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슨한 빌리지 Jan 25. 2018

4.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변화를 요구할 수 있을까?

- 이도우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속 연애 이야기 (2) -

  "난요... 가끔, 선우가 별을 잘못 찾아온 사람 같아요."
  진솔은 펜을 멈추었다. 애리는 베개에 뺨을 괴고 편안히 엎드려 있었다. 긴 머리카락이 어깨선을 따라 부드럽게 흘러내린 채 그녀는 혼잣말처럼 덧붙였다.
  "그래서 아무것도 강요를 못하겠어요. 선우가 하기 싫어하는 거... 체질에 맞지 않아 하는 거. 강요할 수가 없어요. 나도 그러기 싫고...."

- 이도우의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중에서 -



1. 이 사랑의 시작


  지난주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속의 진솔의 사랑에 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만큼이나 이들의 옆에 있던 '선우애리'라는 인물에게 눈이 갔다. 아마도 이들의 사랑에서 내가 좀 더 절실하게 고민했던 연애의 부분이 보였기 때문이리라. 


  우선 선우애리의 사랑을 이야기하려면 '선우'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선우는 머리를 길게 기르고 한복을 입고, 청학동에서 온 것만 같은 모습으로 인사동에서 찻집을 운영한다. 그는 종종 훌쩍 여행을 떠나버리고 그랬다가는 연락도 잘 닿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취직이라거나, 결혼이라거나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선우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자유로운 사람'인 동시에 '특이한 사람'으로 선우를 설명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커플의 만남 또한 말도 되지 않는다. 선우는 느닷없이 애리에게 "애리, 너 다음 생에도 나랑 만나자." 라는 한 마디로 고백을 했고, 애리는 그런 선우의 모습에 한눈에 반해 사랑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이 10년 동안 이어지며, 애리는 긴 시간동안 선우의 곁에서 그를 이해해주고 지지해준다.


  물론 선우에게는 여러 장점이 있다. 선우는 스스로가 자유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애리에게도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강요하지 않을 것이고, 물이 흐르는 대로 살아가며 운명이나 환생을 얘기하는 로맨틱한 면도 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기만의 스타일대로 살아가는 뚝심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나는 소설을 읽으며 애리에게 감정이입하였고 선우의 모습이 답답했을 뿐이다. 이런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 정말 노답일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결국 애리가 선우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안정적이고 평범한 사랑을 꿈꾼다는 것에 있다 . 애리선우가 자신에게 프러포즈를 해주길 기다리고 있다. 또한, 애리의 부모님은 선우를 못마땅해하고 있으니, 애리는 부모님을 설득하든, 선우를 설득하든, 헤어지든의 갈래에 서 있는 것이다.


  이처럼 사랑은 종종,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변화와 노력을 요구한다. 어쩌면 사랑에 빠질 때는 가장 장점이 되었던 것이 그 사랑을 유지하는 데에는 가장 단점이 되기도 한다.


2. 이 사랑의 끝


  애리선우가 '일반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 것 대신 안정적인 가정을 차리는 것이 그것이다. 때문에 이들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애리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선우에게 서운함을 느끼고, 반대로 선우애리에게 서운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다행히 소설은 끝내 선우애리를 위해 한 발짝 변화의 발을 내딛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단정한 모습으로 애리의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 것이다. 한편으로는 애리선우를 이해하는 것이기도 하다. 둘이 함께 세계여행을 떠나면서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사실 이들의 모습에서 느꼈던 것은 약간의 질투심이었다. 서른 살이 되기 전에 세계여행을 함께 떠날 동반자를 찾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는 이들의 모습이 정말 이상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 지구 한 바퀴?"

  이미 다 마음을 결정해버린 듯 애리는 당당히 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빨라도 3년 안에 안 돌아올 거 같아요. 현지에서 아르바이트 해가면서 비용 벌고 또 벌고... 그렇게 하면 십년이라도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눌러살지도 몰라요."

  선우가 빙그레 웃자, 애리는 할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버뮤다 삼각지대 같은 곳만 아니라면 괜찮아."


▶ 이쯤에서 소설로 배우는 연애

 
  몇 번의 연애 끝에 나 또한 알게 되었다. 이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조금도 변하지 않을 때도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또한, 상대방의 부족한 부분이 바뀌는 것보다 상대방에 대한 나의 마음과 나에 대한 상대방의 마음이 바뀌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다.


  아직은 상대방에게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의 짬은 되지 못하였다. 그래서 종종 쌓이고 쌓인 것들을 우수수 쏟아내기도 하고 종종 잔소리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나는 여전히 내 남자친구가 담배를 피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가 굳이 말하지 않더라고 내가 원하는 것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그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을 안다. 다만 굳이 바뀌지 않더라도 내가 말하는 것을 들어주기를 바란다. 그가 그런 모습을 버리지 못하듯이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내가 바라는 것은 그럴 때 그가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다. 어떠한 투정을 부리더라도 그가 그로 인해 지치거나 마음이 변하거나 거부감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때문에 내가 종종 투정을 부리더라도 그것에 지치지 않는 당신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보낸다.





<책으로 배우는 연애> 지난 이야기

매거진의 이전글 3.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