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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Jan 30. 2019

우리가 겪어야 했을 사춘기

* 느빌의 책장의 발제-녹취를 개편했습니다!

* 한 달에 한 주제를 정해서 책 2권과 영화 2편을 봅니다.

* 매주 수요일 발제 / 월요일 녹취가 업로드됩니다. 

* 이 뒷담화는 성장 키워드의 세 번째 텍스트 <보이후드>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기록한 글입니다.

* 이번 모임엔 박루저, 다희, 해정, 연연 님이 참여했습니다.


* 본 녹취록은 <너는 자라 내가 되겠지>를 읽고 오시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습니다.


     


다희 : 영화 <위플래시>와 대조되는 성장 서사라고 생각했어요. 뭔가를 이뤄나가는 서사가 아니라, 일상적인 순간을 계속 보여주는 영화였던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인물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게 하는 흥미로운 영화였어요. 재밌게 봤어요.     


연연 : <보이후드>라는 제목이고, 또 소년의 시각으로 상황을 보여주잖아요. 그런데 소년 곁에 있는 사람들 중에 엄마의 성장이라고 해야 할지. (그걸 성장이라고 부르는 게 맞을지 모르겠지만) 엄마의 시간이 너무 진하게 다가왔어요. 엄마를 중심으로 보면 결국 독립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고, 자기가 온전히 책임을 지고자 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잖아요. 이 영화가 소년의 시점을 취하면서, 주변 사람들도 어떻게 변하는지 보여주고 있구나 싶었어요.     




박루저 : 주인공 아이가 꼬마일 때 특정한 울타리 안에서 자란 건 아니잖아요. 꼬마인데도 불구하고 언제나 경계해야 하는 대상이 있었던 것 같아요. 매 순간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책임져야 했던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이 시간을 참아서 성장할 거야’가 아니라 ‘순간을 살다 보면 어느새 나는 내가 되어있을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던 게 아닐까요.   

   

제가 일하는 곳에서 대기업 두 군데랑 같이 협업을 하고 있는데요. 한 사람은 젊었을 때 창업을 해서 회사를 키운 분이고, 한 사람은 회사원 생활을 하고 기업을 만든 분이셨어요. 인생의 경로가 달랐죠. 근데 하는 말은 비슷하더라고요. “돌아봤을 때는 성장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냥 버티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아름다운 노력”이라는 것을 모르겠다는 말도 했어요. 노력이었다고 지금에 와서 정의를 내리는 거지, 그 당시에는 그게 노력인지도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보이후드> 소년의 삶도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연연 : 많은 사람들은 그런 시간의 흐름, 변화를 흔히 ‘성장’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시간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변하는.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서 ‘성장’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맞는 걸까, 싶었어요. 마지막에 가서는 시간의 축적 대신 ‘흐름’이라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차곡차곡 쌓아서 성장하는 것보다, 흐름을 타고 타고 또 타서 무엇이 되어있는 것.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해정 : 영화를 보는 내내 촬영에 대한 감독의 곤조(?)가 느껴졌어요. 그 곤조가 좋은 의미로 생경하게 다가왔고요. 그리고 ‘늙어간다는 것’을 관객이 직접 보게 만드는 방식이 좋았어요. 주인공의 변화, 내지는 생각을 배우도 스스로 느끼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시간, 성장, 흘러간다는 것. 그 대사의 무게가 형식 때문에 더 확연해지는 것 같아요. 그 무게감이 묘하게 다가오더라고요.     

           

박루저 : 영화라는 매체를 되게 잘 활용한 영화인 것 같아요. 영화나 사진은 그 순간을 잡아버리는 매체잖아요. 묘사된 것을 상상해야 하는 책이 아니죠. 실제 인물이 늙어가는 걸 그대로 보여주니까, 되게 묘한 긴장감이 있었어요. 비포 시리즈도 저에게는 그랬고요. 제작 방식이 언제나 실험적이고 특이했던 것 같아요. ‘영화’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번외 1 : 정치적으로 보았을 때

     

박루저 : 다큐에 흔히 기대하게 되는 정치적인 시선이 있잖아요. <보이후드>는 굉장히 다큐스러움에도 불구하고 그런 정치적인 시선은 취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다큐가 가진 효과만 취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흑인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거나, 중산층 백인 여성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거나, 결국 영화에 ‘주변인’들은 없는데... 마치 그것이 보편적인 서사인 것처럼 느껴지잖아요. 다큐의 효과만 취했다는 면에서 감독이 영리한 사람이다는 생각을 했어요.     


연연 : 마지막 남편도 어찌 보면 전형적인 백인 캐릭터인데.. 일부러 그랬나 싶기도 했어요. 남편들의 직업이 교수, 보안관인 것도 그렇고요.     


   


소년의 아빠들     


해정 : 아빠였던 사람들을 굳이 ‘가부장제’와 엮어서 보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그들이 처음 대사를 칠 때부터 뭔가 ‘쎄함...’이 느껴지더라고요.      


연연 : 저는 처음에 친아빠가 별로였는데, 나중에는 가장 좋은 사람이 되더라구요. 친아빠만한 사람이 없었어! ‘사람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걸 보여주려는 걸까, 싶었어요. 

    

다희 : 근데 친아빠가 얄미웠던 부분도 있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서 놀아주기만 하는 거니까,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      


연연 : 맞아. 초반에 얄미웠어.      


박루저 : 친아빠가 대화하는 방식이 좋았어요. 겉도는 얘기만 하면서 보내지 않으려고 애쓰는 거요.     

  

다희 : 그런 대화법은 신기했어요. 그리고 문화가 달라서 그런지, 누구나 다 솔직하게 대화하는 것도 신기했어요. 아이 앞에서 '너를 갖게 된 것은 실수였다' 고 얘기하고. 정말 별 얘기를 다 하잖아요.      


연연 : 그런데 친부모와 자식 사이에 주요한 갈등은 없는 것 같아요.       


박루저 : 그들 사이에는 유대감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연연 : 부모와의 갈등은 대체로 양아버지와의 갈등이었고요.        



 



인생 무엇     


연연 : 영화 <비포~>에서 두 인물이 싸우는 장면을 보면서 ‘너무 현실적이다’ ‘너무 잘 알겠는 마음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보이후드>도 마찬가지였어요. 영화 전반에 큰 갈등은 없어요. 대부분 인생과 떼어놓을 수 없는, 그래서 안고가게 되는 지난한 갈등들이에요. 사소하게 맨날 일어나는 것 같은 갈등들이죠. 누구나 가정에서 느끼게 될 갈등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발제문에도 있는 얘기지만, 이 영화가 인생의 주요한 큰 사건을 ‘생략’하고 있는 것이 좋았어요. 여자친구랑 헤어진 것을 얘기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잖아요. 지지부진하게 싸우는 장면을 보여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그런 것을 과감히 들어내고 ‘그 이후’의 얘기에 집중하잖아요. 그런 보여주기 방식이 좋았어요.     


박루저 : 결혼하는 장면도 그렇고. 결정적인 장면은 늘 없었던 것 같아요.     


다희 : 만약 그런 결정적인 순간들을 보여줬다면, 저는 “얘는 이런 사건 때문에 성격이 이렇구나” 이런 식으로 판단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런 걸 보여주지 않으니까, 제가 섣불리 판단할 수 없더라고요.      


연연 : 그리고 그런 주요한 사건이 생략되어서 그런지 ‘다들 비슷하게 살고 있구나’하는 인상도 받았어요.      


해정 : 결정적인 사건은 굳이 보여주지 않으면서, 시간의 축적만큼은 집요하게 보여주는 이유가 뭘까요.      

다희 : 의미도 있고, 화제성도 있고. 이런 제작방식이 가능했다는 것 자체에서 오는 대단함(?) 때문이 아닐까요.      

연연 :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느끼는 ‘현실감’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까요. 감독이 왠지 ‘우연성’을 즐기는 사람 같아요.     


해정 : 맞아요. 시나리오도 왠지 확실하게 정해져있지 않았을 것 같아요.      


다희 : 영화 <비포~>도요! 근데 시간의 흐름이 잘 보이는 영화다보니까, 시간에 따라 게임기가 바뀌거나 해리포터 시리즈가 언급되는 것처럼, 어떤 ‘변화’를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미시사를 기록하는 인류학(!)처럼 모아놓으면 하나의 자료가 될 수도 있다는 게 재밌었어요.        




번외 2 : 영화는 영화다     


다희 : 현실성이 넘치다가 중간에 ‘아, 이건 역시 영화다’라고 확 느껴졌던 부분이 있어요. 주인공의 엄마가 하수구 고치는 사람에게 공부하라고 얘기했는데, 나중에 그 사람이 매니저가 되어서 나오잖아요. (웃음) 매니저가 엄마에게 ‘감사합니다. 그때 당신의 한마디가 내 인생을 바꿨어요.’라고 얘기할 때 진짜 ‘영화’ 같다고 생각했어요.      


연연 : 순간 ‘한국 드라마인가?’     


일동 : (웃음)      


연연 : 그런 부분이 자충수라는 걸 알았을 텐데. 왜 넣은 걸까요.      


해정 : ‘한마디’에 대해 감독 본인이 믿는 바가 아닐까요.      


다희 : 감독은 지나가는 순간순간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성장이 가능하다면 

    

박루저 : 영화를 보면서 ‘사춘기 때 내가 고민했어야 했던 것이 저것이었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부모님이 대부분의 결정을 대신 내리잖아요. 우리는 사춘기 때 해야했던 고민을 놓친 채로 대학을 가버리고. 그래서 영화 속 주인공이 진짜 사춘기구나, 싶었어요. 우리는 경험한 적 없는 사춘기.      


다희 : 우리가 겪어야 했을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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