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실험
2012년, 나는 알라딘에 자주 다녔다. 헌책방 사업도 카페처럼 브랜드가 되었고, 그 중 알라딘은 내가 가장 간편하게 갈 수 있는 현대식-헌책방이었던 거다. 책을 일일이 책장에서 찾는 번거로움은 없었고, 검색을 통해 내가 찾는 책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있었다. 또 책방 주인과 가격에 대한 흥정없이-어떤이에게는 아쉬울 수 있겠지만-정해진 가격으로 책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알라딘에 가서 헌책을 사는 건 곧 내 일상 중 하나가 되었고, 내 방에는 곧 알라딘에서 산 책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오늘 소개할 <낭만파 남편의 편지>역시 2012년~2013년 동안 내가 알라딘에서 구입한 헌책 콜렉션 중 하나다.
작가 안정효는 소설가로 등단했지만 번역가로도 활발히 활동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원래 영미권 문학 번역가인줄 알았다. 번역가가 글도 이렇게 잘 써? 라는 생각을 하며 나는 또 한 번 소설가의 꿈을 두 번은 더 접었다. 후에 그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동일인의 에세이<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를 번역했다. <다시 찾아본 멋진 신세계>는 제작년 서점에서 구입했고, 그가 번역한 <멋진 신세계>는 아는 지인에게 받았고, 대신 나는 커피 한 잔을 대접했다.
1995년 출간된 <낭만파남편의 편지>는 총 3편의 중편소설을 담았다. 오늘의 헌책방에선 그 중 첫 번째 소설이고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낭만파남편의 편지>와 마지막 작품인 <백합은 이렇게죽는다>에 대해 짤막히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낭만파 남편의 편지
첫 번째 소설이고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낭만파 남편의 편지>는 한 부부의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실험적 소설이다. 왜 실험이냐, 이 소설에는 대사가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남편과 아내를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내려다보며 두 인물의 심리와 생각묘사가 전부다.
오늘의 모든 것이 어제의 모든 것을 되풀이하는 행위라면 오늘은 오늘로서 존재하지를 않고 오늘로서의 의미를 상실해야마땅한데, 그래도 그가 날마다 똑 같은 하루를 하루씩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는 것은 이상한 일일 수밖에없다고 남편은 생각했다.
텔레비전의 아침 방송이 다 끝나고 저녁 방송 예고와 애국가까지 나온 다음에야 거실 소파에서 일어나 신발장에서총채를 꺼내 들고 주섬주섬 집안 청소를 하면서 아내는 요즈음 살아간다는 것이 참 심심하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아내 모두는 이 일상적인 반복에 싫증을 느끼고 있고 독자는 주인공들이 무얼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주인공의 심리를 모두 알고 있음에도 이들이 어떻게 행동할지가 궁금해진다.
결국 남편은 하루의 싫증을 타개하고 아내와의 관계개선을 위해 연애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남편이 택한 건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단 한 문장을 쓰고 발신자를 <그대를 사모하는 남성으로부터>라고 한 것. 그리고 이때부터 소설이 꼬이기 시작한다.
아내는 누가 보냈는지 몰라도 이런 불순한 내용의 편지가 그녀에게 배달되었다는 사실을 혹시 누가 알면 어떻게 하나본능적으로 두려워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내는 이 편지가 남편이 아닌 제3자가 보낸 것으로 생각하여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은 남편대로,
그렇지만, 만일 그것이 모르는 남자한테서 온 사랑의 편지라고 생각했다면,
왜 아내는 그런 편지가 왔다는 얘기를 그에게 하지 않았을까 하고 남편은 이상하게 생각했다.
이러한 식으로 소설은, 등장인물의 생각을 여과없이 보여주면서 서사를 극한으로 끌고 간다. 아내는 남편에게 끝끝내 편지가 온 것을 말하지 않으면서, 한편으로는 이 지긋지긋한 생활에서 잠시 떠나 새로운 남자를 만나는 것을 꿈꾸고, 남편은 그들의 부부생활에 대해 참담해 하면서 빗나간 마음으로 아내를 시험하기 위해 새로운 편지를 계속해서 보낸다.
남편과 아내가 어긋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이미 그들 서로가 서로를 사랑의 대상으로 보기엔 너무 멀어져 버린 것이라 나는 생각했다. 낭만이 끝나는 순간, 결혼생활은 대화의 단절로 이어지고 대화의 단절은 서로를 이해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한다.
텔레비전에서 주말의 명화를 다 보고 난 다음 남편과 잠자리에 든 아내는 남편이 등을 돌리고 벽을 향한 채로 무엇인지깊은 생각에 잠긴 것을 보고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내는 남편이 갑자기 그녀를 향해서 돌아누우며, 그녀를 뚫어지라고 노려보면서, 「요새 당신혹시 나한테 죄 지은 일 없어?」라고, 「당신 혹시요즈음 나에게 뭐 숨기는 것 없어?」라고 느닷없는 공격을 가해 올 것만 같아 자꾸만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두 인물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서로 다른 쪽으로 흘러가고 두 인물간의 대화가 없는 것이 오히려 ‘대화가 없는 부부’의 이미지를 납득시키고 전체 소설의 분위기와도 맞았던 것 같다.
결국 남자는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이런 편지를 쓴다.
더 이상 나는 그대를 먼발치에서만 보면서 살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점심식사를 같이 하면서 부담 없는 대화를 나눌 기회를 저에게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아래지도에 밝혀놓은 부천 전철역 악의 알라딘 카페에서 9월 3일금요일 정오에 당신을 기다리겠습니다.
부부의 결말은 직접 확인해 보시길...
#백합은 이렇게 죽는다.
마지막 소설은 <백합은 이렇게 죽는다>. 작가의 두 번째 실험은 첫 번째 소설과는 180도 다른 ‘대화로만 이루어진 소설’이다. #뒤에번호를 붙여 마치 시나리오인 척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대화 안에 설명을 적절하게 집어넣음으로써 대화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나 역시 처음 소설을 읽을 때 이를 인지하지 못했다.
소설의 줄거리는 이렇다. 남편이 경찰인 402호에 사는 여자는 옆집에 이사온 401호 여자를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여자의 나이와 직업을 추측하고 그것을 곧이 곧대로 맞다고 생각한다. 염탐을 근거로 401호를 방문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계속해서 옆집이 이상하다고 느낀 나머지 아파트 주민들과 함께 401호를 뒷산에서 관찰한다.
결국 반상회에까지 여자의 이상행동이 소문이 나고, 보다못한 여자는 반상회에 나가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고, 집밖으로 나가지 않는 남편이 있다는 말을 꺼내 고야 만다. 그녀의 남편은 교사인데,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집에서 칩거를 하고있다는 것.
그리고 소설의 시점은 여자의 남편이자 전직교사인 백선생으로 옮겨간다. 장르 역시 추리물에서 사회고발로 바뀌기도.
잘못된 것을 잘못된 것이라 말하지 못하고, 그저 권력과 돈 앞에서도태되는 한 인간의 말로를 보여주며 소설은 거의 병적으로 바뀐 박 선생의 모습을 그려낸다.
난 바깥이 무서워. 난 더러운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바깥엔 나가고 싶지않아. 더러운 벌레들이 너무 많이 우글거려서 말야. 난 너무나더러운 벌레들이 많으니까. 벌레들이라구. 세상은 너무 더럽고, 거기 나가면 나도 당장 더러워질 거야. 분명히 더러워져. 그러니까 난 안 나가겠어. 안 나간다구.
누구도 잘못됐다는 것을 알지만 그 잘못된 대상이 절대 권력을 가진 자라면? 범법을 저질러도 감옥에 가질 않는 다면? 사람들은 보복이 무서워 더 이상 고발을 하지 못하고 벌레처럼 숨어다닐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늘 상 봐왔던 우리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마치며
<낭만파 남편의 편지>는한마디로 실험적인 소설이다. 그리고 내 기준으로 그 실험은 성공했다. 자신만의 문체를 갖기마저 힘든 것이 글쓰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을 넘어 실험을 했고, <낭만파 남폄의 편지>에서 나는 대작의 감동은 아니지만 창작의 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니까‘문학의 진정한 의미’ 라던지 이런 건 던져버리고 가끔은 실험적인 소설을 쓰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험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성공한 실험은 성공이지만 실패한다고 해서 나쁜것도 아니다. 실패도 경험이 되고 보완점을 알려주니까. 앞으로 나도 실험을 종종 해볼 생각이다. 그 기반이 탄탄하지 않아도 실패해도 의미가 있으니까. 그것으로 내가 성장했을 때 자신과 타인을 구별해주는 일종의 표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느빌의 헌책방 4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