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시(光視)*

빛과 어둠에 대하여, 2017

by enby



하루를 딱히 하는 일 없이 보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해가 가고 달이 떴다. 매 순간 눈 뜨고 있었어도 돌아보면 오늘이라는 시간은 몽롱하다. 이 모습을 안다면 당신은 뭐라고 할까 생각한다. 조금 부끄러워지지만, 몸은 마음처럼 일으켜지지 않는다.


누운 채 나래를 편다.

지구라는 공간에 60억이 넘는 로켓 함대가 있다. 이들은 어디론가 비행할 권리를 가진다. 공평하게 부여받는 약 일백 년어치의 연료는 시간을 허용하지만, 욕구는 채워주지 않는다. 비행 중 불의의 사고나 예기치 않은 질병으로 그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쏘아 올려진다.

어디론가 가기 위해 누군가와 손을 잡기도 하고 절대 헤어지지 않을 것처럼 유한한 줄 아는 영원을 약속한다. 무작정 누군가를 따라가기도 한다. 시키는 대로 하는 것에 편안함을 느낀다. 되는대로 살기도 한다. 함대에는 질서가 있다. 오래 비행해보면 자연히 알게 되는 규칙과 체면 겉치레와 같은 것들도 있다. 점차 지키는 것에 집착하게 된다. 지키는 것에 집착하다, 자신을 지킬 수 없게된다.


점점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다.

우리는 기억하지 못하는 의지로 성립되어 로켓에 태워지고 목적지도 모른 채 출발했다. 그러나 모든 출발은 없는 의지 속에서도 어딘가로 향한다. 방향 없이는 애초에 출발이라는 걸 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 가진 게 없을 때라도 오직 존재함의 목적지는 있다. 어딘가 도착할 것이다.


결국 닿아야 하는 그 행성의 성질은 어떤가.

이 유법시대의 무법지대에서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흔히 돈, 명예, 사랑과 같은 것들. 태생적으로 욕심쟁이인 인간은 선택하지 못하고 단 한 가지, 행복이라 말하곤 한다. 그리고 게임의 스테이지를 밟아가듯 하나하나 손에 넣으면, 모든 것을 가지고 무사히 행복해지리라 믿는다.


그러나 삶은 가혹한 것.

흔히 운명의 장난이라 부르는 만행 저 너머엔 절망에 실려온 무거운 모래 언덕이 있다. 그곳을 넘지 못한 녹슨 로켓들은 연료만으로 늙어가고 있다. 누군가 그곳에선 모두가 희망이라곤 없이 시간을 죽이며 살다 사라진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돌아온 자 없는 그곳의 실체를. 그곳 사람들은 많이 가지지 못했다. 유연하지도, 웃음 띤 얼굴로 말하지도 못한다 우리는 그곳에 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벽을 세우고 어두워 볼 수 없다고 말한다. 실패자들의 무덤이라 부르며 공포를 키운다


반대로 밝은 곳은 늘 사람이 몰린다.

모두가 꿈꾸는 삶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믿는 까닭이다. 실로 그곳에는 모든 것이 있다. 행복을 향하고 있는 사람, 이미 행복한 사람, 행복한 척하는 사람 행복할 줄 모르는 사람도 부대끼며 살아간다. 하지만, 모든 게 다 비슷해 보인다. 밝으면 밝을수록 서로를 잘 알아볼 수 없게 된다.


물론 우리는 빛과 어둠의 잣대로 단순히 나뉘지만은 않는다.

30년을 살아오면서 적잖은 사람을 만났고 비자발적으로 얻게 된 교훈도 있다. 무조건적으로 밝은 곳에만 속하려는 이는 믿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절망에 처해본 사람은 그렇지 못한 이보다 강인하고 마음에 멋진 주름을 가지고 있다는, 그런 것들. 어두워 보여도 행복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눈부시게 빛나더라도 들여다보면 잿더미만 수북한 사람도 있다


쉽게 생각하는 것은 쉽다.

맹목적인 이 비행은 언제 어디에서 블랙홀에 처박힐지 모르는 위기일발을 살아가는 일이다. 누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질지 알 수 없다. 기를 쓰고 잘 살아보겠다고 해도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중에 어둠을 외면하는 일, 실패가 낙인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절망하는 사람들을 쉽게 판단해버린다. 이 때문에 종종 울화가 치밀고 오늘처럼 무력해진다. 그런 밝음이 두렵다. 언제까지 밝을 수 있기에. 얼마나 밝을 수 있을런가. 어둠이 없다면 태양은 떠오르지 못한다. 정작 태양의 눈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세상은 모른다.


지금껏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 동안의 비행을 되돌아본다.

사소하고 찬란한 기억과 가슴을 할퀸 상처들이 떠올랐다 사라진다. 그럼에도 아직 내게는 길다면 70년 정도의 연료가 남아 있다. 이제 검고 긴 사막을 걷게 될지도, 몸을 드러내는 순간 재가 돼버릴 뜨거운 빛의 한가운데를 날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삶은 아무것도 예고하지 않는다.


지금은 어둠인가, 빛인가. 내가 누워있는 이곳은.

당신의 그곳은 어떠한가.

언제까지 밝을 수, 얼마나 더 어두울 수 있을런가.

나는 상관없다 할 수 있을까.

영영 못해도 어디론가 가게 될 것이다.





*광시(光時/光視)

: <천문> 천체에서 방사(放射)된 빛이 관측자에게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

지구와 태양 사이의 광시는 498.8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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