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지도자, 완전한 지원 받게 될 것.”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재명 대통령에게 건넨 말이다. 외교 수사로만 치부하기엔, 회담 직후 이어진 현대차그룹의 대규모 대미 투자 발표가 갖는 함의가 적지 않다. 정치적 성과가 곧 산업적 결실로 이어지는 사례이자, 자동차 업계 지형에 영향을 줄 분수령이라는 평가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회담 직후 미국 투자 규모를 기존 210억달러에서 260억달러(한화 약 36조원)로 상향했다. 루이지애나주 전기로 제철소, 3만대 규모 로봇공장, 현지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 생산능력 확대 등이 구체적으로 포함됐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와 업계 일각에서는 불편한 시선도 나온다. 결국 현대차가 미국에서 공장 짓고, 미국 기업과 협력하며, 미국 소비자에게 차를 파는 구조라면 한국에는 손해가 아닌가 하는 우려다. 한미 정상회담을 통한 정치적 성과와 달리 산업적 성과가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이번 투자가 단순히 ‘미국 퍼주기’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글로벌 자동차 패권 경쟁 속에서 현대차가 살아남기 위해 미국 시장을 반드시 잡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국내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동반된다는 분석이다. 그렇다면 한국 소비자와 산업 입장에서는 어떤 손익계산이 가능할까?
현대차가 미국 현지 투자를 늘리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 정부의 정책 환경 때문이다.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라 미국에서 생산된 전기차만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한국에서 생산해 수출하는 전기차는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따라서 현지 공장 설립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에 가깝다. 보호무역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해외 생산 거점이 없으면 글로벌 시장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이 일방적으로 손해만 보는 것은 아니다. 우선, 미국 공장에서 생산되는 차량의 핵심 부품과 소재 상당 부분은 여전히 한국에서 공급된다. 특히 배터리팩, 전동화 모듈, 소프트웨어 등 고부가가치 영역은 국내 연구개발 및 협력업체가 주도하고 있다. 즉, 해외 생산이 늘어나면서도 한국 기업의 수출 물량과 매출은 동반 증가하는 구조다.
또한 현대차는 미국에만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에도 사상 최대 규모 투자를 병행한다. 올해만 24조3천억원을 집행하며 울산 EV 전용 공장과 기아 화성 이보 플랜트 등을 세우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해외 시장 대응이 아니라, 한국 내 생산기지와 연구개발을 동시에 강화하는 전략적 분배다. 해외에서 번 돈을 국내 투자로 연결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단기적으로 보면, 현대차의 미국 투자 확대는 한국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혜택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국내 생산 비중이 줄어든다는 우려와 함께,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 고용만 늘린다’는 불만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시장 점유율 확보를 통한 본사 매출 확대가 국내 연구개발 투자와 일자리 안정성을 뒷받침할 수 있다.
특히 GM과의 협업은 공급망 안정화와 원가 절감을 가능하게 한다. 이는 곧 더 다양한 모델을 한국 시장에 들여올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소형 SUV와 하이브리드, 전기 상용밴까지 공동 개발하는 차량 포트폴리오는 북미·중남미를 겨냥한 것이지만, 기술적 파생 효과는 한국 소비자도 누릴 수 있다. 플랫폼 공유와 원가 절감은 장기적으로 차량 가격 안정화에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현대차의 미국 투자는 ‘한국 손해’가 아니라 ‘한국 생존’의 문제다. 글로벌 패권 경쟁 속에서 미국 시장을 잡지 못하면 한국 자동차 산업 전체가 위축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트럼프로부터 “완전한 지원”을 약속받은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외교적 신뢰를 기반으로 한 투자 확대는 결과적으로 국내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한국 소비자에게도 혜택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