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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May 22. 2018

체념 후에 시작되는 일

박소란, 『심장에 가까운 말』

    일이 많아 힘들다는 이에게 "너무 애쓰지 마." 말하고 아차, 싶었다. 내가 일에 치여 지쳤을 때 가장 견디기 힘든 말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인 주변 사람들 모두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말라 했다. 그게 그렇게 견디기 힘들었다. 그 말 때문에 견디기 힘들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이 견딜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의 냄새는 가벼웠다. 고민 없이 내려진 결론으로 보였고, 나는 더 골몰해서 다른 답을 얻고 싶었다. 다른 답을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내가 너무 애쓰지 말라고 말했다. 문제는 대화를 마치고 곰곰이 생각해도 애쓰지 말라는 말이 견딜 수 없던 때의 사고와 심리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불과 1년 전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었다. 짐작만 할 수 있을 뿐. 아마 일과 나를 분리해야만 오래 버틸 수 있는 환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싫었을 것이다. 일이 나 자신은 아니지만, 내가 한 무엇이니까. 그러나 여러 조건과 사람이 관여하는 만큼, 일은 붙잡는다고 나아지지 않았을 뿐더러 대개 붙잡을 수도 없었다. 일이 끝나 집에 가는 길에 괜히 애먼 것을 붙잡으려 손을 붕붕 대거나 혼잣말로 말을 걸곤 했다. "아니요 말한다는 게 또다시 아파요(「아아,」)" 말하기도 했다. 온갖 데서 내가 놓친 나 자신이 보였다.

언스플래쉬

거리는 온통 멀어지는 뒷모습들로 가득해

누구든 어디든 붙잡고만 싶어


퇴근을 놓치고 선 하늘의 망연한 얼굴만 들여다볼 때


이대로 잠시 앓기로 한다


─ 「통속적 하루」 부분


과일가게에서 사과 몇알을 집어들고 얼마예요 묻는다는 게 그만

아파요 중얼거리는 나는 엄살이 심하군요

(중략)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아직

아침이면 무심코 출근을 하고 한달에 한두번 누군가를 찾아 밤을 보내고

그러면서도 수시로 아아,

입을 틀어막는 일이란

남몰래 동굴 속 한마리 이름 모를 짐승을 기르는 일이란

조금 외로운 것일지도 모른다고

언젠가 동물도감 흐릿한 주석에 밑줄을 긋던 기억


아니요 말한다는 게 또다시 아파요

나는 아파요


─ 「아아,」 부분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날에는 종일 찜찜했다. '무언가 되어야 한다'는 주변의 주문에 부응하며 살아온 습관이 여전히 날 붙들었다. 모순이었다. 무엇이든 '함'으로써 제 몫을 다했다고 생각했으니까. 적어도 남에게는. 일하며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네, 그 정도면 좋아요'. 안 그래도 일에 치이는데 몰아붙이면서까지 무언가 되고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밥벌이든 자기만족이든.

 그러나 세상은 무언가 되어야만 다음을 주었다. '지금 이대로'는 사치였다.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않으면 지금 상태를 유지할 수조차 없었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지 않으면서도 "내것이 아닌 이름으로 자꾸만 머뭇대며" 내가 되는 데 자꾸만 "실패"했다. 가면이 지겨워서, 더 정확하게는 어느 것이 가면이고 어느 것이 맨얼굴인지 몰라 "식어버린 표정"으로 도망쳤다(「망명」). "울음이 다 닳도록 조금씩 / 아주 조금씩 / 안녕을 연습(「나프탈렌」)"하고 연기했다. 일을 조금씩 체념했다. 나와 일을 분리해버렸다. 나를 좋아하고 싶었기에.

 

  그러나 체념한 후에 진짜 문제가 시작되었다. 체념한 나를 나로 인정하기 어려웠다. 나를 좋아하고 싶어서 마음을 접었는데, 오히려 그 때문에 스스로가 지루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일 자체를 싫어하는걸까 이렇게 일하는 걸 싫어하는걸까 궁금했다. 아니다. 궁금하지 않았다. 중요하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이런 나는 내가 아니(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체념해버린 나도 나였다. 오히려 돈 버는 시간, 눈 떠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체념한 나로 살고 있으니 누군가는 체념한 내가 나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게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체념 후에 비로소 가능한 일을 찾아냈다. 표정 없는 것들을 사랑하는 일. 체념하며 비축한 마음을 누구에게든 쓰는 일. 일이 아닌 일'하는' 누군가에게 마음 쓰는 일. 애쓰기로 했다. 대상보다 태도에. 그래서 뭐가 달라졌냐고? 솔직히 말해서, 모르겠다. 무언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여전히 일은 내 맘대로 되지 않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가 좋다 싫다를 반복한다. 그래도 좋음과 싫음 사이의 진폭을 안전 영역 안에 둘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조금 견딜 만해졌다. 그러니 마음 쓰지 않을 도리가 없네요. "더이상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돌멩이를 사랑한다는 것」)".



언스플래쉬

돌멩이를 사랑한다는 것

박소란


누구든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집 앞 과일 트럭이 떨이 사과를 한 소쿠리 퍼주었다

어둑해진 골목을 더듬거리며 빠져나가는 트럭의 꽁무니를 오래 바라보았다

낡은 코트를 양팔로 안아드는 세탁소를

부은 발등을 들여다보며 아파요? 근심하는 엑스레이를

나는 사랑했다 절뚝이며 걷다 무심코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

너는 참 처연한 눈매를 가졌구나 생각했다 어제는


지친 얼굴로 돌아와 말없이 이불을 끌어다 덮는 감기마저

사랑하게 되었음을


내일이 온다면

영혼이 떠난 육신처럼 가벼워진 이불을

상할 대로 상해 맛을 체념한 반찬을 어루만지기로 한다


실연에 취한 친구는 자주 울곤 했는데

사랑은 아픈 거라고 때때로

그 아픔의 눈물이 삶의 마른 화분을 적시기도 한다고 가르쳐주었는데

어째서 나는 이토록 아프지 않은 건지


견딜 만하다, 덤덤히 말한다는 것


견딜 만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텅 빈 곳으로의 귀가를 재촉한다는 것

이 또한 사랑이 아닐까 궁지에 몰린 사랑,

그게 아니라면


도리가 없다는 것 더이상

사랑하지 않을 도리가


우연히 날아온 무엇에라도 맞아 철철 피 흘리지 않을 도리가


오늘 소개한 시집: 박소란의 『심장에 가까운 말』 http://www.yes24.com/24/goods/17378553
'연연의 다정한 시(詩) 읽기'는 시(詩)를 빌어 일상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시 일기'이기도 합니다. 격주 아무 요일에 올라옵니다. (간혹 쉬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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