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경의 책씻이] 부모뻘 연인에게 바치는 조사(弔詞), <연애의 기억>
오래전 광고 카피가 떠오른다. 세대차를 부추겼던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당시 내 주변은 소위 N세대(신세대)를 기점으로 갈렸다. 이전 세대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느냐고 했고, 신진 사고에 속하는 나는 그렇게 당연한 걸 아니라고 우기는 익숙한 얼굴들이 낯설었다. 프랑스 장편소설 <연애의 기억>도 움직이는 사랑 이야기다. 물론 그 동기와 방향은 다르지만.
<연애의 기억>은 일단 가볍다. 아무 때나 펼쳐도 쉽게 몰입할 수 있을 만큼. 전체 3부 구성의 회고담 구성인데, 줄거리 전개를 예상할 수 없어 재밌다. 게다가 주인공 케이시 폴은 세상 물정을 거스르는 개성적 캐릭터로 어필한다. 부모뻘 연인-프랑스 대통령 마크롱과 부인 브리지트처럼 스무 살 넘는 차이-얘기여서 그럴 수도 있다.
지역 사회 테니스클럽에서 중년 수전과 첫사랑에 빠진 19살 대학생의 솔직 행보가 소문으로 돈다. 둘은 실제 배척당하면서도 가시적으로 손가락질을 당하지는 않는다. 치부를 드러내지 않는 영국 중류계층 특유의 체면 중시 문화 때문이다. 그 탓에 상황이 악화될수록 사랑의 진실을 위해 거짓의 외피를 두텁게 걸치는 주인공 케이시 폴의 “공감과 반감이 공존”하는 심정이 “슬픈 섹스”에 실려 내 주목거리로 부상한다.
“슬픈 섹스는 모든 섹스 가운데 가장 슬픈 것이다. (… 중략 …) 슬픈 섹스는 그녀의 입속 치약이 달착지근한 셰리주 냄새를 완전히 가리지 못한 상태에서, 그녀가 ‘나 기분 좋게 해줘, 케이시 폴’하고 소곤거릴 때다. 그녀를 기분 좋게 해주는 것은 동시에 너 자신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중략 …) 슬픈 섹스는 네가 그녀와 모든 접촉면이 사라졌다고, 그녀도 너와 모든 접촉면이 사라졌다고 느끼는 상태에서, 이것이, 서로 여전히 연결이, 어떤 식으로든, 존재한다고 말해주는 방법, 마음 한편에서는 결국 그렇게 될 거라고 걱정을 하면서도, 너희 둘 다 아직은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주는 방법이 될 때다. 그때 너는 연결을 강조하는 것이 고통을 늘리는 것과 같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229~230쪽)
<연애의 기억>에서 사랑을 움직이게 하는 건 둘의 정황적 선택이다. 수전은 폭력적 남편으로부터 도망쳐 폴과 동거하다 알코올중독자로 전락하고, 폴은 이런저런 배려와 염려로 “질문하는 것을 금기로 여”기는 관계를 극복하지 못한다. 둘 다 사랑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서로 자타를 방치하고 파괴한다. 그 리얼하고 유니크한 심리 묘사를 따라 가느라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수전의 죽음을 다룬 끝부분까지.
<연애의 기억>은 작가 줄리언 번스가 7학년에 들어서 쓴 거다. 비록 “난파”하지는 않았지만, “통탄할 피해를 입”은 사랑에 인생철학이 맺히고 익는다. 원제처럼 "The Only Story"가 될 수밖에. 예의 그 광고 카피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게 움직인 인생 건 사랑인 거다. 그런 관점에서 프롤로그 같은 소설 첫 문단이 진한 여운으로 다가온다. 사랑에 대한 정의는 빈 괄호로 남겨둔 채
“사랑을 더 하고 더 괴로워하겠는가, 아니면 사랑을 덜 하고 덜 괴로워하겠는가? 그게 단 하나의 진짜 질문이다, 라고 나는, 결국,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