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

주변에 대하여, 2017

by enby



해가 떠도 죽은 것처럼 자게 되는 집에서는

얼굴 모르는 옆집 사람의 텔레비전 소리만 들리는 집에서는

이웃의 말소리가 없는 집에서는

목소리가 낯설어 혼잣말이 안 나오는 집에서는

온통 인공의 소리뿐인 집에서는

그러면서도 고요가 불안한 집에서는


마주할 것이라곤 전혀 살지 않는 집에서는

밖에 나무 한 그루 서지 않은 집에서는

잠자코 숨어들 풍경이 없는 집에서는

팔다리를 뻗어볼 수 없는 집에서는

바닥이 널찍해도 누울 마음이 안 드는 집에서는

표정이라곤 지을 일 없는 집에서는


거울을 들여다보기 싫은 집에서는

다른 이의 웃음이 기분 나빠지는 집에서는

손을 찧어도 울음이 뱉어지지 않는 집에서는

뭘 먹고 있는 동안에도 다른 게 먹고 싶어 지는 집에서는

들어가고 싶다가도 막상 오면 누가 가둬버린 듯한 집에서는

내가 나가는 게 아니라 쫓겨나야하는 집에서는


내일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캄캄한 집

밤마다 아침이 오지 않길 바라는 집

외로운 곳에 지어져 외로운 집에서는

집 때문에 외로워질 수밖에 없어 그런 집에서는

나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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