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선교활동으로 전남 진도군 조도면 나배도리를 찾았다. 바닷바람이 소금 냄새를 머금고 불어오는, 배로 한참 들어가야 닿는 작은 섬이었다. 이곳은 젊은이보다는 노인이 훨씬 많은 마을이다. 그나마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낮이면 바닷가로 나가 일을 하기 때문에, 한낮엔 집집마다 노인들만 남는다.
첫날, 우리는 세 명씩 짝을 지어 마을 구석구석을 돌며 가가호호 방문했다. 대문 앞에 서서 안부를 묻고, 때로는 집 안에 들어가 차 한 잔 나누며 인사를 드렸다. 올해가 벌써 세 번째 방문이라, 이미 얼굴을 아는 주민들도 많았다. 지난 3 년간 꾸준히 이어온 관계 덕분에 웃으며 맞아주는 분들도 있었다.
그런데 그날, 한 할머니가 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마음에 오래 남게 되었다. 그 집의 대문을 열자마자, 마당 한쪽 땅바닥에 앉아 있는 할머니가 보였다. 햇볕이 한쪽 어깨를 스칠 만큼만 대문이 열려 있었고, 할머니는 몸을 조금 비껴 앉아 우리를 바라보았다. 반가움의 표정도 없고 묻는 말에도 짧게만 대답하고, 표정은 굳어 있었다. 짧은 대화를 나눈 뒤, 우리는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그 집을 나섰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나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조금 무뚝뚝한 분이구나 하는 정도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나의 시선이 얕았기 때문이었다. 할머니의 굳은 표정 뒤에 숨겨진 80년의 외로움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뒤늦게 그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어릴 적 받은 깊은 상처 때문에 결혼도 하지 않았고, 올해로 80세가 되도록 홀로 살아왔다고 했다. 앉은뱅이 장애가 있어 거동도 불편했다. 이웃과의 교류도 거의 없었고, 마을 사람 누구와도 마음을 터놓지 않은 채 지내왔다. 외로움이 일상이었고, 고립된 삶을 사는 듯 했다. 할머니의 굳은 표정은 무뚝뚝함이 아니라 자기 보호였다. 80 평생을 혼자 살아온 사람이 낯선 이들에게 마음을 쉽게 열 수 없는 것은 당연했다. 할머니에게는 돌봄받은 경험이 거의 없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 평생의 고립, 신체적 장애까지 이 모든 것을 혼자 견뎌내야 했던 분에게, 갑자기 나타난 낯선 사람들이 "안녕하세요"라고 말한다고 해서 쉽게 마음을 열 수 있을까?
올해 처음 이 섬에 온 나와 달리, 3년 내내 선교활동을 이어온 A씨는 이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다음 날, 그는 혼자서 다시 그 할머니를 찾아갔다. 놀랍게도, 그제서야 할머니는 마음을 조금 열었다. A씨와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며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무엇이 할머니의 마음을 열게 했을까? 80년 이상 혼자 살아온 사람이 어떤 용기를 내어 그 빗장을 연 것일까?
그것은 두 번째 발걸음의 힘이었을 것이다. 첫 번째 만남에서는 할머니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음에도, A씨는 다시 찾아갔다. "이 할머니가 무관심한 게 아니라 외로우신 거구나"라는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진짜 돌봄의 시작이었다. 상대방의 반응이 차가워도, 무뚝뚝해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다가가는 마음. 그 마음이 80년 동안 닫혀있던 마음의 문을 열었을 것이다.
다음날 A씨는 성격이 쾌활한 여대생을 데리고 또 할머니를 방문했다. 여대생은 자기가 이제부터 할머니 손녀딸 하겠다고 했고 감동한 할머니의 주머니가 열렸다. 5천원을 받고 손녀딸 대학생도 감동했고 그 모습을 보는 할머니도 너무 행복해했다.
여기서 나는 돌봄의 상호성을 본다. 할머니는 단순히 돌봄을 받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여대생에게 용돈을 주면서, 할머니 자신도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이 되었다. 평생 누군가의 할머니가 되어본 적 없는 분이, 생애 처음으로 손녀를 얻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손녀에게 용돈을 줄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할머니의 존재 가치를 확인시켜드린 순간이었을 것이다. 진정한 돌봄은 일방적으로 베푸는 것이 아니다. 돌봄 받는 사람도 동시에 돌봄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섬을 떠나기 전날, 다시 할머니 댁을 찾았다. 할머니는 우리를 위해 시원한 커피를 미리 타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한 컵의 커피에는, 우리가 도착하기 전부터 준비한 기다림과 마음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달콤하고 진한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며 할머니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정성을 온 몸으로 느꼈다. 이 순간, 나는 돌봄이 뒤바뀐 것을 보았다. 이제 할머니가 우리를 돌보고 있었다. 미리 커피를 타서 기다리고, 우리를 위해 준비하고. 돌봄받기만 하던 분이 이제는 돌봄을 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 커피 한 모금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그것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할머니가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경험, 누군가를 돌본다는 기쁨이 담긴 선물이었다.
우리가 곧 떠난다는 말을 전하자,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 순간, 평생 가족도, 이웃도 없이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외롭고 길었을지 짐작이 되면서 우리들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는 내년에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며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할머니의 눈물을 보면서, 나는 이별의 아픔도 하나의 선물이라는 생각을 했다. 80년 동안 혼자 살아온 분에게는 아마도 '이별'조차 낯선 경험이었을 것이다. 이별이 아픈 것은 소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이별의 아픔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픔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관계를 얻었는지를 깨닫고 있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 할머니의 생각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이 할머니의 돌봄은 누가 해야 하는 걸까? 지금 우리 사회는 홀로 사는 노인, 특히 신체적 장애와 사회적 단절을 동시에 겪는 이들을 제대로 품고 있는가? 물론 지역사회나 국가에서 이런 분들을 위한 돌봄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제도적 돌봄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돌봄이란 꼭 거창한 제도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곳에서 함께한 시간은 일 년 중 고작 4일 뿐이었다. 그 짧은 며칠의 관심과 온기만으로도, 한 사람의 마음이 열리고, 표정이 바뀌고, 웃음과 눈물이 함께 피어날 수 있다니. 때로는 한 번 더 찾아가는 발걸음, 한 번 더 건네는 인사, 한 번 더 묻는 안부가 진짜 돌봄의 시작일 수 있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나는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잔잔한 물결 위로 햇빛이 부서지고, 섬은 점점 멀어졌다. 그 섬 어딘가에서 여전히 혼자 있을 할머니의 모습을 떠올렸다. 이제 할머니는 예전의 할머니가 아니다. 손녀딸이 생겼고, 내년을 기다리는 이유가 생겼고, 누군가를 위해 커피를 타서 기다려본 경험이 생겼다. 돌봄은 꼭 내가 직접 돕는 것이 아닐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그 사람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할머니를 통해 배웠다. 어쩌면, 돌봄이란 관심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첫 번째 만남에서 차가운 반응을 받아도, 두 번째, 세 번째 찾아가는 마음. 상대방이 마음을 닫고 있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는 마음. 작은 변화의 신호라도 보이면 더 많은 관심으로 응답하는 마음. 그런 마음들이 모여서 80년 동안 닫혀있던 한 할머니의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할머니는 우리에게 커피 한 잔의 돌봄을 돌려주셨다. 이것이 진정한 돌봄의 순환이다. 관심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되어,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돌보게 되는 아름다운 관계. 나는 이 섬에서 돌봄의 가장 본질적인 모습을 보았다. 거창한 제도나 전문적인 기술이 아니라, 한 번 더 찾아가려는 발걸음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이야말로 모든 돌봄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마음만 있다면, 4일의 만남도 80년의 외로움을 녹일 수 있다. 그리고 그 녹은 마음은 다시 새로운 돌봄의 씨앗이 되어 퍼져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