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의 속도로 자라도 괜찮으면 좋을 텐데
영유아 건강검진이 처음 도입된 건 2007년이다. 발달선별검사를 함께 받게 되어 있는데 사실상 걱정을 안 해도 되는 아이들의 엄마까지 걱정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우리 엄마가 나를 키우던 시절에도, 우리 할머니 세대가 우리 엄마를 키우던 시절에도 아이들은 잘 자랐는데.
유년기를 보낸 90년대에도 한 반에 한 두 명 정도는 발달이 느리거나 틱이 보이는 아이들이 있긴 했지만 말을 못 하는 친구들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저마다의 속도로 크지만 언어발달이 약간 빨랐던 아이들도, 말이 조금 느렸던 아이들도 초등학생이 되면 키를 맞추고, 중 고등학생이 되면 거의 비슷한 수준의 언어를 구사한다.
쉽게 접할 수 있는 많은 정보와 영유아 건강검진이, 걱정하지 않고 아이가 좀 느린가 보다 하며 키울 수 있는 부모들까지 병원이며 언어치료센터, 무발화센터에 쫓아다니게 하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유아 건강검진이 도입된 이유가 뭘까.
부모가 한두 명의 아이만 키우니
그들 모두를 “잘” 키워야 되는 시대가 되어서 아닐까.
예전에는 6남매, 8남매 아이들을 키우며 그들의 타고난 성향에 따라 환경에의 적응이 느려 그중에 한 두 명 말이 느리거나 사회성이 부족하더라도 부모들은 그런가 보다 하며 키울 수 있었다. 또 급속도로 성장하는 한국 사회 속에서 부모들은 생계에 지금보다 더 목을 메야했었기에 돌볼 여력도 지금보다는 적었다.
혹시 가정에서 좀 느린가 보다 하고 키우다가 적시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을 방지하고 자 하는 취지라는 것은 이해한다.
우리 있음이 역시 돌 무렵 영유아 건강검진을 했다. 생후 9~12개월용 검진표에는 영양교육, 구강교육, 청각,시각, 정서 및 사회성 교육, 안전사고 예방교육, 개인위생 등 7가지 분류로 나뉘어 33문항에 예 아니오로 답하게 되어 있다.
9개월부터 아이가 컵을 사용하여 스스로 먹어야 하는지 묻는다. 첫째 때 검사했을 때부터 알고 있긴 했지만 꼭 반드시 그 시기부터 써야 하는 걸까. 조금 과한 건 아닐까. 훨씬 시작해도 나중에 컵을 다 사용하게 되던데 말이다.
엄마가 엄마 또는 양육자가 없으면 아이가 불안해하지만, 엄마 또는 양육자가 돌아오면 편안해지는지 확인한다. 전형적으로 엄마와의 안정적 애착형성을 묻는 내용도 있다. 이런 것까지 나라에서 물어보고 점검해준다.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로 자라고 있는지 까지.
함께 작성해야 하는 발달선별 검사지는 기간의 범위가더 좁다. 생후 8개월~9개월, 생후 10개월~11개월, 생후 12개월~13개월 각각 2개월 구간으로 나뉘어 아이가 영유가 건강검진을 온 시기에 해당하는 월령의 문항지가 각각 존재한다. 대근육운동, 소근육운동, 인지, 언어, 사회성 각 영역마다 8개의 질문 총 40문항에 각기 4개의 답 중에 고를 수 있다.
아이가 내는 소리를 어른이 따라 하면, 아이가 다시 그 소리를 따라 한다 문항에 잘하지 못한다에 체크했다. ‘무무’ ‘바바바’ ‘다다’ ‘마마마’ 등의 소리를 반복해서 발성한다. 여기도 마찬가지로 표기했다. 엄마에게 “엄마”라고 아빠에게 “아빠”라고 말한다 문항도 역시.
첫째 때는 영유아 건강검진을 통과의례쯤으로 여겼다.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음을 확인하는 일 정도로.
어린이집 선생님으로부터 같은 반 친구들 중에 말이 가장 빠르다는 말을 들었던 첫째였기에 다른 걱정을 덜 했더랬다.
둘째 있음 이에겐 통과의례가 아니라, 엄마가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방법을 찾아볼까 고민하고, 나아가 의사의 판단과 의사결정을 위한 실질적 도구다. 의사 선생님은 아직 어리고 호명과 상호작용이 되니 다음번 영유아 건강검진 때 보자고 하셨다.
엄마의 역할이 있을거 같다. 검색으로 이어졌다.
- 걱정의 심연엔, 자폐스펙트럼일까
- 그다음 단계엔, 뇌의 장애 일까. 말만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 아님 단순 언어 지연일까
- 모두 다 아닌, 언젠가 말이 갑자기 트이더라고요. 그때 괜히 걱정했네요. 지켜보기만 하길 잘했어요. 케이스일까.
첫째 뽁뽁이 때 써 놓은 육아일기를 보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만 19개월에 엄마 여기 시곗바늘이 잘 가고 있어요라고 동사 명사 지시대명사 뿐아니라 부사까지 쓰고 있었다고 적혀있다.
유튜브에서 무발화 아이로 검색하면 나오는 언어치료 선생님이 있다.
무지개샘 언어치료라는 분이 올리신 영상 중
무발화/언어 이전기
왜 아직 말을 못 할까 를 보며 아이의 상황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는 “아아”로 거의 대부분의 소리 표현을 하고 있었는데. 이런 아이를 무발화 아이라고 한다. 나는 드디어 아이를 어떤 ‘군’에 포함시켰다.
또 다른 영상에서는 무발화 아이들은 입안 감각이 아주 예민하거나 아주 둔감하다는 얘기를 하셨다.
있음이는 입 안 감각이 둔감한 것이 아니라 예민한 쪽이다. 머리를 감을 때 물이 이마를 거쳐 눈으로 주룩주룩 흐르는데도 눈을 감고 괜찮아하는데 유독 양치질만은 질색을 한다.
영상에서 소개된 구강 운동법을 하기 위해서 볼을 양손으로 잡고 모았다가 벌렸다가도 해보는 데 입이 처음에는 정말 잘 안 모아졌었다. 입 쪽 근육이 단단했다.개월 수가 지나면서 근육이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게 느껴졌다.
친구는 아이가 호명과 상호작용이 약해서 개입을 시작했다. 그동안 마음고생을 많이 하며 센터에 다녔다. 가정에서도 놀이와 경험에 신경을 더 써주었다. 대학병원의 가장 유명하다는 소아신경정신과 교수님에게 진료받기까지 몇 년을 기다렸다. 초등 저학년이 되어서야 단순 언어 지연 판정을 받고 안도했다.
아이들이 크고 나서 진작에 센터를 다니고 집에서 열심히 상호작용 할 걸 그랬다는 후회를 사전에 막아주는 것이 영유아 건강검진의 순 기능이다 싶다가도
결국 때가 되면 다 말을 하게 되고
키를 맞추게 될 아이를
기다려주지 못하게 하는 장치는 아닐까 생각도 했다가
그럼에도 둘째 있음이에게 어떤 노력을 해주면 좋을까. 말문이 트이게 도와줄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는 결론이다 다만,
저마다의 속도로 자라는 걸 허용하기 힘든 이 땅에서
아이의 속도를 엄마가 높여주려고 애쓰기보다는
아이가 자신의 속도로 잘 자랄 수 있게
부족하거나 놓친 부분을 잘 채워주는 엄마가 되겠다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