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새 장편소설부터 스테디 시리즈까지, 대신 읽고 정해줌
베스트셀러라고는 하는데,
나와 맞을지 모르겠다고요?
여러분의 시간과 돈은 소중하니까!
느빌의 에디터들이 매달 베스트셀러를
100쪽까지 읽고 더 읽을지 말지 결정해드립니다!
해리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순례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인생 우화
이주(자극적인 것들에 찌들어버린 스릴러광):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도가니』등의 작품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비추며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져온 공지영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 '해리'는 '해리성 다면 인격장애'에서 따온 것으로 등장인물의 이름이기도 하다. 해리는 겉으로는 장애인을 돕는 활동을 하는 것처럼 포장하고 SNS를 통해 자신의 어려운 상황을 내세우며 모금 활동을 하지만 실상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기부금을 사용한다. 이처럼 소설은 우리 사회 속의 악이 더 이상은 단순한 모습이 아닌 다면적인 형태이며 종교, 정치, 사회 속에 속속들이 파고 들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꽤나 긴 장편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1권을 끝까지 읽어보았다. 하지만 뭔가 몰입이 될 듯 하면서 몰입이 어려웠다. 층층이 쌓여있는 악행들을 하나하나 파헤쳐가는 과정에서의 속도감이 그렇게 빠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사실 이러한 악인의 모습이 그렇게 새로운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또한 소설 속의 악인을 철저하게 악인이라고 규정짓기에는 정의롭게 사는 것이 더 어려운 세상임을 감안하면 조금 진부한 주제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분명 꼭 필요한 사회 고발 소설이긴 하겠지만 솔직히 지금의 나에게는 별로 땡기는 않는 것이 사실. 2권까지 이어갈지 잘 모르겠다.
연연(주말마다 초록을 찾아 헤매는 회사원): 하도 유명해서 다들 읽었다고 착각하는 스테디셀러,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 신간. 새롭게 쓴 책은 아니고, 시리즈 중에서 주요 산사를 다룬 부분을 골라 다듬어 엮었다. 지난 6월 우리나라 산사(山寺) 7곳이 '산사 Sansa'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기 때문.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산사순례』는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찰을 비롯해 부석사, 선암사, 봉암사 등 총 16곳을 소개한다. 첫장을 펼치면 특별판에 걸맞는 산사 소개글이 나온다. 인도와 중국에 석굴사원, 일본에 사찰정원이 있다면 우리나라엔 산사가 있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끄덕. 우리나라 문화재 전문가답게 산사의 유래부터 배치까지 짚는다. 첫 산사는 영주 부석사. 지친 마음을 쉬어줄 정취를 느껴보고자 책장을 넘기는데... 어쩐지 글이 덜걱거린다. 한문이 너무 자주 쓰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예상보다 깊이 들어가서일까? 마음을 쉬어주고 싶었는데, 머리를 더 쓰는 기분. 검색해보니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첫 발간일이 1993년이란다. 사진 크기나 질도 요즘 책이랑 비교하면 못내 아쉽다. 음식이 맛있어도 그릇이 별로라면 손이 안 가기 마련. 저는 그냥 목차에 실린 산사에 직접 다녀오렵니다.
학곰(열린 마음으로 전자책 깎는 노인): 문학비평가이자 번역가, 불문학자였던 故 황현산 선생님의 생전에 마지막으로 출간된 책이다. 선생님의 2013년에 낸 첫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이후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쓴 짧은 글들과 비평을 책으로 묶었다. 혹 비평이나 문학과 같은 워딩에 진입장벽을 느끼셨다면,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 책은 학술서가 아니라 산문집이다. 옆집에 사시는 멋진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 같은 책.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을 한 줄로 소개한다면 나는 '어른'이 쓴 책이라고 소개하고 싶다. 그렇지만 '내가 젊었을 땐 말이야~'로 시작해서 '요즘 애들은 말이야~'로 끝나는 당신께서만 즐거운(때때로 역정으로 끝나는) 류의 어르신 서사는 아니다. 故 황현산 선생님의 글은 과거에 매여있지도, 확정적인 언어로 요즘 세대를 정의하지도 않는다. 현시대의 다이내믹한 상황들(공교롭게도 연재 기간에 많은 사건들이 있었다.)을 따라가면서 지금의 내가 취해야할 스탠스는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하는가에 대해 고민한다.(학자답게 세계문학에서 답을 찾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단호하게 일갈하고, 때로는 머뭇거리면서 솔직한 고백을 털어놓는다. 나는 그의 머뭇거림이 좋았다. '내가 확실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반복하는 선생님의 흔들림은 '어른'에게 꼭 필요한 요소인 것 같다.
'내가 확실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할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 타인의 입장에서도 생각할 수 있는 상상력이 있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있는 능력은 공감과 소통으로 이어지고, 이는 배려와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점차 믿음보다는 팩트가 우선되는 사회.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은 앞선 세대의 어른이 내미는 악수이자 다음 세대에 던지는 물음표라고 생각한다. 100p 이후로도 완독하며 나는 어떤 어른이 되어야할까 고민해보려한다.
다희(실시간 재미를 좇는 콘텐츠에디터)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등의 시집을 낸 류시화 작가의 우화 소설집이다. 프롤로그부터 긴 우화의 시작이 되며 에피소드 형식이지만 모두 헤움이라는 한 마을에서 발생하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헤움은 천사들이 실수를 하여 어리석은 영혼들이 떨어져 생긴 마을이다. 그런데 이 마을에서 이들은 자신들이 가장 지혜롭다고 믿으며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산다. 이 책에 실린 우화가 시인의 창작 우화인 것은 아니고 폴란드에서 구전되어 오는 우화들을 발굴하고 탈고한 것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일단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우화에 적응을 할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한끗차이로 누군가에겐 난해할 수 있는 상징들이 가득한 이야기들이기 때문. 그래서 멍때리고 읽다가는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는 건지 새삼 이상할 수도 있다. 이러한 종류의 이야기 속에는 풍자 속에 교훈이 숨겨 있어 의미는 독자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라지만 개인 취향이 갈릴 지점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내겐 조금 난해한 부분도 많았고, 그렇다고 상상력이 번뜩이는 설정들에서 재미를 찾기에도 아쉬운 편이었다. 모든 에피소드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에피소드들 속 '어떤 상황이든 관점을 다르게 가지고, 양보하며 살면 행복하다!'는 빤한 교훈은 미묘하게 불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