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뭐길래

by 네버엔딩

자식에 대한 엄마의 희생과 헌신은 유별나다.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 병원이나 시설에 계실 때 우리 4남매는 매주 돌아가면서 아버지를 찾아뵙기로 했다. 4명이니까 각자에게는 한 달에 한 번만 가면 되었다. 병원에 계실 때에는 그냥 가서 아버지 얼굴만 보고 오면 되었지만, 시설에 계실 때에는 달랐다. 아버지를 포함하여 다른 분들 드실 것까지 준비해야 했고, 아버지를 씻겨 드려야 했다. 한 달에 한 번이면 별거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았다. 한 번 갔다오면 그 후유증과 피로감으로 며칠 동안 힘들었다.


엄마는 그런 우리를 보며 아버지에게 원망을 쏟아냈다. 평생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터라, 자식들까지 고생시키는 아버지를 무척 미워했다. “왜 빨리 돌아가시지도 않고 속을 썩이냐.” “어차피 나을 수 있는 병도 아닌데 애들 조금이라도 편하게 빨리 가야 할 텐데 안 가고 있다고.” 평생을 함께 산 부부 사이에서 어떻게 저런 말이 나올 수 있나 의아했지만, 엄마의 진심인 것을 나는 잘 안다. 엄마에게 자식은 자신보다 소중한 존재였고, 그 자식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남편에 대한 원망보다 더 컸던 것이다.


엄마는 젊어서 허리를 다쳤는데 치료를 못해서 허리가 굽었다. 굽은 허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엄마는 80대 중반까지 활기차게 사셨다. 자식들 김치며 밑반찬을 해주는 것은 물론, 복지관에서 난타와 장구를 열심히 배워서 공연까지 다녔다. “죽는 날까지 내 다리로 걷겠다”는 일념으로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활기차게 살았다. 활동적인 성격으로 어딜 가나 친구들을 모아서 동아리를 만들었다. 놀러도 다니고 맛있는 것 먹으러도 다니며 재미있게 살았다.


그때의 엄마는 정말 빛났다. 평생 자식만 돌보며 살았던 분이 드디어 자신만의 시간을 찾은 것 같았다. 젊어서 풀지 못했던 꿈을 복지관에서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난타와 장구는 지방 공연까지 다니며 많은 칭찬과 인정을 받고 있었다.


70대 중반쯤부터 골다공증이 심해지면서 척추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골다공증이 심하면 깡통 찌그러지듯이 척추가 찌그러진다고 한다. 엄마는 찌그러진 척추에 골시멘트를 주입하는 척추성형술 수술을 받았다. 수술을 받은 부위는 단단해졌지만 주변의 약한 척추에는 더 큰 부담을 받게 되었고, 결국 여러 차례 수술을 반복해야 했다. 그때부터 엄마의 삶은 달라졌다.


우선 복지관을 다닐 수 없게 되었다. 복지관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 먹으러 다니는 즐거움도 더 이상 누릴 수 없었다. 우리 자식들 생각에는 “그깟 거 좀 못하면 어때?”라고 할 수 있지만 엄마에게는 '그깟 것'이 아니었다. 엄마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자식들 입장에서도 재미있고 활기찬 엄마의 인생이 좋아 보였다.


고생해서 자식들 다 키워놓고, 속 썩이는 남편도 없고, 이제야 드디어 내 인생을 사는가 했는데 건강이 발목을 잡았다. 그것이 엄마에게는 삶의 의미 자체가 무너지는 일이었다.


어느 날, 엄마가 나한테만 한다면서 꺼낸 이야기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이제 아무 데도 못 다니고, 자식들 신세만 지며 살아야 할 텐데,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하는 절망감이 찾아왔다고 했다. 실행이 빠른 엄마는 약국을 돌아 다니면서 수면제를 사 모았다고 했다. 당시에는 수면제를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었지만 많은 양을 살 수는 없었다. 조금씩 밖에 살 수 없어서 한참을 모았다고 했다.


막상 치사량만큼 모았을 때 어떤 생각이 엄마를 붙들었다. “내가 이렇게 죽고 나면 자식들은 어떻게 되나. 평생 꼬리표가 붙을 테고, 심지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착한 내 자식들에게 이런 아픔을 주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자, 그동안 모은 수면제를 미련도 없이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 가지 물음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하나는, 활동을 못 하는 게 과연 죽을 만큼 괴로운 일인가? 괴로울 수는 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할 일인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뒤 엄마를 좀 더 이해하게 되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어려운 시절을 견디면서 엄마는 모든 것을 ‘인내’했다. 아니, 엄마가 감내해야 하는 너무 많은 희생과 아픔과 슬픔이 ‘인내’라는 한 단어에 담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런 인고의 세월을 지나 드디어 자신만의 인생을 살게 되었을 때 엄마는 청춘과도 같은 빛나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빛나던 순간의 단절은 엄마에게 큰 절망으로 다가왔고 더 이상 살아갈 이유를 찾기 어려웠다.


또 하나의 물음은, 자식이라는 존재는 도대체 어떤 힘을 가지고 있기에, 이미 결심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는 엄마의 마음을 바꾸었을까 하는 것이다. 평소 엄마는 실행력이 아주 좋은 사람이다. 결심은 곧 행동이다. 엄마 사전에 작심삼일이란 단어가 없다. 그런 엄마에게 도대체 자식이 뭐길래 준비까지 다 해놓고 미련도 없이 포기할 수 있을까? 누군가 나에게 자식이 그런 존재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엄마의 삶은 자식을 위한 헌신으로 점철되어 있었고, 자식은 엄마가 마지막 순간에도 삶을 붙잡게 만드는 이유였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는 일방적인 희생과 무조건적인 희생 너머 뭔가의 힘이 있다. 서로에게 짐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살게 하는 힘이다.


돌봄은 약자에게 베푸는 일방적인 수고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엄마를 돌보는 시간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돌봄은 관계의 무게라는 것을. 때로는 사랑으로 베풀지만, 때로는 원망과 갈등이 드러나기도 한다. 어떤 모양이든 그 무게는 결국 서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된다. 엄마가 수면제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릴 수 있었던 것은, 자식이라는 존재가 엄마의 삶을 지켜주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건강한 돌봄이란 무엇일까? 엄마처럼 자식을 위해 목숨까지 붙잡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아니면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정리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다만, 돌봄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관계적인 것이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돌보는 사람과 돌봄받는 사람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엄마가 우리의 돌봄을 받아주는 것, 그것도 하나의 돌봄이다. 그리고 우리가 엄마를 돌보면서 배우는 것들 - 인내와 사랑, 때로는 한계와 좌절까지도 - 그 모든 것이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선물이다.


자식이 뭐길래 엄마의 삶을 붙잡았을까. 아마도, 자식은 엄마에게 마지막까지 '관계'를 선물하는 존재였을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는 것,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것이 삶을 붙잡게 하는 힘이었을 것이다.


언젠가 내가 엄마의 자리에 있을 때, 나도 그 '관계의 무게' 속에서 돌봄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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