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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Nov 10. 2016

숨은 의도 한 가지

엄마 시간은 길지 않아요


남편의 제주도 워크숍 일정을 접하고 다시 한번 제주도에 가고픈 마음이 일렁였다. 게다가 회사에서는 남은 연차를 되도록 소진하라고 각 팀에 공문을 발송한 상태였다. 그러나 조심스러운 부분이고 처음 일정이 정해질 무렵 워크숍이 끝나는 날 아이와 합류하는 게 어떤지 묻는 나의 물음에 이번엔 제주도에 있는 지인을 따로 만나거나 혼자 머리를 식히고 돌아오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사를 비춰 나는 마음속 제주도 바람을 잠재웠다.  


그러다 우연히 제주도에서 두 가족의 모임을 추진하게 되면서 나의 제주도 합류는 당장에 불이 붙었고 일주일을 남기고 비행기와 숙소를 급하게 예약했다. 새로운 주가 시작되고 이제 출발일을 삼일 남겨둔 월요일 저녁 신랑은 워크숍이 끝나고 다시 인천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을 했다. 언급하기 이른 감이 있지만 그건 본인의 힘으로 일정을 옮기기 힘든 '잡 인터뷰'였기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어렵게 꺼낸 말이었었겠지만 내 마음은 차게 식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당황하거나 화를 내면 나는 굉장히 불리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는 사실이 먼저 떠올랐다. 중요한 일을 망쳐버리는데 일조한 결과를 낳거나 혹은 잘되어도 그 공을 함께 할 수가 없는 굉장히 억울하고도 애매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순간 아이와 덩그러니 놓일 생각에 기분이 다운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올 초 겨울 제주에서 바람과 사투를 벌이며 고생했던 장면들이 하나둘 머리를 스쳐갔다.


아빠가 운전 좀 해주면 나는 아이를 살뜰히 살피며 제대로 구경도 시켜주고 아이와 동갑인 자녀를 둔 가족과 모임도 함께 하며 한껏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오고 싶었는데 이게 뭐람. 신랑은 여행을 취소하라고 말하려다 그 날 오후 추가 비용을 내고 비행기 시간까지 옮겨 확정 지은 사실을 알고 잠시 망설였다. 결국 둘은 많은 생각 끝에 서로 다른 입장 차이만 깊어져 잠깐의 말다툼을 하고 말았다.


안다. 기온은 떨어지고 날씨는 여행하기에 최적의 조건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걱정이 된다. 아이의 짐을 이고 아이를 혼자 케어할 자신이 없다는 사실이. 그래서 망설였다. 과연 이 상황에 여행을 가는 게 맞는 것일까? 하지만 취소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남편에게 식사 약속만 취소해달라고 부탁하고 나는 여행을 떠나겠노라고 말했다. 나와 아이가 고생을 하거나 안 좋은 일을 겪게 된다면 자신의 탓이 될 것만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우리 모자의 안위가 걱정되는 마음은 알겠지만 왠지 급하게 정해진 이 여행을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늦은 밤 다시 얘기를 하고 담담한 화해를 하며 "내가 집에 그냥 있으면 여보 마음이 편하겠지? 난 오기라도 갈 거다. 그리고 이번에 거기 붙어도 축하해주지 않을 거야." 다시 한번 못된 말을 내뱉었다. 그런데 남편은 알지 못한다. 내가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었던, 이 여행을 결국 강행하게 만들었던 그 마지막 숨은 의도 한 가지가 무엇인지.


책 한 권을 후다닥 읽었다.  아이와 그림책과 영어교육에 대해서 말하는 책이었는데 나의 선택을 기다렸다는 듯이 술술 읽히며 그 간 내 생활과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했다. 아이는 어느 정도 컸고 스스로 할 줄 아는 것도 많아지고 이제는 손이 덜 감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라도 육아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마음 그대로 아이를 대하고 있었다. 틈과 짬이 나면 내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고 힘들지 않아도 곧 힘들 거라는 예상으로 힘을 비축해두고 있는 나 자신을 말이다.


그러다 책에서 언급하는 좋은 그림책들이 우리 집에 쟁여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혀 읽어주지 않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렇게 미리 알아두고 읽히지 않으면 큰 일 날 것 같은 마음이었으면서 책들은 처음 꽂아둔 그 자리에 그대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래서 여행을 앞두고 그림책을 정리하다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꼬마 아가씨가 나오는 책'을 차근차근 읽어보며 이 책을 비행기 안에서 아이에게 꼭 읽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 장면이 생생하게 이미지화 되자 조바심이 일었다. 당장이라도 실천하고 싶은 그 마음이 게으른 나를 움직였다. 그렇게 제주의 겨울 날씨도 무섭지 않고 무계획이라도 즐겁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긍정의 도가니로 나를 밀어 넣은 것이다. 다음 날 렌트를 하는 대신 택시를 타고 이동을 하고 숙소 근처에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공룡랜드가 있으니 거길 잠시 들리거나 추우면 실내에서 놀 수 있는 곳을 다시 찾을 거라고 간단한 계획을 일러두며 남편을 안심시켰다.


숙소는 좁은 호텔이 아니라 넓은 거실이 있는 게스트하우스이기에 그 이점을 살려 늦은 점심까지는 아이와 여유를 부리며 책을 읽을 것이다. 집에서 아이가 익숙한 듯 혼자 놀거나 옆집 친구와 놀거나 영상물을 시청했지만 그 패턴을 벗어나 엄마와 온전히 시간을 보내게 할 것이다. 삼일 간 아이와 단둘이 있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것이 시련이 되지 않도록 내 힘으로 방향을 바꿀 것이다.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고 아이에게 집중하는 이 3일이라는 시간이 아이의 앞으로 긴 삶에 자양분이 될 것이란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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