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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밍치 Aug 07. 2024

중고신입이 대학생활에 임하는 자세

-나는 보통 광대를 자처해-

군복학 후 처음으로 마주한 캠퍼스. 코로나도 어느덧 끝물을 맞이하고 새로운 설렘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어울릴 사람이 없었던 나.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토론동아리에 가입했다.


카톡! 알람이 울렸다. 동아리에서 개강총회를 한다고 한다. 그토록 원하던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였다. 바로 가겠다고 하고 싶었지만 마음 한 켠이 결렸다. 나는 사람이 많은 장소를 좋아하지 않는다. 시끄러운 것도 싫고, 특히나 술 먹는 건 더더욱 싫다. 하지만 개강총회는? 한 마디로 사람 많은 곳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술 먹는 자리. 내가 여길 가도 되는 건지. 괜히 나갔다가 분위기만 망치는 게 아닌지 고민다. 달리 다른 방법도 없었다. 나 빼고 다른 사람들끼리만 친해져 있는 걸쩍지근한 분위기를 피하려고 동아리에 가입한 건데, 개강총회에 나가지 않으면 앞으로의 대학생활이 힘들어질 것 같았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거지만 개강총회 따위 나가든 말든 적응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참 신기했다.
오겠다고 한 사람은
10명이 채 되지 않았다.


개강총회 참여자 조사는 단체채팅방에서 일주일 정도 진행되었다. 총원이 40명 정도인 동아리니까 그래도 한 30명은 올 줄 알았다. 현실을 한참 모르고 하는 이야기였다. 생각보다 반응은 미적지근했고 결국 12명이서 개강총회를 열게 되었다. 개강총회 같은 대형행사의 묘미는 여럿이서 떠들썩하게 어울리는 건데 12명이서 노는 데를 무슨 재미로 가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오히려 좋았다. 시끄럽고 사람 많은 걸 좋아하지 않는 나니까. 12명 정도라면 나의 사회성이 버텨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 개강총회는 나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었다. 행사는 우리 학교 근처에서 열렸다. 독특하게도 방과 방이 칸칸이 나뉜 룸술집에서 모였다. 보통 개강총회라고 하면 다같이 한 테이블에 빙 둘러앉던데, 우리는 12명이 3개의 방에 4명씩 나눠들어갔다. 같은 방에 모여있는 사람끼리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로 가깝게 붙어 앉았고, 뭐랄까 이건 개강총회라기 보다도 조별과제 같은 느낌이었다.


우리 방엔 정확히 남자 둘에 여자 둘이 배정되었다. 소개팅 느낌도 났었던 것 같다. 통 사람이라면 당황스러울 법 했지만 는 너무 좋았다. 다만, 처음부터 말을 많이 하자니 좋게 보일 것 같지 않았다. 일종의 전략을 세웠다. "오늘 나는 들어주는 사람이다"라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면 웃어주고, 누군가가 자기 이야기를 어놓으관심 가지고 질문을 던져주는 일종의 청중 같은 위치를 고수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 동아리는 또또 내 예상을 뛰어넘었다. 우리 테이블은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MBTI로 따지면 I인 사람들만 모아놓은 듯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분위기를 주도하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살갑게 말을 거는 일에는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만 한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싫은 거라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색하게 시간만 죽이는 것! 복학하고 처음으로 나온 학교행사인데 이렇게 재미없이 끝낼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광대를 자처하기로 했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밝힌 적 없는 비밀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는 알고 있다. 대충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지. 사회화된 행동과는 거리가 먼, 그러면서도 지나치게 무하지는 않게. "선을 잘 타면서" 이상한 짓을 하면 보통은 분위기가 좀 풀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나: 저는 6명이서 동시에 동거해 본 적도 있어요
동아리원: 그런 얘기 여기서 해도 돼요?
나: 아.. 저 군대 생활관에서요...


나름대로 궁리해 낸 드립(?)을 투척할 때마다 분위기가 싸해지면 어떡하지 하고 걱정했다. 말할까 말까 수십 번도 더 고민했지만 다행히 동아리원들은 웃어주었다. 그다지 웃기지는 않은데 어색한 건 싫어서 호혜적으로 베푼 미소인지, 아니면 진짜 내 개그가 먹혀서 나오는 찐웃음이었는지는 모른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우리 테이블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내 옆에는 그 당시 우리 동아리 총무님이 앉아계셨는데 나를 흘깃 쳐다보고는 "오늘 처음 봤는데 진짜 특이하신 거 같아요"라고 했다. 내향형인 주제에 관종이었던 나는 4차원 취급 당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그 말을 듣고는 나도 모르게 빵 터져버렸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다지 칭찬은 아닌 것 같다.


그즈음이었다
동아리에 애정이 생기기 시작한 건


어설프게나마 시도했던 아이스브레이킹은 성공적이었다. 시끄럽게 부어라 마셔라 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조용한 사람들끼리 모여 술강요나 술게임 없이 조곤조곤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는, 그런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어딜 가나 있는 뾰족한 사람도 없었고 규모가 작아서 그런지 다들 두루두루 친해 보였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동아리원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우리 동아리는 사람들 성격이 참 괜찮고 괜한 파벌 같은 게 없어서 좋다고 했다. 인상 깊었다. 내게 있어 다른 사람들과의 어울림은 일종의 과제다. 사회성을 소비하여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러운 일 . 하지만 내 주파수 대역의 분위기에서 편하게 어울리다 보니 처음으로 부담이 아닌 순수한 재미를 느꼈다.


늦게까지 놀고 싶다는 마음은 굴뚝같았다. 더 이상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광대모드를 유지하기가 힘에 부친다는 생각이 들 때쯤 시계를 봤다. 어느새 자정이 다 되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3차를 가겠다고 했지만 나는 집에 가겠다고 했다. 막차나 통금 때문이냐고 하던데 그냥 자고 싶어서 집에 간다고 해버렸다. 집에 돌아왔을 때만 해도 별 생각 없었는데 후회가 되었다. 분위기 좋았는데 자고 싶어서 집에 간다니! 다른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을까 싶었다. 곱씹을수록 적절한 끝인사는 아니었다. 이렇게 또 한 걸음 멀어지겠구나 싶어 퍽퍽 이불킥을 날렸다. 아, 이렇게 끝나는 건가? 그렇게 3일이 지났다. 개강총회에서 친해진 동아리원에게 카톡이 왔다.


오늘 술 먹을 건데 민기 너도 올래?



나의 대학생활이 본격적으로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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