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해... 훨씬 편해
회사를 1년 쉬고 돌아왔다. 그것도 내 생일.
가을 하늘이 청명하게 맑다.
출근하기 전 사흘 내리 비가 내렸는데 오늘은 맑네.
그래 비오는날 출근길 만큼 싫은게 없지. 차라리 맑은날 출근하는 걸 위로 삼는다.
사무실에 첫 발을 들였을때 다행히 반가운 얼굴들이 몇몇 보인다.
입사 동기들. 불편한 회사생활에서 그나마 덜 불편한 이들.
새로운 부서 사람들은 밥을 혼자 먹는다.
그래도 첫날에는 같이 먹을줄 알았는데 부서장을 비롯해 부재중인 팀원들이 많아서 같이 먹지 않고, 동기들과 먹었다.
둘 째날, 부서장은 역시 출장을 갔다. (이 부서의 최고 장점)
다른 팀원들이 밥을 같이 먹자고 했는데, 나는 동기들과 먹을 요양으로 따로 먹겠다고 했다.
아뿔싸. 동기들은 팀사람들과 먹어야 한다고 했다. 이런.
회사생활에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상황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때 밥을 혼자먹는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전으로 올라가서도 그랬다.
고등학교때 밥을 혼자 먹으면 다들 왕따라고 생각했다.
꾸역꾸역 친구 한명이라도 데려가서 핫도그라도 사주며 같이 먹어야만 했다.
대학교때는 밥을 혼자 먹기보다 차라리 굶는게 나았다.
학교 식당에서 밥을 혼자 먹는다? 그건 밥을 먹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시선을 먹는것 같았다.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대학 도서관에서 '밥 혼자 먹지 마라' 그 책이 눈에 딱 들어왔을까.
첫 회사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다행히 그때는 이제 대학을 갓 졸업한 여 신입사원들이 같이 있어서,
그들역시 나의 철칙과 다르지 않았다. 그날 밥을 안먹게 되면 꼭 미리 알려주기! 이게 우리의 철칙이었다.
셋 중 한명이 밥 사먹는게 부담된다. 도시락을 싸오겠다고 했을때 우리 모두 그 다음날 도시락을 싸왔다.
그 한명을 배제할 수 없어서, 누군가 은행에 갈일이 생기면 도시락을 얼른 먹고 둘이 쪼르르 따라갔을 정도.
두번째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이 곳은 일이 너무 바빠서 점심시간까지 일하느라 밥을 혼자 먹게 되는 경우도 있었는데, 그때도 사람들이 식당에서 모두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었다.
근데 복직 둘째날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 1년 전 나였으면 빨리 누구한테라도 연락해 SOS를 청했으리라. 하지만 그 날을 웬일로 밥을 혼자 먹게 됐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안해 졌다.
실은 전날 생일에 복직까지 겹쳐 여러사람에게 인사다니느라 정신 없었던 터라,
더이상 사람과 마주하기 싫은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면 이야기를 할때 과장되게 표현하는 모습이나, 누군가의 말을 센스있게 받아치려고 부정적인 말을 서슴치 않는 내 모습 등 내가 나를 꾸며내게 된다.
그 전에는 몰랐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나인줄 알았다. 그런데 1년 쉬며 집에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있어보니 보이더라. 진짜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모습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인간관계들이 이제까지 나를 얼마나 피곤하게 했는지......
그렇게 꾸민 내 모습을 바라보는것보다 차라리 혼자가 낫지
그날 간단하게 샐러드를 먹고 여의도공원을 산책했다.
하늘이 참 맑았다. 같은 하늘인데도 출근할때 보던 하늘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공원에서 나만의 힐링스팟도 발견했다.
여러 풀숲을 헤치고 들어왔을때 어서 쉬어가라며 오롯히 나만 있을 수 있는 자그마한 대나무숲이 펼쳐졌다. 그곳에서 보는 한뼘하늘이 눈부셨다. 이곳, 여의도 땅 한 가운데서 말이다.
삶의풍경(Scenery of Life) / 2017 서울정원박람회
우리는 각자가 속한 사회속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며 살다가도 내 주변으로 돌아와 가까운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때로는 온전히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다.
We spend most of our time working hard and talking with others to make a living
At some times, however, we meet up with family members or a group of friends to releve stress. At other times, we desperately need some time soley for our selves
그렇게 이곳을 나만의 공간으로 찜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다시 제 자리로 돌아가는 직원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마음한켠에는 '내가 혼자 걷고 있는 걸 본 누군가가 있으면 어쩌지?' ,'누구랑 밥 먹었냐고 물어보면 어쩌지?' 이런 소심한 질문들이 아직도 올라온다.
하지만 그 전만큼 그런 생각이 나를 압도하진 않는다.
오히려 방금전 느낀 스스로에게 오롯히 집중할 수 있었던 그 시간, 그 시간에 느낀 감정, 풍경이 생생하다.
앞으로도 종종, 아니 자주 밥을 혼자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