지 이름이 낯이 익더라니 킹 오브 파이터즈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쿄의 콤보에 항상 당했다.) 

고3 때 학교 컴퓨터에서 즐겁게 킹오브와 피카추 배구를 하던

과거의 나는 즐겁게 재수를 하게 되었다. ^^

갑자기 몰려오는 서치 어 딮-슬픔을 맞이할 즈음에 

우리는 라멘집에 도착했다.




2. 빛레노 라멘


<오레노 라멘>은 빛나고 있었다.

어두운 골목을 밝히는 한 줄기 빛.

빛레노 라멘이 그곳에 있었다.


빛 - 레노 라-멘


빛레노 라멘 간판의 후광을 등에 업고

계단을 오르면 무인 계산기가 나온다.

나는 빠이탄 라멘을 동석은 쇼유라멘을 주문하고

밖에서 기다렸다.

천안에서 먼 길을 올라온 동석은 피곤해 보였지만

라멘에 정신이 팔려서 가게 안만 들여다보았던 것 같다.

늦었지만 동석에게 심심한 사과를 한다.



3. 공기밥이냐 면 사리냐 그것이 문제로다

정신을 차려보니 계란 추가가 되어있었음;;


라알못(라멘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기에 내가 감히 맛을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무슨 재료가 들어갔고, 면이 어떠하며,

이 집만의 특이한 지점이 무엇이야!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고 싶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다.


마... 마시써...



면 추가가 무료인데 고기도 줌;;


그래서 면을 추가해따 희희

(면추가 무료)



애석하게도 육수는 추가할 수 없다.

그래서 들어가는 순간부터 면추가를 염두하고 국물 조절을 해야 한다.



여담이지만,

나는 라멘의 참맛은 2회 차에서 결정 난다고 생각한다.

국물을 한 숟가락 뜨고 나서



아!

이건 공기밥 추가각이다. 혹은 면 사리를 추가해야겠다. 하고

빠른 판단을 해야 한다.



이것은 퍽 중요한 포인트인데,

왜냐하면 2회 차에는 삶의 진리가 들어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모두의 생명은 단 하나뿐이며

지금을 놓치면, 비슷한 상황은 찾아올지언정 똑같은 상황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공기밥 혹은 면 사리를 추가하면서 겪지 못할 상황을 대리 경험한다.



반드시 선택을 해야만 한다.

지금 공기밥을 시켜 국물에 말아먹는다면

꾸득꾸득한 면 사리의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없다.

마찬가지로 면 사리를 주문한다면

쌀알이 주는 혀의 감각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네 배는 한계가 있기에

어쭙잖게 둘 다 취했다가는 맛이 아닌 정 때문에 먹는 결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과욕은 우리를 해친다.

(생각해보면 2회 차 간 것부터 과욕 아님?;;;;)


오레노 라멘의 진면모는 2회차 부터다


나는 면을 선택했고,

면 사리 추가 특유의 약간 덜 익힌 면과 만났다.



그리고 

면 사리는 나를 고개 숙이게 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처럼.

그릇에 머리를 파묻고 조용히 한 그릇을 비웠다.



겸-손


나는 그렇게 

겸손을 배울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배운 건데?)



아디오스!



빈 그릇을 뒤로하고, 가게를 나왔다.

어이! 주인장! 당신 라멘 최고잖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겸손하지 못했던 나의 과오가 겸연쩍어

도망치듯 가게를 빠져나왔다.


안녕. 오레노 라멘!

언젠가 공기밥으로 다시 만나자!

(오레노 라멘은 공기밥 메뉴가 없다고 한다.)







다음 이야기



다음 주 예고 - #2 일단 챠슈 추가해! 자괴감은 다음에!


국물을 끝까지 마시면, 아! 난 돼지였구나 하는 걸 깨닫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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