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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Feb 23. 2018

5. 사랑에도 자격이 필요할까?

- 이승우의 『사랑의 생애』 속 연애 이야기 -

  그는 혼란을 느꼈다. 그는 자기가 사랑을 전혀 알지 못하거나 아주 잘못 알아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한참 후에 그는 겨우 신음처럼 물었다. 사랑이, 대체 뭐예요?

- 이승우의 『사랑의 생애』중에서 -




1. 이 사랑의 시작


  우리는 종종 사랑에 자격운운할 때가 있다. '난 연애를 할 준비가 안 됐어.' 라거나 '걘 사랑할  자격이 없어.' 라거나. 이 모든 말든은 결국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과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나누어진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과연 사랑에도 자격이 필요할까?


  <사랑의 생애>의 형배가 “나는 사랑할 자격이 없어.”라며 선희를 거절한 것이 삼 년 전이다. 그랬던 형배는 직장동료의 결혼식장에서 선희를 다시 만나게 되고, 놀라운 것은 그때는 매우 잘 알고 있다고 여겼던 선희가 낯선 사람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내 형배는 자신이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선희와 만나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지만 뒤늦은 형배의 고백은 선희에게는 그저 당황스러운 일이며 귀찮은 일일 뿐이다. 형배를 떠나 있던 동안 선희는 영석을 만났고 그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설은 인물 개개인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의 모습을 담고 있다. 특히 형배나 영석은 사랑이 서툴며 사랑을 (거의) 처음으로 겪는 사람들이다. <사랑의 생애>는 이들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떻게 찾아오고 어떻게 행동하고 작용하지를 매우 세세하게 보여준다. 특히 사랑은 '하는' 것이 아니라 덮치듯이 찾아오는 것이다.



사랑은 덮친다. 어느 순간 사랑은 문득 당신 속으로 들어오고, 그러면 당신은 도리 없이 사랑을 품은 자가 된다. 사랑과 함께 사랑을 따라 사는 자가 된다. 사랑하는 자는 자기 속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하는 어떤 사람, 즉 사랑을 속수무책으로 겪어야 한다.


  실제로도 그러하다. 어린 시절 나는 대게 사랑(까지는 아니고 상대방에 대한 호감이지만 어쨌거나 사랑의 출발점이 호감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을 뒤늦게 깨닫는 편이었다. 이를테면 일 년 내내 붙어있을 땐 모르다가 반이 바뀌고 나면 그 아이가 너무 보고싶다거나 했다. 어쩌면 형배처럼 사랑이 떠난 후에 사랑을 인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 몇 번은 먼저 좋아하기도 전에 주변 친구들로부터 '너 쟤 좋아하지?'라고 명명당하고 나자 상대방이 신경쓰이며 좋아지기도 했다. 마치 영석의 경우처럼. 또 언젠가부터는 선희가 그랬듯이 나를 필요로해주고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을 보며 사랑의 감정을 확신하기도 했다.    


  다양한 모습으로 찾아오는 사랑은 결코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거나, 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더욱 무서운 것은,


이렇게 찾아온 사랑이,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모습으로, 그리고 나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나를 변하게 한다는 것이다.


2. 이 사랑의 끝


  영석은 선희의 앞에서는 마치 엄마를 잃은 어린아이가 되고, 선희는 그런 아이를 보살펴주고 품어주는 어머니가 된다. 이들의 변한 모습을 바깥에서 바라본다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정말 가까운 사람에게도 미처 보여주지 못한 모습이며, 스스로마저도 처음 마주하는 모습에 놀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반드시 관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선희가 보고싶다는 이유로 찾아온 영석은 선희가 형배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오해를 하게 된다. 영석은 배신감에 선희에게 울부짖으며 무너진다. 형배는 영석의 모습에 선희가 이런 남자를 사랑할 리 없다고 생각해, 동정하는 마음으로 사랑에 빠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기사도에 휩싸여 영석을 찾아가 선희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오히려 형배의 행동으로 인해 선희는 다시 영석에게 돌아가게 된다. 형배는 어머니의 사랑을 이해할 수 없었듯이, 이들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는 형배가 이전까지 사랑의 자격을 탓하며 진정한 사랑에 빠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영석이 보여준 구질구질한 모습이나 선희의 이해할 수 없는 결정들도 사실 '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오히려 영석이 형배보다 사랑할 '자격'이 있다고 느껴졌다.



▶ 이쯤에서 소설로 배우는 연애


  결국 덮치듯이 찾아온 '첫'사랑이 끝났을 때, 그 사랑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소설 속에서는 사랑의 시작과 변해가는 모습에 대해서는 나오지만 사랑이 끝난 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렇게 찾아온 사랑은 사랑이 사라져도 떠나지 않는 것 같다. 다만 사용하지 않는 부분이 되어 여전히 남아 있다가 다음 사랑과 함께 또 불쑥 나를 덮쳐온다. 그래서 종종 이전의 상처나 경험이 다음 사랑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사랑을 하지 않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특히 처음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당연히 어렵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가 연애를 망설이는 친구들에게 우스갯소리로 하곤 하던 말이 있다. 대충 "일단 걍 만나봐. 어차피 걔랑 평생 못 가. 헤어져." 라는 것이다. 안 만나보고 나중에 후회하느니 만나보고 실컷 상처도 받아보고 울면서 후회하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겪어야하는 사춘기처럼 첫만남과 첫헤어짐도 반드시 겪어야 하는 일이라면, 매도 일찍 맞는 것이 좋다고나 할까.


  어차피 사랑은 덮쳐오는 것이므로 사랑에는 자격이 없다. 다만 필요한 것은 어떠한 사랑이 찾아오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사랑으로 인해 변화하는 나의 모습도, 사랑으로 인해 유치해지는 상대방의 모습도.  


  소설 속에서 형배는 결국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과 함께 혼자 남겨진다. 하지만 언제든 또 다시 사랑이 시작되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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