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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연주리 Sep 10. 2019

너희가 예쁘기 시작한 올해부터 죽음이 두렵지 않다.

나의 작은 신 - 아들, 딸


나는 죽음이 항상 두려웠다.

삼십육 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죽음이라는 생각 앞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초등학생 시절에 죽음이라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되면서 죽음이 무서워 잠을 이루지 못할 날이 셀 수 없이 많을 정도였다.


성인이 되면 그 마음이 사라질 줄 알았는데, 취업을 위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뛰어다니느라 잠시 잊었던 것일 뿐, 취업을 하여 자리를 잡고 여유가 생기자 다시 죽음이란 의미가 나를 머리와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래서 또 잠 못 자고 죽음을 생각하며 새벽에 무서움에 떠는 나날이 이어졌다.


죽음은 무엇일까? 나는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다시 태어난다는 게 가능할까? 하루살이의 죽음은 어떤 의미일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들... 그러나 명확한 답은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 란느 진리 외에는 찾지 못했다.


지금의 남편과 연애를 할 때에도 남편에게 물어보았다. 죽음이 두렵지 않냐고

“죽음? 죽음이… 그냥 누구나 죽는 거잖아. 크게 두렵지 않아.”

남편은 신입사원 시절 갑자기 어머니가 암에 걸려서 돌아가시는 걸 경험하였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죽음을 겪고 죽음에 대해 담담히 말하는 남자가 너무 듬직해서

얼른 결혼해서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나의 두려움이 조금은 줄어들 것 같아서


그래서 결혼한 것만은 아니지만, 내가 결혼하자고 일 년 동안 징징댄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이 남자와 결혼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잠시 잊고 있었는데

새로운 생명체인 너희가 연달아 태어나면서 다시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나로 인해 나의 의지로 인해 태어난 너희도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고,

나중에 내가 너희를 사랑으로 키우고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면 너희는 나를 그리워하겠지.

아주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그래서 죽음이 백배로 더 무서워졌다.

내가 너희라는 생명체를 낳고 그런 너희에게 나의 죽음을 경험하게 하고 또 너희 자신의 죽음을 언젠가는 마주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경험을 얼마 전에 하게 되었다.

아마 너희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운 요즘 그러니까 올해 봄부터였던 것 같다.

채윤이가 말을 잘하고 유모차 없이 씩씩하게 잘 걸어 다니게 되면서

너희와 무엇을 하든 어디를 가든 너무 행복해서, 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정말 신기하고 감사하게 그런 행복한 감정을 느끼면서부터

더 이상 죽음이 예전처럼 무섭거나 두려움으로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 벌벌 떨거나 잠 못 자는 날이 사라졌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너희처럼 예쁜 사람을 만났고,

너희처럼 사랑스러운 이와 같이 살면서 부비부비 하고 뽀뽀하고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거겠지.


너희를 만난 것만으로도 무언가 내 인생에 큰 의미가 생긴 것 같아서일까.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르겠지만 너희가 더없이 예뻐 보이기 시작한 날부터

죽음이 무서워 잠들지 못하는 일이 없어졌다.

자기 전에 죽음을 떠올려도 이상 두렵지 않게 되었다.


죽음이라는 생각을 머리에서 빼내기 위해서

달콤한 초콜릿을 먹고, 야한 영상을 보고, 매운 라볶이를 먹는 일이 사라졌다.

이제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접해도 마음이 평화롭다.

이 얼마나 내 인생에서의 큰 변화인지.


너희가 나를 죽음이라는 두려움으로부터 구원해주었다.

나의 작은 신 나의 아들, 나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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