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고신입이었다. 22년 당시 20학번이었으니 나름 고학번이었고, 재수하고 군대까지 다녀온 탓에 나이는 스물셋. 사회 나가면 어리다는 소리를 듣겠지만 대학교 학부생 중에서는 나이가 있는 축에 속했다.이른바 "화석"인 셈이었다. 그와중에 코로나로 대학생활은 하나도 못 해봐서 선배구실 하기는 참 힘들었다. 나와 달리, 다른 20학번들은 모르는 게 없었다. 무슨 수업 듣는다고 하면 교수님 이름을 척척대면서 족보를 준다고 하지를 않나, 학교 근처에서 밥 먹는다고 하면 맛집 리스트를 줄줄이 읊어주지를 않나, 알바를 하려면 어떤 가게가 괜찮은 지 딱딱 정리해주지를 않나. 같은 나이, 같은 학번인데도 나하고는 경험치가 천지차이였다.
반면 나는 여러모로 미숙했다. 처음 듣는 수업은 강의실을 못 찾아서 한참 헤메기도 했고, 학교 도서관에 독서실이 있다는 것도 몰라서 공부는 동아리방에서만 했다. 그뿐인가, 족보를 주기는 커녕 나조차도 그런걸 본 적이 없어서 그냥 혼자서 공부를 했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평범한 대학생활이지만 그때는 나이나 학번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다. 서슴 없이 다가와준 우리 동아리원들에게 너무 고마웠다. 어떻게든 이런 마음을 돌려주고 싶어서 더욱 열심히 동아리 활동에 참여했다. 자주 얼굴을 비추다보니 아는 사람이 많아지고, 아는 사람이 많다보니 처음 보는 분들에게도 다가가기 쉬워지는 그런 선순환이 반복되었다. 동아리에 가입한 지 약 3달이 지났을 때 즈음, 우리 동아리에 있는 40명의 사람들하고는 대강 다 아는 사이가 되었다.
한 해의 마지막을 즈음하여 동아리는 들뜨기 시작했다.
여느 동아리가 다 그렇듯이 내년엔 누가 회장이 될까라는 주제로 불타올랐다. 사실회장을 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무서웠다. 중학교 때부터 군대까지. 나는 속해있는 거의 모든 집단에서 회장이었다. 중학교 때는 반장, 고등학교 때는 전교회장, 군생활 할 때는 부대 대표병사. 절대 자랑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오히려 한탄과 자기반성에 가깝다. 감투 한 번 써보겠답시고 일을 벌이긴 했지만 어느 하나 제대로 끝맺은 적이 없는 이른바 물경력이었으니까. 특히, 회장이라는 위치를 여러번 경험해 본 내 입장에서 동아리 회장은 전혀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니었다. 회장이라는 자리는 시간은 시간대로 뺏기면서, 자기 실속은 챙기기 힘들고, 무슨 일 생기면 욕은 욕대로 얻어먹는 자타공인 샌드백 같은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내 능력이 출중했으면 좀 달랐을 수 있겠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나는 유능한 리더가 아니었다.
무서웠다. 지금까지 쌓아온 좋은 관계가 무너질까
굳이 회장 같은 걸 하지 않아도 난 충분히 즐거웠다. 동아리방에 들어오면 반겨주는 부원들이 있고, 이들 덕에 남부럽지 않은 한 해를 보낼 수 있었다. 대학생이라면 누려봐야 할 모든 즐거움은 대강 다 경험할 수 있었다. 아마 내년에도 비슷한 미래가 펼쳐지겠지. 하지만 회장이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좋든 싫든 회장은 무언가를 추진해야만 하는 입장이고, 동아리 운영과 관련해서 다른 사람들과 의견충돌이 생길 건 불 보듯 뻔했다. 지금처럼 아무 생각 없이 즐갈 수는 없다는 말이었다. 다같이 잘 지낼 수도 있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내가 겪어온 모든 시간들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좋은 의도에서 시작했지만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저 귀찮은 일일 뿐이고, 나는 중간에 껴서 이도저도 할 수 없게 되버린다. 강력하게 내 의견을 관철하자니 공연한 일에 시간 낭비한다는 사람들의 비난이 두려웠고, 다른 사람들 말대로만 하자니 저럴거면 뭐하러 회장을 하냐는 조롱섞인 비판이 두려웠다. 싫어하더라도 좀 강하게 끌고 나가야 하나? 아니면 좀 양보하고 들어줘야하나? 두 노선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다보면 어느새 처음 가졌던 설렘이나 사명감 같은 건 저 멀리로 사라지고 내 말대로 해주지 않는 사람들이 밉다는 감정만 남고 만다.
나는 우리 동아리원들을 미워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귀중한 시간을 선물해준 사람들이다. 고작 이런 일로 관계가 틀어지는 건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거절하려고 했다. 처음에는. 괜히 회장같은 거 맡았다가 고학번이 나댄다(?)는 말이라도 들을까봐 무서웠다. 나보다 능력 있고 어린 사람들도 많은데 굳이 내가 해야할까 싶었다. 내가 고민하고 있었던 점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고학번이고 나이도 많은 내가 회장을 해도 되는걸까?
둘째, 한 번도 회장직을 제대로 수행한 적 없던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앞서 말했듯이 학번이 어쩌니 나이가 어쩌니 하는 건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장점이었다. 고학번은 고학년이기 마련이고 보통은 전공공부나 취업준비 등으로 정신이 없을 시기이다. 하지만 나는 나이와 학번에 비해 학년이 낮아 상대적으로 널널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학교 돌아가는 사정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이와 경험이 있으면서도 저학년이라 바쁘지 않은 중고신입? 회장이라는 자리를 맡기기에 이보다 적합한 사람이 없었다.
실패한 경험도 그렇다. 지금까지 계속 실패했다는 말은, 다르게 보면 회장으로서 저지를 수 있는 잠재적인 실수를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요즘 말로 인생 2회차같은 느낌일거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토론 유경험자라는 사실이었다. 토론동아리 회장이 토론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면 그건 문제다. 나는 그렇지 않았다. 그냥 한 번 해본 적을 넘어서 중고등학교 내내 토론부였던데다 대회에서의 수상경력까지 있었으니.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하면 안 되는 이유보다는 해도 되는 이유만 늘어갔다.
이쯤 되니 자신감이 생겼다. 이번만큼은 제대로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내가 동아리 활동을 하며 느꼈던 소중한 감정들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회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