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그대로, 충분한 당신께

스물네 번째 편지

by 윰세

맞는 걸 고르시오.

틀린 걸 고르시오.

학창 시절에 가장 많이 마주한 문장입니다.


없다 또는 있다.

0과 1로 나누는 사고는 분명하고 효율적이며, 머뭇거림은 미완성으로 분류합니다.

답을 말할 수 있을 때 안심하고, 말하지 못하는 상태를 실패라고 규정합니다.

‘나 자신’을 하나의 숫자처럼 느끼게 하지요.


동양적 사고는 0과 1을 나누는 선을 긋는 대신, 그 사이에 무한한 층위가 있음을 전제합니다.

서양식 사고가 “무엇인가”를 묻는다면 동양적 사고는 “어디쯤인가”를 묻는 것에 가깝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나 서양 철학과 과학에 기반을 둔 공교육을 받은 저는 두 질문 사이에서 자주 멈춰 서고 갈팡질팡 했습니다.


이분법은 교실을 떠나 SNS와 같은 대중매체와 자기 계발 언어 속에서도 반복되고 있었습니다.


‘나 너무 힘들어 ‘라고 말할 때

왜 버거운지, 무엇이 균열을 만들었는지 묻지 않고

‘모든 게 다 잘 될 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해. 마음먹기 달렸어. 불평하지 말고 감사할 걸 찾아봐.‘라고 합니다.


위로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왜‘라는 질문을 아예 차단해 버리는 무서운 언어라는 생각이 듭니다.

고통을 처리하는 손쉬운 단축 버튼이 되어 고장 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볼 시간을 주지 않으니까요.


‘난 상처받았어, 너에게 선을 긋는 게 나를 지키는 선택이야.‘

참고, 눈치 보고,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 문화에서 ‘내 감정을 중시하자 ‘라는 문장은 통쾌함을 줍니다.


하지만 관계의 종결 후에 남는 건 개운함이 전부일까요?

상대의 말에 어디에서 그렇게 들렸는지, 오해가 끼어들 여지는 없었는지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말을 고르고, 기다리고, 다시 묻는 일은 빠르게 포기하게 되고

조율 대신 차단, 이해 대신 거리 두기가 성숙한 선택처럼 포장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쏟아지는 자기 계발서와 받아들이기 쉽게 요약된 전문 용어들이

섬세하고 복잡한 과정이 필요한 내면 치유라는 과정을

빠르게 먹고 치워버리는 소비재로 변모하게 만든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관계는 두 사람이 서로 감당해야 할 문제였는데, 이제는 ‘각자가 지키는 영역‘이 되어버려 0 아니면 1만 선택하는 문제지처럼 바뀐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관계가 얕아지게 만들고 개인의 고독을 깊어지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0과 1 사이에서 불안하게 서성였습니다.


그때 에크하르트 툴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툴레는 에고에 대해 알려주고 지금 이 상태를 알아차려도 충분하다고 위로합니다.


[에고는 오랫동안 조건 지어진 마음의 방식일 뿐이다.

그것은 진정한 내가 아니다.

에고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에고를 알아차리는 일이다.

알아차림과 에고는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알아차림은 현재의 순간 속에 숨겨져 있는 힘이다.]


툴레의 사유는 이분법의 긴장을 느슨하게 만들어주고 서양적 사고와 동양적 사고를 싸우게 하지 않고 나란히 앉혀둡니다.

책을 읽으며 제 안의 균열을 억지로 메우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받았습니다.


월트 휘트먼의 <풀잎>에서도 비슷한 위로를 줍니다.

휘트먼의 사유를 따라가며 모순을 제거하지 않고 서로 다른 걸 그대로 품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내가 존재하는 것 그대로 존재한다. 그로서 족하다.]


‘존재, 그대로 충분하다.‘라는 위로가 참 좋았습니다.


저는 이미 어디에 서있어야 하는지 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서 있는 곳을 바라보며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면 되는 겁니다.


0과 1 사이에 서성이는 저를 실패자로 규정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세상을 살며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어색함과 삐그덕거림은

제 능력 부족이 아니라 서로 다른 체계를 동시에 살아내는 결과인 거겠지요.


당신께서는 0과 1의 어디쯤에 서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존재 그대로, 충분한 하루가 되시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추신> 월트 휘트먼의 언어에서 받은 친절하고 따뜻한 인상을 간직하려 적은 시를 보여드립니다.


<투명한 손> - 윰세


올바른 길을 간다면

투명한 손이 나타나

등을 밀어준다네


사방 곳곳에서 나타나

어깨를 토닥이고

상처를 어루만진다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니

마음을 활짝 열고

넓게 듣고 깊게 들여다보게나


같은 성질의 사람은

공명하며

서로를 끌어당기지


꿈속에서

책 속에서

스치는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는

응원을 보내고 있다네


그러니 눈물 닦고

일어서서

가던 길을 가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