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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플리 Aug 15. 2018

돌아갈 곳이 있다

순간에 대하여, 2018




아코디언을 가진 청년과 마주친 적이 있다

그 아이는 아침부터 길에 나와 연주를 했다

사람들은 익숙한 듯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나 역시 소리를 음미할 뿐 굳이 보려 하지 않았다

저녁 즈음 돌아오던 길에도 그는 있었다

작은 바구니에는 제법 동전이 쌓였고

연주는 절정을 향하는 노을처럼 한층 농염해져 있었다

눈을 감고 오로지 자신에 집중하는 앞에

나는 비로소 멈췄다

연주가 멈춰 세운 것이다

흩어지는 하루의 해가 건반에 비치고

바라보는 가슴에 박히는 선율이

들숨과 날숨을 반복하는 그의 허파로부터

나의 그것으로 다시 거리로 스몄다

땅거미 진 골목을 돌아온 그 밤에는

누구에게 한 마디 토해내지 못하고

붉은 들뜬 마음을 뒤적이다 잠들었다


이유는 스쳐간 불꽃과 같아

그 자리에 놓인 모든 것

석양 또는 공기였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때때로 무엇이 되어

때때로 어딘가 머무는 것만으로도

흐뭇한 조각이 되곤 한다

온전한 자신에서 순간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는 제 자리에서

내가 돌아오는 때를 기다린다

다시 떠날 채비를 한다

잠깐이면 흩어질

지난 후엔 다르게 적힐

맑은 폭우를 뒤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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