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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밍치 Aug 25. 2024

위태한 저글링을 계속 한다는 것은

-깜냥도 안 되는 주제에 일만 벌인 자의 최후-

대학생으로서 처음 맡는 리더였다. 동아리 회장직만큼은 정말 잘 해내고 싶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도록 동아리방을 싹 갈아엎었고, 모두의 니즈를 만족시킬 수 있도록 활동을 다원화했다. 각별히 신경썼던 부분은 신입부원 분들의 적응문제였다. 행여 적응하는 게 어려우실까 동아리 가입문의를 넣으신 분들은 한분한분 직접 동아리방으로 모셔 대면면접을 진행했고, 최대한 말을 많이 걸면서 빨리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개강 시즌에는 하루에 7~8건씩 면접을 봤던 날도 더러 있었다. 하루종일 같은 말을 반복하며 방긋방긋 웃으려니 여간 고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애초에 웃음이 많은 타입이 아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살갑게 말을 거는 타입은 더더욱 아니고. 내 성향과 정반대인 일을 하루 종일 하고 있자니 얼마 안 가 지쳐버렸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내 자신과 한 약속도 약속이지만
노력하는 만큼 성원해주는 동아리원들이 있었다.


노력의 결과였는지, 운이었는지는 몰라도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동아리방이 깔끔해져서 앞으로 자주 와야겠다는 사람들도 있었고, 활동이 다양해지고 많아지니까 확실히 동아리 분위기가 좋아졌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간을 갈아넣는만큼 반응은 더 나아지고, 사람들이 좋아해주니 시키지 않아도 내가 더 열심히 하는 선순환이 이어졌다. 23년 3,4월 즈음에는 거의 출근하다시피 동아리방에 나갔었다. 오전 9시에 제일 먼저 불을 켜고 들어가서 저녁이 다 되어서야 불을 끄고 동아리방을 나오는 삶. 직업은 엄연한 대학생이지만 내 자아는 동아리 회장이 점령하고 있었다. 이렇게만 굴러가면 전혀 문제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만 굴러간다면.


중간고사를 기점으로
활동 참여율이 눈에 띄게 줄었다.
한 번에 3~40명을 찍던 활동참여인원은
한 자리수로 가라앉았다.


혼란스러웠다. 뭐가 문제지? 동아리방 인테리어도 다 바꿨고, 활동횟수도 작년보다 배로 늘었고, 심지어 임원진도 새로 뽑았는데. 나는 점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그럴 필요는 없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건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동아리의 규모, 분야를 막론하고 부원들의 참여율 감소는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학기가 시작하는 3월이나 9월에 신입부원 모집을 시작하면 잠깐 북적북적거리지만 결국에는 충성회원, 또는 충성회원들과 친해진 일부만 남는 것. 그게 동아리의 생리(理)였다. 지금에야 너무 자연스러운 사실이고 구태여 들뜨거나 실망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회장이 된 지 고작 3달이 채 안 된 내가 그런 사실을 알 리 만무했다.


무서웠다. 또 다시 실패한 리더가 될까봐.
높은 활동참여율과 많은 인원수만이 나를 대변할 수 있다고 믿었다.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 규모에 대한 나의 욕심으로 인해 우리 동아리도, 내 자신도 곪아가고 있었다.고민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님에도 나는 미련하게 붙잡고 있었다. 어차피 해결 안 되는 문제, 스트레스 받을 바에 그냥 잊어버리는 편이 나았다. 당시의 나는 이 점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내가 간과한 사실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동아리에 관련된 문제들로 골몰하는 와중에도 수업은 계속되었고 공부할 양은 늘어가고 있었다. 그뿐이면 다행이지, 스펙 한 번 쌓아보겠답시고 별 생각 없이 도전한 공모전도 제법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다. 이래저래 만나는 사람이 많다보니 약속은 계속 생겼고, 주말에는 알바를 2개나 했다. 동아리일이 정리될 쯤이면 공모전 준비를 해야했고, 공모전이 정리될 즈음이면 시험공부를 해야했다. 주말에 좀 쉴라치면 어느새 알바 출근시간이 다 되어 있었고 그것마저도 약속이 있는 날이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나는 위태한 저글링을 게속 하고 있었다.
아직 손이 여물지 않았건만, 나는 할 수 있을거라는 헛된 희망을 품고.


매주 활동에 나오는 사람은 여전히 한 자리 수였다.

야심차게 준비한 공모전은 참가상에 그쳤다.

학점은 어디 보여주기 뭣할 정도로 말아먹었고.

가게에서는 실수가 잦아져 사장님께 혼이 났다.

새벽까지 잠에 들 지 못 했다. 불면증이었다.


제대로 이룬 것 없이, 또 실패하고 말았다는 좌절감만이 나에게 남아있었다. 몸은 엉망진창이었다. 항상 피곤했고 수면패턴은 박살이 나 있었다. 동아리도, 대외활동도, 성적도, 인관관계도. 뭐 하나 내맘대로 되는 게 없었다. 그냥.... 그냥 다 던져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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