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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샤인 연주리 Dec 26. 2019

나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너의 온기

아이에게 의존하는 엄마, 니네도 엄마한테 의존해라!

오늘 오전에 쓰레기 같은 인간한테 무지막지하게 욕을 먹었다. 요즘 시대가 시대니 만큼 쌍욕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나에게 어마어마한 어둠과 악마의 에너지를 뼛속까지 꽂아주었다. 그 인간과 통화를 하기 전 그러니까 이른 아침까지 나는 너희들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만지고 비누와 쉰내가 적당히 섞인 너희 냄새를 맡으며 일상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지.  그리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엄마는  예쁜 빨간 원피스를 받고 싶은데 산타는 어른은 선물 안줘서 속상하다고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더니지성이가 드라마 남자 주인공처럼 나에게 다가와 어깨를 툭툭 치더니 미소지으며 말했지 

"엄마 걱정마요. 내가 통장에 있는 돈으로 엄마 크리스마스 선물 사줄게요!" 

정말 행복 에너지가 몸에 가득차 넘처 흘러 옆집 사람이라도 나누어 주어야 하는 건가 하며 행복에 겨워있는데

기만히 있어도 예쁜 그 도톰하고 빨간 입술로 채윤이가 

"엄마! 나는 이면지에다가 예쁜 빨간 드레스 그림그려줄게요. 그거 선물로 엄마 줄게요." 

아~ 나보다 행복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는데 회사 도착하자마자 받은 전화 한통으로....기운이 바뀌어버렸다. 


나의 그 행복이 퐁퐁 솟던 몸 속 에너지를 그 쓰레기 같은 인간이 다 밖으로 내쫓고 악의 기운을 어마무지하게 선사해 주었다. 돈을 내고 의뢰한 일이 자꾸 늦어져서 짜증이 나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담당자가 연락두절이 되어 인수인계가 하나도 안되어 있는 상태로 급 담당자가 바뀌었고 일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되었다. 기다림이 또 시작되었고 나는 짜증이 쌓여있는 상태에 이틀을 더 기다리라는 말에 새 담당자에게 불만을 표현했다. 내가 성인군자처럼 더 기다리고 기다렸어야 하는 것인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왜 그 화를 밖으로 뿜어서 백배 천배의 화를 받았는지 정말 바보 같다. 허벅지를 꼬집으며 입을 악 다물며 화를 참았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억울한 것은 나는 시원하게 화를 낸 것도 아니고, 욕은 한 글자도 사용하지 않았고, 그냥 짜증을 좀 냈을 뿐이다. 나는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그런데 새 담당자는 자신이 억지로 나를 맡았는데 또 기다려야하냐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나빴나 보다. 화를 참지 못하고 나에게 몇십분을 쏘아댔다. 한번 짜증낸 걸로 내가 평생 듣지 못한 욕을 이렇게 먹어야 하는 건지...  계속 화를 내길래 내가 원하는 게 뭐냐고 하니까 나의 진심어린 사과란다. 나는 그 사람과의 통화를 1초라도 빨리 끝내고 싶었다. 더이상 그 악의 기운을 내 귀를 통해 내 몸속에 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존심을 잠시 저 창밖에 던져두고 말했다.

"죄송하게 됐습니다. 제가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네요."

무려 세번을 말했다. 내가 왜 짜증을 내가지고 그 분의 심사를 건드렸을꼬. 내가 백번 잘못했다. 그 사람이 조용히 전화를 끊을 때까지 사과를 했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 회사에서 내 자리로 돌아오는데 다리에 힘이 풀리고, 심장이 터질듯이 뛰기 시작하고, 머리 끝까지 열이 뻗치면서 폭발을 할 것 만 같았다. 나도 누군가 붙잡고 욕짓거리를 해대고, 막 소리지르면서 화를 풀고 싶었다. 피지 못하는 담배 생각이  왜 나는지 담배피러 나가는 동료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힘들어하는 나를 응원하는 친구의 켈리그래피


그렇게 내 자리에 나 자신을 다스리며 앉아있으니 뜨거운 눈물이 나오면서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다. 빨리 만나고 싶다. 빨리 만지고 싶다. 빨리 이야기 나누고 싶다. 너희의 그 순수한 눈과 순수한 마음과 순두부같은 살을 만지면 내 마음이 누구러질 것 같았다. 빨리 너희를 품안에 꼬옥 안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간절해졌다. 썩은 내 기분을 원래의 나로 돌려놓을 수 있는 것은 너희의 작은 몸뚱아리와 아기냄새 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 날 회사에서 어떻게 어떤 정신으로 일했는지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지하철도 내가 어떻게 갈아타고 왔는지 모르겠다. 그냥 멍하니 넋이 나간 얼굴로 지하철에 서 있으니 어르신이 나를 툭툭치며 자리를 양보하며 앉으라고 해서 얼떨결에 앉았던 비정상적인 잘못된 양보의 방향만이 기억난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나와 체온을 나눌 수 있는 포동포동한 너희들을 만나는 시간! 유치원에 가서 너희를 불러달라고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신발장 앞에 앉아 너희들을 기다리는 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다. 대학생 때 처음 남자친구를 사귀던 시절, 데이트 약속 시간이 다가오면 가슴이 콩닥콩닥하던 그 시절마냥 너희를 보러 유치원에 가는 길은 마음이 온통 설레임으로 가득하다. 신발장 앞에 서서 교실문이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으면 곧 그 문이 열리고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머리카락을 날리며,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사이즈의 몸을 가진 너희가 달려나온다. 웃으면 없어지는 눈으로 한껏 웃으면서 "엄마~"하고 나온다. 

나는 영화 속 한장면처럼 양팔을 벌렸고 아이들이 달려와 안길거라 생각하며 서 있는데, 어.. 이게 아닌데..

아이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내 팔 밑으로 쑤욱 빠져나가더니 자기들끼리 신나서 낄낄댄다. 


"지성아, 채윤아 엄마가 오늘 정말 힘든 일이 있었어. 마음이 아프다고. 너희의 사랑이 필요해."

사뭇 진지하게 말하고 안아달라고 부탁을 해도 아이들은 혀를 길게 내빼더니 놀이터로 가버린다. 야속한 놈들 엄마 오늘 진짜 마음이 힘든데... 놀이터에서 내가 평상시와 달리 축 쳐져있자 지성이가 묻는다.

"엄마 진짜 마음 아파요?"

"응, 지성아 오늘 엄마가 어떤 아저씨한테 엄청 나쁜 말을 많이 들어서, 마음이 너무 아파. 그래서 너희좀 안고 에너지 얻으려 했는데, 너희가 안아주지 않아서 아직도 기운이 없어."

그러자 지성이가 채윤이를 큰 소리를 부르더니 엄마를 안아주자고 말한다. 지성이가 나를 꼬옥 안아주고, 채윤이가 나를 일분넘게 안아준다. 정말 내가 경험하고도 믿지 못할 일이다. 아이들이 나를 따뜻한 몸으로 안아주자 정말 마음 속 얼음이 녹아버렸다. 심리치료 10회정도 받아야 볼 수 있는 치료효과를 아이들은 5분도 안되는 시간에 내게 가져다 주었다. 사랑의 신비로움이라고 밖에 표현할 방법이 없다.


너희는 내 삶의 축복이다


아이들의 사랑이 담긴 위로의 포옹이 나의 지친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었다. 그래 세상은 상처 받을 일이 많다.  오늘만 상처 받은 것도 아니고, 앞으로도 상처는 크기는 좀 다르겠지만 계속 받을 테지. 하지만 너희가 있어서 상처를 조금 더 똑바로 주시하고, 피하지 않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집에 와서 너희에게 위로 받을 수 있으니까. 나의 마음은 집에서 회복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니까. 다시 생각해도 웃긴다. 이건 부모가 아이에게 하는 역할인데 나는 그런 부모가 되기 이전에 너희에게서 위로를 받고 있구나.


나도 너희에게 그런 존재이고 싶다. 너희가 밖에서 상처를 안받는 방패막이가 되어주지는 못하겠지만 너희가 상처를 입고 집으로 왔을 때, 너희의 마음을 다시 회복시켜줄 수 있는 따뜻한 위로와 포옹을 줄 수 있는 그런 부모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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