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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밍치 Oct 13. 2024

대체 뭐가 그렇게 문제였을까 (1)

-흥하는 동아리에서 망하는 동아리로 갈 수밖에 없던 세 가지 패착-

내가 사랑하는 우리 동아리를 살려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던 나. 노력이 무색하게 모든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고 마음처럼 풀리지 않는 일에 지쳐버렸다. 결번아웃이 와버리기에 이르는데. 지나간 일을 곱씹는 데는 의미가 없다지만 이번만큼은 경우가 달랐다. 잘못한 점이 있다면 깡그리 고쳤어야 했다. 대체 뭐가 그렇게 문제였을까.

문제는 세 가지였다.
인격의 실패, 패턴의 실패, 기획의 실패.


이번 글에선 격의 실패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젊은 꼰대". 나를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이러했다. 겉으로는 열려있는 척, 포용적인 척, 잠자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이미 답을 내려버리고선 주변을 은근히 내려다보는, 그런 사람이 나였다. 과 속이 다른 탓에 여러 번 갈등이 있었다. 그중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가장 결정적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시작은 임원진회의다. 당시 우리 동아리는 개강총회를 앞두고 있었다. 학기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인 개강총회. 대형행사인 데다 학기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자리여서 각별히 신경 썼다. 문제는 참가비를 책정하발생했다. 나는 노쇼비를 걷어야 한다는 입장을 강력하게 밝혔다. 노쇼비란 참의사를 밝혔으나 행사 당일 참석하지 않은 사람에 대한 일종의 페널티이다. 기껏 온다고 해서 식당 예약 다 해뒀더니 행사 당일 꽁무니를 빼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머리를 숙이는 건 나였고 아무도 먹지 않는 음식에 대한 상은 동아리비용으로 이뤄져야 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했다.

 

임원진 중 한 명은 강력한 반대의견을 밝혔다. 솔직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기가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저렇게 바락바락 우기고 든다는 게. 노쇼비를 너무 높게 책정해서 그런가 했다. 가격낮춰서라도 걷자는 의견을 내보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이쯤 되니 답답해졌다. '내가 이렇게나 양보했는데 받아들이지를 않는다고? 말이 이렇게 안 통해서야..'.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은 나였다.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예전 노쇼사태에서 동아리비용으로 음식값을 물어주긴 했지만 그건 고깃집이라서였다. 고깃집에선 예손님 수만큼의 음식을 미리 손질해놓아야 한다. 한 번 칼을 댄 고기는 되돌릴 수가 없다. 온다고 해놓고 오지 않은 사람 몫 나머지들의 책임이 된다. 우리가 음식 값을 물어줄 수밖에 없었다. 개강총회는 달랐다. 이번 행사가 열리는 곳은 무한리필집. 우리가 먹지 않더라도 쌓여있는 음식은 다른 사람이 퍼다 먹으면 다. 노쇼비를 걷기엔 근거가 빈약했다. 뒤늦게 안 사실이지만 예약한 인원에서 대여섯 명 정도 차이가 발생하는 건 다른 모임에서도 흔한 일이었다.

달라진 배경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내 생각만 강요했다.
따라오지 않으면
 피곤한 사람, 성가신 사람 취급했다.


오만과 방자의 극치. 더욱 괘씸한 점은 능력마저 없었다는 점이었다. 독선적일지언정 유능한 리더는 싹수없어 보일 수는 있어도 최소한 답답하지는 않다. 그러나 나는 정반대. 고집 세고 융통성 없는 주제에 최소한의 이성과 합리마저 들어낸 인간. 리더로서는 최악의 자질을 가졌음에도 나는 남탓하기에 바빴다. 사실 이런 태도가 문제를 일으킨 건 처음이 아니었다. 가장 강력한 반대의사를 내비친 임원진 친구를 A라고 하겠다. A와의 협화음은 학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기가 시작된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즈음 개인적으로 면담을 신청해 왔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아 심각한 일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잠시 숨을 고르고는 A는 말을 이었다. '저 이번 학기까지만 하고 그만둘 것 같습니다'. 명시적으로 공지된 적은 없지만 보통 동아리 임원진의 임기는 1년이었다. 절반도 채우지 않고 그만두겠다, 그것도 학기가 시작된 지 일주일도 안 되어 그런 말을 한다면 분명 무언가가 유가 있을게다.


A는 말했다. "저희 일하는 방식이 너무 안 맞아요. 매번 임원진 회의 할 때마다 반대의견 내는 것도 저 밖에 없어서 힘들고요. 회장님 자료 올린다고 해놓고 까먹어서 제출기한 늦는 것도 별로예요. 그리고 매번 회의록 적으시는 걸로 아는데 왜 자꾸 저번에 했던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거예요?". 처음 들었을 때는 머리가 멍했다. 내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핀잔(?)을 들은 적이 있었나 싶어서. 그리고 이내 거슬리기 시작했다. 무슨 대단한 이야기하나 했더니 별 것도 아닌 걸로 사람을 불러냈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진짜 제정신 아니었다. 그 친구 딴에는 나를 믿으니까 구태여 이야기해 준 걸 텐데 다른 이의 진심을 성가신 것 취급하다니.

 

일단은 받아들이는 척하기로 했다.
마음 깊숙한 곳
나의 진심까지 와닿기에는
내 아집이 너무나도 강했으니까.


그 뒤로는 앞서 설명한 그대로. 회의할 때마다 A와는 마찰이 있었다. 겉으로는 조금씩 양보하는 척, 바뀌는 척 하지만 결국 내 말이 맞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보잘것없는 나만의 세계에 갇혀 지내기를 2달. 어느새 한 학기의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동아리 운영에 변화가 생긴 것도 이 즈음이었다. 참여율은 떨어졌고, 활동은 지지부진해졌으며, 동아리의 향방은 알 수 없게 되었다. 일이 이 지경이 되자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혹시라도 내가 잘못되었던 게 아닌가 하는. 정말이지 너무도 늦은 성찰이었다. 떠나간 기회는 잡을 수 없다고 하던가. 바른말을 해주던 A는 개인일정을 이유로 동아리를 떠났다. 나를 바로잡아줄 사람은 사라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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