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밍치 Oct 27. 2024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좋은 리더란 견고한 체계를 만드는 사람-

복학 아싸가 될까 두려워 가입한 동아리. 동아리원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다. 내가 느낀 소중한 감정들을 다른 이들에게도 나눠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회장이었다. 2년간 동아리를 굴리며 얻은 깨달음을 지난 9회분의 에피소드에 걸쳐 정리해왔다. 나의 동아리 성장기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지금까지 얻은 깨달음을 총망라하고자 한다. 


하나, 동아리의 핵심은 관계에 있다. 


동아리는 놀고 먹는 곳인가요? 다소 거친 표현이긴 하지만 어느 정도는 맞다. 효율과 합리를 따지는 순간 동아리의 본질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엄격한 심사기준과 활동목표를 가지고 전문적으로 운영되는 동아리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의 친밀도보다 목표의 달성여부에 더 비중을 두는 순간부터 이는 동아리라기 보단 학회나 스터디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한다. 구성원 간의 친목만이 지상최대의 목적이 되면 안되겠지만 확실한 사실은 이 친목이라는 것에 상당한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점이다. 회장이 일이라면 사람들이 정을 붙일 있을만한 환경의 조성이다. 핵심은 부담스럽지 않기! 누구라도 선뜻 참여할 있을만한 판을 깔아줘야한다. 구체적으로는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말이다.


1. 소규모 활동을 산발적으로 개최하기 보다는 대규모 활동을 간헐적으로 개최하기
2. 신입부원과 기존부원이 골고루 섞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3. 영화감상이나 전시회감상 같은 긴밀한 활동보다는 식사나 술자리 같은 가벼운 활동을 지향하기 


지난 20여개월간 회장을 맡아오며 시행했던 친목활동들의 참여율을 분석한 결과, 소규모 활동보다는 대규모 활동일 때 참여율이 확연히 좋았다. 소규모라 친목활동이라함은 다같이 보드게임 카페를 가거나 돗자리를 펴고 소풍을 가는 등의 활동을 말한다. 활동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힘들어 어쩔 수 없이 오순도순 모여 놀아야 하는 그런 활동들이 소규모 친목활동이다. 가장 큰 특징으로는 참가할 수 있는 인원의 상한선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이게 참가하는 사람, 특히 신입부원 입장에서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그도 그럴게,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줄 수록 책임감은 무거워지기 때문이다. 


줄다리기 이론에 대해 들어봤는가? 줄을 당기는 사람이 나 밖에 없을 때는 젖먹던 힘을 다해 줄을 당기던 사람도 머릿수가 늘면 늘수록 힘을 아낀다는 이론이다. 요컨대 참여하는 사람의 수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책임을 의탁한다. 여기서 책임이란 적극적으로 나서서 어색한 분위기를 해소할 책임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참여하는 사람이 줄어들수록 왠지 내가 말을 붙여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부여된다. 이뿐이면 다행이지, 나빼고 다 친한 사람들끼리만 모이는 자리인데 내가 눈치 없이 끼는 게 아닐까 하고 지레 겁을 먹기도 한다. 


"나만 겉돌면 어떡하지"
"내가 굳이 말을 붙여야 하나"
이런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규모를 늘려야 한다. 

사람들을 많이 모으기만 한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다. 기껏 용기를 내어 자리에 나왔는데 나 빼고 자기들끼리만 아는 이야기로 깔깔거리고 있다면 그만큼 유감스러운 상황도 없을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인원을 적절히 섞어주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유감스러운 상황은 "아는 사람들끼리만" 모여 있을 때 발생한다. 사실 그들을 탓할 수도 없다. 만나던 사람들끼리만 만났으니 자기들끼리만 아는 얘기 하는게 당연하다. 이런 분위기를 풀어주려면 신입부원과 기존부원의 비율을 적절히 조절해야 한다. 같은 테이블에 섞여 있는 신입부원의 비율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서로 눈치를 보며 대화의 주제를 조절한다. 앞에 앉아 있는 새로운 사람을 의식하는 셈이다. 이건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사실 기존부원분들도 선뜻 신입부원 분들께 말을 걸기가 어색해서 자기들끼리만 모인 적도 있다고 한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동아리를 운영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총대를 메고 섞어주는 편이 나은 셈이다. 


또 활동의 종목도 중요하다. 이는 앞서 말한 부담감이라는 측면과도 깊게 연관되는데, 어색한 사람과도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활동종목을 구성해야 사람들이 용기를 내기 때문이다. 위에서 예를 든 영화감상이나 전시회감상 같은 활동, 물론 다 좋은 활동들이다. 하지만 생판 모르는 남과 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 가까이 붙어있어야 한다면 참여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까짓 영화 보는 게 뭐 그렇게 부담이냐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부담스러움의 선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근거 없이 막연하게 "사람들은 영화를 좋아할거야!" 라며 활동을 기획하지 말길 바란다. 신입부원과 함께하는 친목활동은 누구와도 거리낌 없이 할 수 있는 활동이어야 한다. 굳이 따지면 밥이랑 술 정도? 


둘, 그럼에도 운영은 유익해야 한다


서로 어울리는 것만 제일 중요하다는 식으로 서술하여 본질이 다소 호도되었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동아리의 내실 있는 운영에 누구보다 진심인 사람이었다. 언제는 사람들끼리 친한 게 제일 중요하다고 해놓고서는 딴소리 하는 이유가 뭔가 하면 이 내실 있는 운영이라는 것이 사람들을 불러모으는 촉매제가 되기 때문이다.진지한 자기계발을 목표로 동아리에 가입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실 있는 활동의 의의는 "지적 허영의 충족" 정도면 충분하다. 사람들이 동아리를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는 "형편"이 되겠다. 특정요일의 저녁시간을 비울 수 있는지, 알바나 수업 같은 중요한 일정을 소화하고도 시간이 남는지 등등. 아주 기본적인 조건으로 필터링을 하고 나면 그 다음으로 고려하는 건 "재미"이다. 여기 들어가면 나랑 잘 맞는 사람들이 있을지, 같이 시간을 보내면 즐거울 지 등등을 면밀히 따져본다. 마지막이 되어서야 고민하는 게 활동종목이다. 사진동아리라고 모두가 사진에 관심이 있고, 회화동아리라고 모두가 미술에 조예가 깊다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동아리 가입자들이 어떤 종목(토론, 사진, 회화, 농구니 하는 것들)을 고르는 데는 논리적인 근거가 있지 않다. 막연하게 그럴 듯 해 보이는 무언가를 감에 의거하여 선별한다.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이 뒤에 이어지는 합리화의 과정인데 진행은 다음과 같다. 일단 재미있어 보이는 무언가를 고르고나면 활동종목이나 동아리 성격에 맞추어 자기 자신을 짜맞추기 시작한다. "나는 예전부터 사진 찍는 걸 좋아했으니까.", "미술은 교양 있고 지적인 활동이니까." 등등의 말로 본인의 자아상을 동아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동아리원의 페르소나에 맞추어 규격화한다. 다만 이러한 편집의 과정으로부터 비롯되는 자아상의 일치는 그 정도가 대단히 얕은 것이어서, 처음에는 야심차고 고상하게 시작했다고 할지라도 끝에 가서는 현실적인 이유를 들먹이며 합리화되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토론동아리의 경우, 신입부원 면접을 진행했던 모든 사람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말을 잘 하고 싶다", "토론을 연습해보고 싶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당해지고 싶다" 등의 이유를 들며 가입의사를 밝혔지만 정작 그들 중 토론활동에 지속적이고 열성적으로 참가하는 비율은 대단히 적었다. 그런 반면 개강총회나 종강총회와 같은 다같이 모여 술먹고 어울리는 활동의 참여율은 항상 높았는데, 이는 사람들의 관심사가 진심 어린 자기계발이나 지적성장과 같은 내면적이고 심오한 활동이 아닌, 인맥형성 등의 피상적이고도 외면적인 상호교환적 활동에 치중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다소 어렵게 설명한 감이 있지만 결론은..


동아리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볍게 놀러왔다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은 내실 있게 운영되어야 하는데, 바람직한 동아리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내용처럼 사람들의 본 목적은 따로 있다. 다만 직접적으로 티를 내지 않을 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놀러온 사람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최소한의 교양과 견문을 겸비한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사람들은 활동에 참여하기를 선택한다.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나는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교양 없다고 몰아갈 생각이 없다. 활동에 꼬박꼬박 참여한다고 해서 교양이 넘친다고 감쌀 생각은 더더욱 없고. 이유가 어찌 되었든 정규활동은 운영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즉, 최소한의 상식을 겸비한 사람들을 걸러줄 일종의 필터가 되어주기 떄문이다. 


셋, 온오프는 확실해야 한다.


동아리가 되었든, 학회가 되었든, 학생회가 되었든. 그 어떤 조직에서든 리더를 맡는 일은 설레고도 벅차오른다. 이는 일시적인 감정일 뿐이며 잠깐의 울림이 사그라들고 나면 남는 것은 지지부진한 시행과 증명의 과정. 물론 세상에는 모든 일을 뚝딱뚝딱 잘 해내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내가 될 거라는 생각은 버리는 편이 좋다. 그렇기에 우리는 온오프를 확실히 해야한다. 회장의 자아에 자기 자신을 너무 의탁하다 보면 세상 모든 일이 내 잘못처럼 느껴지게 된다. 사실 그런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미 예전 에피소드에서 언급한 바 있지만 사람 한 명이 끼칠 수 있는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면 나 하나만의 잘못이라기 보다도 환경의 영향을 받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확률이 높다. 백번 양보해서 내 잘못이 맞다고 쳐도, 그게 내 자신을 좀먹을 근거가 되지는 못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일이 끝나면 그냥 잊어버리는 거다! 지금까지 했던 실수는 전부 다 까먹고 또 같은 짓 반복하라는 말이 아니다. 24시간 내내 회장이라는 자리에 묶여 살지 말라는 거다. 


회장 모드는 회의나 활동 중에만 켜도 무방하다. 아닐 때는 자기 인생을 사는 데 집중하는 편이 좋다. 우리가 동아리에서나 회장이지 다른 곳에서는 그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다. 집으로 돌아오면 설거지도 하고 밥도 차려야 하는 주부로서의 나, 학교에서는 공부도 하고 수업도 들어야 하는 학생으로서의 나, 친구들 앞에서는 즐겁게 웃고 떠들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인간으로서의 나. 이런 다면적인 자아 구성을 무시한 채 상시 회장모드를 켜놓고 있으면 얼마 안 가 지치기 마련이다. 그도 그럴게 이 동아리 업무라는 게 해도해도 끝이 없다. 이거 마무리하고 나면 저거 해볼까 싶고, 저거 끝날 즈음 되면 또 어디서 빵꾸가 나고. 뭐랄까 누가 물조리개로 물을 계속 붓는 와중에 모래성을 짓는 느낌? 


그저 잘 하고 싶었을 뿐이다. 쌓여가는 추억이 애틋했고, 함께하는 시간이 소중했다.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다른 사람들도 느꼈으면 했다. 그래서 나는 토론동아리 회장을 맡았다. 햇수로는 2년, 학기로는 4학기째 나는 회장을 맡고 있다. 


"어떻게 하면 동아리를 잘 굴릴 수 있나요?"
.
.
.
아직까지도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글을 쓰는 지금도 막막하고 답답한 점 투성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이 든다. 답을 꼭 내가 내려야만 할까?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누군가가 이 글을 보고 힌트를 얻을 수 있다면. 명확한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 할 지언정 최소한 비슷한 실수나마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면. 내가 지나온 번민과 고뇌의 시간이 조금이나마 의미를 가지리라 믿는다. 나의 동아리 성장기는 여기서 막을 내리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의, 그리고 여러분의 동아리가 계속해서 자라나길 바라며. 


2024년 10월 27일 홍밍치 올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