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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연주리 Nov 19. 2019

청소는 낭만 파괴자

청소는 역시 안 하는 게 좋다


* 가을과 낙엽
 
요즘 추워졌다는 핑계로 산책을 하지 않은 것 같아 오랜만에 너희 손을 잡고 싶으나 잡지 못하고 그냥 나갔어. 날도 추운데 손 좀 잡고 걸음 얼마나 좋아  속으로 혼자 툴툴거리며 나갔지.
너희 손은 ''차 오니까 위험해!''라는 순간에만 어쩔 수 없이 잡을 수 있는 거지 나도 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 단지는 차가 전부 지하로 다니는 신도시라 너희 손을 잡을 이유가 없다. 좀 잡아주면 안 되겠냐. 어떤 상황에서든 자유의지를 부르짖는 나를 닮아서인지 아이들은 손 잡고 걷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 제멋대로 자유의지를 온몸에 담아서 혼자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
그래도 겁은 나는지 주차장이나, 야외로 나가면 그나만 손을 잡지만 그마저도 스스로가 안전을 느끼면 스르르 놓아버리는 너희들. 힝...
 


아무튼 그렇게 너희와 가을을 만끽하러 나갔다. 꼭대기층인 우리 집에서 내다본 단지가 너무 예뻤거든. 알록달록 나뭇잎이 발갛게, 오렌지 빛으로 물든 게 너무 예뻐서 가까이서 감상하려 했지. 그리고 가을을 제대로 느끼려면 뭐니 뭐니 해도 '낙엽 밝기'가 아니겠나. 낙엽 한 번 밟아줘야 가을을 제대로 느꼈다 할 수 있지 않겠나. 그래서 낙엽이 많이 모여있는 곳으로 아이들과 걺을을 옮겼다. 낙엽이 쌓인 것을 보자 내가 이성을 망각하고 제일 먼저 달려갔지.


'' 우와~~~~~~~~~~ ''하면서 그런데 에게..


바시락 바시락 소리를 기대하고 낙엽을 밝았는데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들뜬 마음으로 평상시에 잘 달리지 않는 내 몸이 엄청난 스피드로 달려갔으면 낙엽아 너도 어느 정도 보상을 나에게 헤주어야 하는 것 아니니? 어떻게 나에게 가을 소리를 하나도 안 들려 줄 수가 있냐? 진짜 이러기냐?
 
낙엽은 갓 떨어지면 물기를 머금고 있어 바시락 바시락 낙엽의 제맛이 나는 그 소리가 안 난다. 그런데 하루만 지나도 햇빛에 바싹 말라
낙엽의 진가를 발휘하는 바시락 소리를 낼 수 있지. 딱 하루다 딱 하루. 그런데 왜 그 하루를 버틴 낙엽이 없냐고. 하루 버티는 게 뭐가 어렵다고.
 
너무 열심히 치워서 갓 떨어진 낙엽밖에 남아있지 않은 거지. 아무리 밟아도 가을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이유는 우리 단지에 청소하시는 분이 너무 열심히 일하신 거...라는.. 사실. 이 나를 슬프게 한다.
 
내가 부산 떨며 들떠있다가 조용해지니 아들이 묻는다.
"엄마 왜 그래요?"
"낙엽에서 가을 소리가 안 나. 엄마 바시락 바시락 그 소리 듣고 싶단 말이야."
"엄마, 잎이 떨어진 지 얼마 안 돼서 그래요."
여섯 살짜리 아들이 나에게 낙엽에서 소리가 나지 않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해준다. 알아 나도 안다고! 그거 내가 설명해 준거잖아!
 
청소 때문에 낭만이 사라지는 요즘이다.
 


* 집 청소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채윤이가 나에게 묻는다
"엄마 내 가게 어디 갔어요?"
"그러게 우리가 어제 열심히 만든 가게 어디 갔지?"
"으앙~~~~~~~~~~~~~~~~~~~~~~~"
평소 어른스럽던 채윤이가 갑자기 아기가 되어서 앙~~~ 소리를 내며 목청이 보이도록 입을 크게 벌려 운다.
울만도 하지 채윤이는 어제 내가 옷걸이를 살 때 담겨있던 종이상자를 가지고 한 시간 두 시간도 넘게 가지고 놀았다. 이렇게 저렇게 놀다가 결국에는 확신에 찬 얼굴로 자신만의 가게를 꾸몄다. 평소 식당 놀이를 좋아하던 채윤이가 큰 상자로 드디어 자신만의 가게를 차린 것이다.



내가 아이디어를 더해서 Open close를 할 수 있는 문을 하나 만들어 주었다. OPEN 하면 가게가 문이 열어서 영업을 하는 것이고 CLOSE 하면 문이 닫혀서 음식을 주문할 수 없는 것이다. 이 문을 만들고 채윤이가 얼마나 신나고 행복해했는지 그 얼굴을 못 본 남편은 절대 상상할 수 없다. 그걸 봤음 상자를 쓰레기로 보고 버릴 리가 없지.
이 가게 때문에 흥분해서 한 시간 더 늦게 자러 방에 들어간 채윤이는 졸려서 누웠다가 갑자기 이불에서 튀어나가 거실로 갔다. 궁금해 따라나가니 거실에 있는 자신의 가게 문을 CLOSE로 닫으면서 씩 웃었다. 자는 시간이니 문을 닫아야겠다는 생각이
자리에 누우니 번쩍 떠올랐나 보다.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엽던지 채윤이의 흐뭇한 표정을 생각하며 나도 채윤이도 바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가게 OPEN 하려고 거실에 나가보니 이게 모야! 가게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이가 울 만도 하지.. 그것도 목놓아 꺼이꺼이 울만한 일이지. 알고 보니 청소 좋아하는 남편이 집에 늦게 들어와서 청소한답시고 그것을 가져다가 분리수거함에 이미 내다 버린 것!
 
청소가 원수다. 청소가 원수야
분리수거 좋아하는, 청소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채윤이의 낭만이 사라졌다.
 
 
* 설거지
 
설거지 좀 한다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설거지는 씻어야 하는 그릇이 생겼을 때 바로바로 하는 거라고. 그래야 그릇이 잘 닦이고 설거지통에 그릇이 쌓이지 않아 깔끔하다고. 그런데 나는 반대다. 설거지는 우리의 식사시간의 낭만을 빼앗아 가기 때문이다. 밥이라는 것은 빨리 먹고 치우기 위함이 아니다. 가끔 청소를 중요시하는 사람과 식사를 하다 보면 밥을 빨리 먹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밥맛을 제대로 못 느낄 때가 있다. 빨리빨리 뭐든지 치우고 싶어 하는 사람을 보면, 빨리 먹고 그릇을 내어주어야 할 것 만같은 압박을 느낀다. 반찬과 밥을 비벼 먹기도 하고, 소스를 밥에 쪼르르 붓기도 하고, 이 반찬 저 반찬을 같이 섞어 먹기도 하고 해야 밥맛이 제대로 나는데
그릇이 더렵히 질까 봐 비비거나 섞어서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 아... 이야기도 하면서 반찬 맛을 하나하나 음미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싶은데... 상대가 빨리 먹고 치우고 싶어 하면 어쩔 수 없다. 나도 호로록 먹어야지.


밥을 먹는 시간은 신이 내린 아름다운 마법 같은 시간이다. 마주 보고 앉아서 침묵이 흘러도 어색하지 않은 시간이며 어떤 주제의 이야기를 해도 어색하지 않은 시간이다. 그런 마법 같은 시간에 후딱 먹고 일어나 바로 설거지라니 낭만이 없다.
 
청소에서 조금 멀어지면 낭만이 솟을 텐데,
나는 오늘도 청소가 아닌 낭만에게 자리를 내어주며 설거지를 설거지통에 쌓아 놓는다 아니 낭만을 쌓는다.


설거지거리가 쌓이는 만큼 우리의 낭만도 쌓이기를.
청소하지 않은 거리에 낙엽이 어지러 히 쌓이는 만큼 낭만이 커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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