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의 무게

by 네버엔딩

친정엄마가 수술실에 들어가셨다. 92세 고령의 연세에 고관절 골절만 세 번째이다.


“엄만 괜찮아, 니 걱정이나 해.”


엄마가 늘 하셨던 말씀이다. 엄마의 척추 수술은 80세부터 시작되었다. 젊어서 허리를 다친 적이 두 번 있었지만 병원도 못 가고 그 몸으로 장사를 계속 하셨다. 뼈가 약해서 문제가 되기 시작한 건 80세부터였다. 허리가 너무 아파 정형외과에 갔더니 척추뼈에 금이 갔다는 것이다. 뼈는 약한데 일을 많이 하니 금이 간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늘 김치며 반찬을 해서 자식들에게 나눠주었다. 음식 솜씨가 워낙 좋아 먹는 우리는 좋았지만, 한편으로 걱정되어 이젠 일 좀 그만하시라고 해도 여전했다. 몸의 고통보다 거기서 얻는 기쁨이 더 큰 듯 했다.


그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엄마에게 자식들을 돌보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의 존재 이유이자, 자존감의 원천이었다. 아픈 몸으로도 김치를 담그고 반찬을 해서 나누어주는 것, 그것은 엄마가 여전히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이북이 고향인 엄마는 해방 이후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남한으로 급히 내려오느라 결혼식도 못 치렀다. 신혼이 피난길이었다. 서울에 내려와서 겨우 자리를 잡았는가 했는데, 6.25가 터지고 아버지는 빨치산 토벌대로 징집되었다. 엄마는 시댁 식구들을 책임지는 가장 역할을 기꺼이 감당했다. 스무살 그 어린나 이에 사탕 장사를 해서 시댁식구들을 굶지 않게 한 것이 엄마의 자랑스러운 훈장 중 하나였다. 굶기를 밥 먹듯이 했던 시절이었으니 그럴 만했다.


전쟁이 끝나 아버지가 돌아오시고 안정을 되찾았다. 한동안 안정된 생활을 하는가 싶었으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엄마의 고생은 다시 시작되었다. 엄마의 모든 관심은 자식 4남매를 어떻게 먹이고 가르치나였다. 엄마의 억척과 인내는 살인적이었다.


엄마는 무쇠팔 무쇠다리를 가졌나 보다. 사람인가 의심이 갈 정도였다. 한참 뒤에 엄마의 가는 팔목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렇게 가느다란 팔목으로 그렇게 고된 일을 감당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엄마의 무쇠팔, 무쇠다리는 타고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돌봄을 포기할 수 없었던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가족을 지키고 돌봐야 한다는 절실함이 엄마의 가느다란 팔목을 무쇠팔로 만든 것이었다.


환갑 즈음에 장사를 그만두면서부터 엄마는 운동을 열심히 했다. 자식 4남매를 잘 가르치는 일을 완수하고 나서, 엄마의 삶의 목표는 늙어서 자식에게 폐 안 끼치는 부모가 되는 거였다. 자식들을 잘 가르치고 결혼까지 시켰건만 엄마의 관심은 여전히 ‘자식’이었다. 자식에 대한 희생도 여전했다. 자식에게 폐 안 끼치기 위해 엄마가 해야 할 일은 운동을 열심히 해서 건강을 지키는 것이었다. 운동을 정말 열심히 했다. 기본이 하루에 18,000보 걷기다. 1년 365일, 춥거나 덥거나 상관없이 걸었다. 손주를 키우면서도 운동하면서 사귄 친구들과 여행도 하며 즐겁게 살았다. 여기서 나는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한편으로는 엄마의 의지에 감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평생을 돌봄 제공자로만 살아온 엄마에게 자식들의 돌봄을 받는 것이 ‘폐를 끼치는 일’로 여겨졌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느껴진다.


엄마는 90세에 살짝 넘어졌는데 고관절이 골절되었다. 여태까지는 허리만 말썽이었는데 고관절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이후 팔 뼈 골절 한 번과 고관절 골절이 두 번 더 발생했다. 엄마는 수술 후에 재활을 열심히 했다. 노년에 고관절 골절은 한 번도 힘들다는데 세 번이나 수술하고도 혼자 걸어서 화장실에 갈 수 있게 되었다. 혼자 화장실에 간다는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요양원에 가지 않고, 내 집에서 살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 일을 겪고도 요양원이 아닌 내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다. 엄마의 피나는 재활 노력 덕분이 가장 큰 이유이다. 하지만 엄마는 두 번째 고관절 골절 사고 이후 자괴감과 외로움에 힘들어했다. 워낙 의지가 강한 분이라 몸이 점점 쇠약해져서 자식들에게 폐를 끼치는 게 힘든 모양이었다. 몸이 약해지니 정신도 약해지는 모양이다. 자식들이 왔다가 갈 때면 붙잡지는 않아도 아쉬움을 확연하게 드러낸다.


평생 남을 돌보기만 했던 엄마인데, 정작 엄마에게 돌봄이 필요해졌을 때, 엄마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무척 어려워했다. 자식들에게 폐를 끼친다는 생각 때문에. 돌봄의 잔인한 역설이다.


고관절 골절 이후 엄마는 “이렇게 사느니 죽는 게 낫다”는 말을 가끔 했다. 이전에 척추뼈에 문제가 생겨 수술한 적이 많았지만 그때는 수술 후에 내 몸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가 있었다. 하지만 고관절은 달랐다. 아픈 건 둘째 치고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운동을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용납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 엄마를 보면서 ‘나는 노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고민 속에는 단순히 몸의 불편함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더 이상 돌봄 제공자가 될 수 없다는 절망감, 돌봄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자괴감이 더 큰 고통이었을 것이다. 그동안 엄마의 정체성은 ‘돌보는 사람’이었다. 자식들을 돌보고, 음식을 해주고, 걱정해주는 것이 엄마의 존재 이유였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가 되었다. 자식들이 엄마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누구보다도 엄마 자신이 그것을 받아들이지는 못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그리고 우리 가정에서 돌봄받는 것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부정적인지를 보게 된다. “폐를 끼친다”, “짐이 된다”는 식으로만 여겨지는 현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나는 엄마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폐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고. 평생 우리를 돌봐준 엄마가 이제는 돌봄을 받을 때가 되었다고.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사랑의 순환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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