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빠서 손주 만날 시간이 없는 할머니

by 네버엔딩

내 삶에는 늘 노인들이 있었다. 할머니는 내가 초3 때, 할아버지는 고1 때 돌아가셨으니 꽤 커서까지 계셨다. 결혼 후에도 그랬다. 시할머니, 시할아버지가 계셨고 큰 애 고1 때까지 살아계셨으니 꽤 오랜 시간 동안 노인들의 삶을 지켜볼 수 있었다.


손주는 자식보다 비교가 안될 만큼 더 예쁘다고 한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볼모 삼아 늘 오라가라 하는게 힘들고 버거웠다. 한편으로 이해는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도 있다. 노인들의 외로움을 달래드리는 것도 돌봄의 일부라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 돌봄이 일방적인 요구로 느껴질 때가 있다. "손주들 보고 싶다", "왜 자주 안 오느냐"는 말씀들이 때로는 무거운 의무감으로 다가온다.


생존이 이슈인 어려운 세월을 견디면서 자식들을 키워냈으니 당신들을 위해 뭔가를 한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란 짐작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자식들이 머리가 크면 부모를 섭섭하게 할 일이 많았을 텐데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이 자식을 향한 해바라기 인생을 고수할 수 있는지.


친정엄마는 젊어서부터 오래 살지 못한다고 했다고 한다. 할머니는 어린 자식들이 크기도 전에 엄마가 죽을까봐 많이 걱정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몸을 아끼지 않았다. 아끼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몸이 부서져라 일을 했다.


“죽으면 썩을 몸, 아껴서 뭐해.”


우리가 걱정할 때마다 엄마가 하는 말이다. 엄마는 젊어서는 자식들 먹이고 가르치는 게 삶의 목표였고, 그 목표가 이루어진 후에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게 삶의 목표였다. 내가 보기에 그런 하찮은(?) 목표로도 저렇게 열심히 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엄마는 운동을 열심히 했고, 복지관에서 여러 가지 배우면서 공연도 다니고 재미있게 사셨다. 굽은 허리로 매일 18,000보를 걸었고, 장구, 난타, 부채춤 등을 열심히 배워서 공연할 수 있을 정도로 잘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열심히 했을지 짐작이 간다. 자식들 김치며 반찬 해주는 것도 빼놓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건강한 돌봄일까? 엄마는 자신을 돌보지 않으면서까지 자식들을 돌보려고 했다. 그것이 사랑인지, 아니면 왜곡된 돌봄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그러다가 80대 중반에 허리와 무릎을 못 쓰게 되어 집 앞 복지관도 가기 힘들 정도로 거동이 불편해졌다. 젊어서부터 아끼지 않고 혹사시킨 몸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이 된 것이다. 다행히 좋은 병원을 찾아서 허리수술과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한 후 회복하셨고 다시 복지관을 다니면서 활기차게 사셨다. 하지만 그 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5년 정도 지나서 복지관 앞에서 넘어졌는데 고관절이 골절되었다. 그후 3년 정도 기간 동안 고관절 골절이 세 번, 팔이 한번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면서 엄마는 멘탈이 약해졌다. 자기를 돌보지 않는 돌봄은 지속불가능하다. 엄마가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면서까지 우리를 돌본 결과가 이것이었다.


시댁에도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혼자 남으신 시아버지는 더욱 자식들에게 집착을 하신다.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직한 후에 사슴을 키우셨다가 사슴에게 공격을 받은 사건이 일어나자 바로 그 일을 정리하고 그만두셨다. 건강하신 몸으로 무얼하며 지내시려고 그만 두시냐고 물으니 “내가 살면 얼마나 사느냐”고 하셨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만의 삶의 의미와 목적을 잃고 오직 자식들과의 관계에만 매달리게 되면 자신의 노후의 삶과 자식들의 삶은 점점 비참해지는 것을 보았다.


18년 동안 IT회사에서 일하다가 사회복지로의 커리어 변경을 위해 사회복지대학원에 입학하여 공부하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경력단절’의 아픔을 뼈저리게 겪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구직활동을 하면서 상담 분야에 대한 수요가 많아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즈음 ‘코칭’을 만나게 되었다. 코칭은 너무 매력적이었다. 죽을 때까지 코칭만 하다가 죽어도 좋을 만큼. 코칭을 하다 보니 심리공부에 대한 필요를 느껴 1년 6개월 동안 심리공부도 했다. 코칭이 더 깊어졌다. 젊었을 때 배웠더라면 좋았겠지만, 나이 들어서 배운 것이 더 좋은 면도 있다. 인생 경험이 쌓인 후에 하는 공부는 더 깊이가 있다. 나 자신 뿐 아니라 주변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코칭과 심리학 공부를 하면서 받은 큰 선물이다. 부모님을 돌보면서 나 자신을 돌볼 수 있게 된 것도.


수명이 길어지면서 100세까지 사는 것이 어느새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가고 있다. 노인의 삶에 대한 모델이 시급하게 필요하다. 존경하고 따르고 싶은 롤모델은 흔치 않고, 반면교사만 잔뜩있다.


키케로는 노인의 최고 영예는 존경이라고 했다. 주름이 지고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었다는 것만으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각자가 맺은 열매를 사회에 주었을 때, 그것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쳤을 때 노인은 존경을 받을 것이다. 나이를 먹으면서 부끄럽지 않은 인격을 키워나가야 하는 이유이다.


100세 철학자인 김형석 교수님은 배움과 인격에서 뒤지면 존경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교수님도 정년퇴직 이후 인생 3막을 위해 공부도 더 많이 하고 외국에까지 나가 강연도 하신다. 100세가 넘은 지금도 여전히 강연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고 롤모델로 삼고 싶다.


실제로 김형석 교수님은 중년 이후의 나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50대 초반에 류마티스가 찾아와서 몸이 불편했지만 나는 여전히 구직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50대 중반 경에 남편이 나에게 말했다. “몸도 시원치 않고 나이도 들었는데 무슨 일을 그렇게 하려고 하느냐”고.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 읽은 책이 김형석 교수님의 『백 년을 살아보니』 였다. 책을 읽다가 고민이 해결되는 문장을 만났다. 노년기의 삶을 풍성하고 의미있게 보내려면 50대에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전성기는 60세에서 70대 중반이라고 말씀하신 내용은 충격이었다. 나는 일과 공부를 멈추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배움을 좋아하는 나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내가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 내 자신을 돌보는 것이 결국 가족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 길이다.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노인이 되는 것이 곧 가족을 돌보는 일이 된다는 것을 주변 노인들의 삶을 통해 배웠다.


살면서 그렇게 노인들을 보면서 오래 전부터 결심한 것이 있다. 나는 바빠서 손주 만날 시간이 없는 할머니가 되겠다는 다짐이다. 그래서 자식들이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것은 가족에 대한 무관심이 아니다. 오히려 더 건강한 돌봄의 방식이다. 내가 바빠서 손주를 자주 못 본다면, 손주들도 할머니에게 의무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서로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관계, 그것이 지속가능한 돌봄이다. 아직 할머니가 되지는 않았지만 할머니가 되는 친구들이 늘어가고 있다. 어느새 그 나이가 되어버렸다.


지금도 나는 여러 가지 도전을 한다. 그 도전들은 젊었을 때와 여러 면에서 많이 다르지만 모두 의미 있는 일이다. 젊은이들의 도전과 비교해도 여전히 가치 있는 일이다. 앞으로 나의 70대, 80대, 90대는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지향은 전진(前進)이라는 것이다. 계속 성장하고, 계속 배우고, 계속 도전하는 것. 그것이 나 자신을 돌보는 방법이고, 동시에 가족을 돌보는 방법이다.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것, 내가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그래서 가족들이 나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게 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돌봄이 아닐까.


그 과정 중에 어떤 모습들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린다는 것을 알기에, 내가 붙잡고 있는 문이 닫힌다면 미련을 두지 않고 다른 문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거기에도 많은 아름다운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돌봄은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만이 아니다. 돌봄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는 것,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돌봄이다. 내가 건강하고 독립적이면, 자식들은 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바쁘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으면, 자식들은 나를 챙겨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관계.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상호 돌봄이 아닐까.


브라보,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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