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거울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진짜와 가짜에 대하여, 2017

by enby



당신의 거울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편지가 한 통 왔다

아이보리색 무지 편지지에 달랑 한 줄 뿐인

문장은 불분명한 수신 발신과 달리

확신에 차 있었다


'당신의 거울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친한 친구를 불러

거울을 들이밀고

뭐가 보이냐 물었다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를 한 번

무심하게 자기 얼굴을 한 번 보더니

그냥 거울 아니냐 삐죽 한다


그래 정말 보통의 거울이지

내가 앞에 서면 내가

너를 비추면 네가 보이는

누가 봐도 다르지 않은 거울


아주 어두운 밤 머리를 풀고

거울 앞에 서서 본다

어디선가 숨어든 미미한 빛이

한쪽 관자놀이와 광대뼈로 이어져 내리고

검붉은 명암으로 짐작게 하는 입술 그 언저리를

고작 서른을 넘긴 인간의 얼굴에도 패이는 시간과

드러난 하악의 테두리로 흘러내리는 패잔을


생경한 표정으로 한 번

다시 돌아가지 못할 그날의 나로 또 한 번

무심할 수 없는 눈빛의 너는

눈부시지 않은 아침의 소리를 아는 자로서

그 안에 갇혀 들어갔다

가문 숨, 나비 소리도 끼어들 틈 없이 사라졌다


그로부터 흩어진 며칠 후

뿌리까지 썩었던 여러해살이풀이

난데없이 싹을 틔운 걸 발견한 일이 있었다

그날 미스터리 한 편지를 찢어 버렸다

그리고 가능한 많이 담기는 대야로 함빡

물을 먹여 해 잘 드는 자리에 놓은 뒤

외출 준비를 서둘러 나간 나는

새 거울을 달았다

보통의 그 거울은 전봇대 아래 내다 놓은 지 얼마 안돼

누군가 들고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어딘가의 벽에서 다른 것을 비추고

나는 또 다른 거울을 아껴 바라본다

들키지만 않는다면 언제까지나

부여받을 진정성

그 안에서 시들지 않을 거짓

미스터리 한 진실이 줄타기하는 오늘

비로소 숨 쉬는 정말 보통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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