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하는 동아리에서 망하는 동아리로 갈 수밖에 없던 세 가지 패착-
내가 사랑하는 우리 동아리를 살려보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던 나, 노력이 무색하게 모든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고 마음처럼 풀리지 않는 일에 지쳐버렸다. 결국 번아웃이 와버리기에 이르는데. 지나간 일을 곱씹는 데는 의미가 없다지만 이번만큼은 경우가 달랐다. 잘못한 점이 있다면 깡그리 고쳤어야 했다. 대체 뭐가 그렇게 문제였을까.
문제는 세 가지였다.
인격의 실패, 패턴의 실패, 기획의 실패
이번 글에선 기획의 실패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 "기획"이란 무엇일까? 기획이란 특정 이슈나 문제 등에 대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나 대안을 제시하고 이를 구체화하여 현실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한다. 기획이라는 활동에 대한 정의는 누가 내리느냐에 따라 계속해서 달라지는 측면이 있어서 딱 잘라 제시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견의 여지가 없는 핵심적인 부분이 있다면 바로 "문제의 해결". 아이디어가 어쨌고, 그 발상과정이 어쨌고, 그 과정이 어찌 되었든 간에 기획자는 반드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기획 단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라면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해야 할 것 같은" 일만 주구장창 하는 것일 게다. 내가 딱 그랬다. 지금 벌이고 있는 일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도 모르는 채로 그저 열심히 하고 있는 내 자신에 도취되어서 자원을 낭비하는 그런 식의 일처리를 했다. 대체 나는 무슨 짓을 했던 걸까?
가장 큰 패착은
소비자의 관점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기획의 목적은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주 우리 동아리를 찾게끔 하는 것.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수요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나는 내 생각에만 빠져들어서 철저히 내가 만족하기 위한 기획을 했다. 당시 나는 6개월째 교내 토론동아리의 회장을 맡고 있었다. 한 학기 정도가 지난 셈이다. 활동이 진행되는 추이를 한 학기간 쭉 관찰해보니 북적거렸던 학기 초와는 달리 학기의 끝으로 갈 수록 사람들은 자취를 감췄다. 한 번에 4~50명씩도 나오던 정규활동은 고작 4~5명이서 진행하기 일쑤였다. 매력적인 활동을 기획한다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줄거라 생각했다. 기존에 진행하던 토론활동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작업에 들어갔다.
돌이켜보면 그 즈음에는 만나는 사람마다 동아리활동에 대한 의견을 물었었던 것 같다. 이건 어떻냐 저건 어떻냐 피드백을 구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사람들이 정말 원하는 활동이 뭔지 파악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기까지. 매일매일이 시장조사의 연속이었고 수집된 의견을 하루 빨리 현장에 반영하고자 했다. 다양한 의견들이 많이 나온 덕에 기존 체계를 바꿔볼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수 많은 의견들 사이에서 무얼 먼저 실험해봐야 할지 정하는 일이 오히려 어려웠다. 고심 끝에 내가 취한 조치는 이러했다.
먼저, 활동개최횟수를 대폭 늘렸다. 동아리 활동은 원래 일주일에 한 번만 개최되었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게속하여 참여를 포기했던 회원들도 있었다. 개최일수가 늘어나면 사람들의 유입이 늘어날거라 생각하여 3회로 늘렸다. 또, 활동종목도 다양화했다. 기존 활동에서는 주제를 정해주고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식의 운영이 전부였다. 토론이라기보다는 토의에 가까웠던 탓에 다소 긴장감이 떨어진다고 하는 의견이 있었다. 입장을 나누어 서로의 의견을 반박할 수 있는 구조의 찬반토론활동을 신설하였으며 발표력을 기를 수 있도록 발표활동도 도입했다. 뿐만 아니라 남들 앞에서 말하는게 처음이라 어색할 수 있는 회원들을 위해 토론경험의 유무에 따라 초급자 코스와 상급자 코스를 나누었으며, 진지하게 토론을 연습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사람들에게는 개인적으로 코칭까지 해주었다.
이런 시도들이
의미를 갖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토론동아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아무래도 토론이라고 생각할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물론 토론동아리에서 토론 열심히 하는 것. 중요하다. 하지만 참여율을 높인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신경써야 할 부분은 따로 있었다. 오히려 토론에는 좀 힘을 빼는 편이 사람들을 불러모으기에는 좋았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을거다. 질문을 하나 해보겠다. 만약 당신이 진지하게 사진을 배워보고 싶다면 당신의 선택은?
하나,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사진학원에 등록한다
둘, 사진동아리에 가입한다
압도적으로 첫 번째 선택지를 고른 사람이 많을거라고 예상한다. 그도 그럴 것이 무언가를 "진지하게" 배우기에 동아리는 그 전문성이 턱 없이 부족한 조직이기 때문이다. 동아리라는 이름부터가 공식적이고 전문적이기보다는 사적인 취미에 가까운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 요컨대 토론동아리라고 한들 진지하게 토론을 하고 싶어서 가입한 사람은 몇 없을 거라는 거다. 그럼 이 사람들은 대체 무엇을 보고 동아리를 찾은걸까? 답은 다름 아닌 "관계"에 있었다.
사람들은 관계에 목말라 있었다.
혼자 겉돌게 될까
전전긍긍했던 예전의 나처럼.
중요한 건 사람들을 한 데 모아 어울리게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점을 너무도 늦게 깨달았다. 사람들의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 하는 기획을 하다보니 열심히 하는 것과는 별개로 반응은 미온했고, 아무도 활동에 나오지 않자 한 번 나가볼까 고민했던 사람들도 이내 단념해버리는 악순환이 발생했다. 더욱 심각했던 점은 사람들의 반응뿐만 아니라 나의 태도 또한 차갑게 식어가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나부터가 열정적으로 동아리 활동에 임해야했었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계속되는 뜨뜻미지근한 반응에 지쳐가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 야속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뭘 바꿔보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일 자체가 귀찮아졌다. 그 와중에도 야속하게 시험은 다가왔고 아직 아무것도 마무리짓지 못 한채로 얼레벌레 시험준비를 해야했다. 당연히 공부가 손에 잡힐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기획을 다시 시작할 엄두는 더더욱 나지 않았다.
어찌할 도리 없이 그저....그저 썩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