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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슨한 빌리지 Feb 27. 2018

최인훈 <광장> 읽은 척 가이드

문학토크, 허세가 80 뻔뻔함이 20.

* <문학 읽은 척 가이드>에선 상대의 몹쓸 문학 아는 척에 대응하는 읽은 척 스킬을 알려드립니다.

* 문학토크, 8할이 허세입니다. 기죽지 말고 허세엔 허세로 대응하세요!

* 프롤로그를 읽고 오시면 더 좋습니다.




0. 읽은 척의 기본. 줄거리 파악.


해방 이후 남한에서 철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노잼 주인공 이명준. 소시민 따위로 살 수는 없다며, 사회에서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어 하는 전형적인 중2병이다. 그는 아버지(아버지는 노스-코리아에 계신다. 북에서 열정페이로 대남활동 중) 친구 분의 집에 얹혀산다. 그 집에는 이명준 또래인 영미와 태식이가 있고, 그들은 부르주아의 자식답게 세상 고민 없는 YOLO족이다. 에브리데이 파뤼투나잇.


파뤼투나잇 중에 이명준은 영미의 소개로 ‘윤애’를 만나게 되고, 엄근진 자세로 여자를 돌같이 대하여 썸조차도 타지 못하고 헤어지고 만다. 그러나 이후 북에 계신 아부지의 대남활동 때문에 경찰서에 몇 번 끌려가서 뚝배기를 조금 두드려 맞고, 여기서 얻은 상처를 달래기 위해 뒤늦게 윤애를 찾아간다.     

서프라이즈 등장과 고백으로 윤애와 썸을 타지만, 윤애는 허구한 날 들이대는 이명준에게 밀당이 무엇인지 몸소 알려주고자 한다. 그러나 모태솔로 이명준은 이 밀당을 이겨내지 못하고, 이 참에 자신이 바라던 ‘사회적인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공산주의 국가 북으로 ㅌㅌ한다.


혁명뽕에 심하게 취해있던 이명준은 북한 사회에도 금방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다. 과거 공산주의 혁명정신은 공문서로나 남아있을 뿐, 실제 북한의 현실은 개개인의 욕망이 거세된 황폐화된 사회였기 때문이다. 결국 뭔가 해보겠다는 중2병 증상에서 드디어 벗어난 명준, '사랑'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시작한다. 병원에서 잠깐 스친 발레리나 '은혜'에게 꽂혀서 그들은 찐득한 썸을 타기 시작, 그러나 은혜는 자기 꿈의 빅픽쳐를 위해 (명준에게는 안 간다고 속이고) 모스크바로 ㅌㅌ한다. 


그리고 한국 전쟁 발발. 그 와중에 남한 구여친이었던 윤애는 베프 태식과 결혼하고, 북한 구여친이었던 은혜는 전쟁 중 죽는 비극이 일어난다. 남과 북 모두에서 삶의 의미를 잃은 이명준은 남한에서 포로로 잡힌다. 이후 남한-북한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몰랑 둘 다 이제 시러ㅜㅜ'하면서 '중립국'행을 택한다. 그리고 중립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세상을 향해 '수고링'을 외치고 바다 위에 멋지게 다이빙. 이명준의 인생 마지막 ㅌㅌ를 보여주며 소설은 끝난다.




1. '주제 파악'형 아는 척


문학토크에서 늘 그렇듯이, 대충 어디서 리뷰를 읽고 와서 요란하게 떠드는 아는 척은 있을 수밖에. 특히나 최인훈의 <광장>은 그 문학사적 의미가 매우 크고, 소설이 처음 발표된 시기가 1960년이라는 점 때문에 6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로도 자주 언급된다. 또한 다른 텍스트에서도 많이 인용되는 소재이기 때문에 주제 파악형 아는 척을 하기에 적당하다. 다음과 같은 멘트가 가장 흔한 아는 척이라고 할 수 있다.


"<광장> 전후의 한국소설들이 강박적으로 전쟁 체험을 리얼하게 그려냈다면, 최인훈은 오히려 전쟁이라는 거대서사를 삭제하고 ‘개인’이라는 미시적 이야기를 하는 것이야. 그럼으로써 전쟁 속에서 사라지 개개인을 복원하는 것이지! 말하자면 기존 소설들이 인간을 국가나 민족 때문에 서로를 죽이며 짐승으로 만들었다면, 다시 인간으로 복원하는 휴머니즘 작업을 <광장>이 한 셈이야!" 


이런 초보적인 아는 척에는, 다음과 같은 대꾸가 현명하다.


먼저,

음.. 맞아. 하하 굉장히 잘 아는구나? 그렇지만, 광장을 '인간'을 복원시킨 휴머니즘이라는 해석은 조금 맞지 않는걸?  광장은 오히려 휴머니즘과 연결되는 가족주의나 생존주의를 완전히 부정하고 있어. 온전히 개인의 ‘욕망’에 집중하면서 인간을 복원시켜. 그러니까 휴머니즘보다는, 주체적인 단독자로서의 인간을 강조하는 것이지 않을까?

정도로 상대의 허접함을 지적해준 뒤에,


"그리고 이데올로기만큼이나 중요한 <광장>의 주제는 사랑이야. 흔히 광장을 이데올로기에 대한 사유이자 사랑의 서사라고 하지 않니? 소설 속에서 이데올로기 따위를 별 것 아닌 것으로 만드는 게 사랑이거든. 세계와의 관계가 아무리 황폐해도, 사랑이 있다면 삶의 이유는 충분해진다는 것이지. 남과 북에서 모두 사랑을 잃었기에 이명준은 중립국으로 간 것이라고 볼 수 있어. 사랑을 뺀 <광장>은 거의 뭐 영미 없는 컬링 팀이 아닐까?"

라고 말하며 멘트 콤보를 날리면 성공!



2. '<광장> 흑역사' 아는 척


<광장>은 작가 최인훈이 오랜 기간 끊임없이 개작을 한 이력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연재하던 소설을 단행본으로 내는 과정에선 분량이 대폭 늘어나기도 했으며, 결말에 대한 부분이나 소설 중간의 묘사에 대한 것도 꽤나 많은 부분이 계속해서 바뀌어왔다. 출간된 거의 모든 <광장> 단행본의 앞이나 뒤에 개작에 대한 정보가 있기 때문에, 책을 그나마 훑은 독자의 아는 척 소재로 매우 적당하다. 가장 흔한 아는 척은 이런 식이다.


"주지하다시피, 광장은 작가가 끊임없이 개작을 한 소설로 유명하잖아. 물-논 너도 알고 있겠찌? 내 생각에 최인훈은, 시대에 맞게 소설을 변화시켜 왔던 게 아닐까 해. 60년대부터 점점 옅어지기 시작한 냉전체제에 맞춰 온 흐름이라고 볼 수 있는 거지! 소설이 나오기 시작한 이후부터 냉전에 대한 감각은 계속해서 줄어들었을 테니까 말이야. 훗."


이러한 전형적인 현란한 아는 척에는, 적당한 팩-폭과 함께 빈틈을 지적해주는 게 바람직한 읽은 척 대응이다.

음... 그렇게 보는 건 매우 게으른 시각이 아닐까?! 물논 너의 의견에도 당연히 쬐금의 일리는 있지만 말이야? 60년대부터 냉전에 대한 감각이 줄었다는 건 틀렸어. 오히려 한국에선 4.19가 5.16 쿠데타로 이어지면서 분단체제는 더 강화되고 고착화되지 않았니? 반공 이데올로기도 이때 굳어졌고, 배타적인 남/북 프레임이 강요되면서 제3세계(중립국)에 대한 상상은 삭제되었지.

로 시작하여 상대를 슬쩍 자극한 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이분법적인 강요에 꾸준히 대응해왔던 게 광장의 개작 과정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이분법적인 프레임 밖을 상상시키던 게 광장의 역할이었던 거야. 이 역할을 알고 있었던 최인훈은,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지 않는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중립’이라는 선택지를 강력하게 환기시키고 싶었던 것이지. 여전히 종북 프레임과 레드 콤플렉스를 자주 만나고 있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유효한 텍스트가 아닐까!?

라며 '진보 지식인' 코스프레마저 GET한다면 성공! 





2. '결말의 의미는 말야..' 형 아는 척

어떤 텍스트에나 열린 결말에 대한 아는 척은 요란하기 마련. <광장>도 예외는 아니다. 이명준의 자살에 대한 해석은 '느낌적인 느낌'같은 현학적 얘기들로 수없이 양산되어 왔으며, 아는 척의 소재로도 매우 적당하다.


"이명준의 자살은 상황 자체에 대한 부정이라구 볼 수 있어. 음.. 말하자면 자신이 회피한 상황에 대한 이중부정인 셈이지!? 한반도 어느 지역에서도 주체적으로는 살지 못한다는 환멸, 그리고 이걸 벗어나야 하는 상황. 이 상황 전체에 대한 부정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죽음으로 획득하는 주체성이자 실존인 것이지. 훗."


'죽음으로 획득하는 실존' 따위의 문구는, 그간 양산되어온 해석들의 단골 멘트이다. 이런 뻔한 아는 척에는, 더욱 현란한 대응이 필수적이다. 


아니야. 그건 너무 뻔한 얘기이지 않을까? 한 개인의 주체성을 박살 낸 분단 현실에 대한 저항이라는 해석은 너무나 흔하지 않았니? 어머나 혹시 90년대 비평을 읽은 건 아니겠지 설마? 호호호. 나는 이제는 조금 다른 관점이 필요하지 않을까 해. 

정도로 운을 떼주고, 


아무리 개인의 주체적인 선택일지라도, 외부에선 여전히 민족과 국가의 틀로 그 선택을 해석하잖니? 예컨대, 당시 중립국을 택한 사람들은 실제로 끊임없이 '국가를 버렸다'는 죄의식에 시달렸어. 그러니까, 소설가가 아무리 단독자의 주체적 선택이라고 강조해도, 그게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최인훈은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야. 그래서 진짜 주체적 선택은 자살밖에 업는 게지. 

라고 한다면 적당한 마무리다.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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