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화 Jun 13. 2018

지금이라도, 지금이어서 참 다행이다.

일본어를 배웁니다. 인생도 배웁니다.

사랑에 빠졌다. 다시 일본어에. 주 2회 수업에 현충일이라서 쉬고, 선거 날이라 쉬고. 휴일이 이렇게 지루하고 원망스럽기도 쉽지 않은데 그 힘든 일을 내가 해내고 있다. 일정을 변경해서라도 그냥 원래 횟수대로 진행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나 혼자 듣는 수업도 아니고 다른 수강생들 일정도 있을 텐데, 무작정 조를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잠자코 있었다. 설사 조른 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도 않겠지만 정말이지 수업 한 번 듣고 또다시 일주일을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수업방식이며, 교재 모두 나무랄 데 없이 훌륭했다. 이런 강좌를 찾아낸 내가 너무 기특해 특급 칭찬해 주고 싶을 정도다. 너무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고, 지루하지 않을 정도의 딱 좋은 그런 수업. 재밌고 좋아서 히죽히죽 웃음이 나온다. 이번 달 수업은 이제 겨우 두 번 진행됐으니 길지 않은 시간이라 짧은 기간에 이리 좋아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앞으로 한동안은 이런 강좌를 들을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희소성이나 한계에서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뭔가에 몰두할 거리가 필요할 만큼 마음이 허해서 그런 것인지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운이 좋은 것이고, 그냥 선생님을 잘 만난 것일 뿐이다. 선생님이 알려주신 휴대폰 번호를 저장해서 이런 내 마음을 전달해볼까. 사, 사랑한다고! 물론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고 있으실 터였다.「수업에서 해보고 싶은 것」이란 질문지에「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하고 싶다고(今と同じやり方で、やってみたいです。)」고 애정을 담아 적었으니 말이다. 물론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서 문장을 완성하긴 했지만!      

선생님 열심히 할게요!

사실 이 강좌를 알게 되기까지 여정이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처음부터 원했던 강의도 아니라 어리둥절 더 애착이 가는 건지도 모른다. 좀 신선하게 들리겠지만 회사 옆 건물에는 모 대학의 사범대가 들어와 있다. 그리고 마주 보는 다른 건물에 동 대학 외국어센터 개소를 앞두고 홍보 차원에서 학생과 시민을 대상으로 무료강좌를 오픈했다. 여러 외국어 강좌 중 베트남어 강좌가 있다는 사실에 베트남 출장을 앞둔 나는 간단한 인사말이라도 배워볼까 등록을 마쳤다. 그게 올 초 2월이었다.     


그리고는 다른 강좌를 알아보기 위해 한동안 홈페이지를 기웃거렸다. 평상시에 쉽게 접할 수 없는 베트남어에 흥미가 생긴 건 약간의 의무감이었지만 즐기면서 배울 수 있는 수업이 있을까 싶어 베트남 강좌 이외에도 추가로 개설되는 많은 강의를 샅샅이 훑어본 것이었다.      


그러다 오히려 중국어보다 더 한 성조 변화에 어마어마한 진입장벽을 느껴 베트남어는 바로 포기를 했었다. 다만 한 가지 수확이 있다면 출장 시 통역비에 부담을 느끼는 업체에게 베트남어-영어, 베트남어-한국어 간 통역의 어려움과 능력의 가치에 대해 피력하는데 엄청난 확신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 정도?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도 결코 적은 수확이라고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새벽반 영어수업을 듣기 위해 신호대기중, 2월 송도의 아침

두 번째로 관심을 가졌던 것은 영어뉴스를 듣고 요약하는 수업이었는데 현지인처럼 보이는 한국인 선생님이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구사하며 강도 높게 진행하였고 이 또한 정말 마음에 쏙 드는 강좌였으나 수강생이 중년 남성분과 나 이렇게 단 두 명뿐이라 엄청난 부담감을 느껴 한 번 듣고 더이상 나가질 못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외국어를 좀 제대로 해보자 싶어 찾게 된 것이 바로 일본어 강좌였다.  

    

겸양어와 높임말에 대한 문법을 제대로 숙지하여 고급반 언저리로 진입하고 싶기도 했고 업무와 접목해서는 일본 전시회 하나를 준비하고 싶었기에 일본어 비즈니스 강좌를 등록했다. 이때까지 모두 오픈강좌였고 제대로 된 개강이 시작되기 전이라 새 학기를 앞둔 학생처럼 설레었다. 그런데 수강료까지 모두 입금하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기다리다 폐강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의기소침해졌다. 시작만 요란했지 결국 뭐 하나 남은 것도 없이 제대로 시작한 것도 없이 시간만 갔다. 그래서 몇 달간 수업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강좌가 3개월씩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한 달 반으로 운영되는 것을 알게 되었고 딱 두 달 만이라는 기한을 두고 좀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도전을 한 것이었다.      

일본에 가고 싶네요 조만간! 반드시!

지금 수업은 원하던 강좌도 아니고, 원하던 레벨도 아니었다. 그래서 초·중급반 회화수업을 들으며 레벨업을 하고 있다는 성취감은 덜하지만 이상하리만큼 만족감은 크다. 제자리에서 빙빙 맴도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 자리를 다지고 다져 지경을 조금씩 넓힌 기분이라고나 할까. 단어 몇 개로 말도 더듬더듬하는 내가 원어로만 진행하는 수업의 대부분을 알아들으니 선생님은 신기하셨는지 얼마나 공부했는지를 물으셨다.    

 

참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이었다. 시간상으로만 따지자니 나는 일본어 마스터가 되어 있어야 했다. 관심을 가지고 히라가나를 외우기 시작한 게 대학교 2학년 때부터이니 찔끔찔끔 끄적거리며 그 관심이란 것을 놓지 않고 온 게 벌써 이십 년이었다. 그런데 내 일본어 수준은 이제 막 일 년 열심히 한 사람이랑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순간 하다 다만 반복해오며 제대로 한 게 없구나 싶었다. 그때 처음 누군가 물려준 그 비디오 영상을 제대로 봤다면, 비싼 돈 주고 산 그 교재를 다 봤다면 이렇지는 않았을 텐데.      


그러면서 참 이런 수업을 좀 더 일찍 만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좀 더 빨리 알게 됐으면, 이런 강좌가 그때 있었으면 정말 좋았겠다 싶었다. 정말 큰 도움이 됐을 텐데, 일본어 실력이 지금보다 한 열 배는 일취월장했을 텐데 하고 아쉬운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인정해주지 않기로 한다. 나는 안다. 이런 생각을 그냥 흘리고 있으면 마음만 답답해지고 공허해질 뿐 나에게 도움이 되는 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지금이라서, 지금이라는 시간에 편안함을 느낀다

그리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건 ‘일찍 만났으면’ ‘빨리 알게 됐으면’ 그런 건 없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만난 게 행운이고, 다른 때가 아닌 ‘지금’ 알게 된 게 진짜 행운이다. 난 분명 지금 아쉬운 만큼의 열성으로 지속해서 공부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못했을 것이다. 내 인생에는 일본어만 있었던 건 아니니까. 그래도 난 그사이 뭐라도 주워 들었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 수업을 이해하기 위해 현재의 나를 만들어 왔으니 됐다.      


작년 부서이동 때도 비슷했다. 내가 새로운 업무에 너무 몰입하고 힘들다는 출장업무도 생각보다 재밌어하니 아쉬운 마음에 남편은 이런 말을 했었다. ‘우리 여보 조금만 더 젊었어도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기특하고 짠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심지어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5년 전 복직 후 지금 부서로 업무 이동이 결재까지 났다 틀어진 사실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한참 무언가 해보려는 사람이 나이와 체력으로 제약을 받을까 싶어 당사자인 나보다 더 마음 쓰는 남편의 마음이 온전히 느껴졌지만 공감의 내용과는 다르게 내 대답은 동의가 아니었다.      


‘내가 그 생각을 해봤다? 내가 좀 더 젊어서 이 일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근데 뒤로 나이를 빼니까, 서른네 살에 여보랑 결혼하고, 서른다섯 살에 유호 낳고, 아이 크는 동안 출장 일 안 해서 다행이고, 그럼 결혼을 더 빨리 할까? 그럼 인천에 더 일찍 와야 했나, 근데 내 나이에서 더 뺄 경험이 없는 거야. 난 대한항공 시험 보고 떨어지고, 공문 들어갔다 언니들 만나고, 강남에 4년 힘들게 다니고 그런 경험 다 소중하거든.’     


남편은 텍스트 상으로 전해진 내 대답을 듣고 잠시 안도하는 듯했지만 남편을 안심시키기 위해 한 말이 아니었다. 아쉽지 않기 위해 합리화한 것도 아니었다. 정말 진심이었다. 4년 간 다른 부서에서 다른 경험을 쌓고 온 지금이 현재 이 업무에 더 적합한 내가 되어 있다고 확신한다.    

몰두하는 배움의 즐거움

일본어 강의를 통해 사색에 잠기며 최근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접한 주민센터에서 영어를 배우시던 어른 생각났다. 즐겁게 몰두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받은 감명의 출처는 배움에 대한 순수한 기쁨이었다. 그 기쁨에 한 발자국 가까이 다가선 기분이었다. 평소에 스스로 정의하던 ‘평생학습’이라는 개념바라볼 때와는 좀 다른 감정이기도 했지만 달음질치는 시험용 공부도 아니고, 수강료 값어치만큼 뭐라도 얻어내고자 하는 그런 마음이 전혀 들지 않는 면에서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부분도 있다.      


당장 시험을 봐서 자격증을 따겠다는 것도 아니다(자랑은 아니지만 목표가 없다). 여행에서 자유롭게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있으면 좋으련만 자신감도 없다). 그런데 재밌다. 그러니 오히려 이 아까운 공부가 헛되지 않게 하고 싶어 복습을 하게 됐다. 얕고 자잘하게 공부하는 내가 스스로 한심스럽지 않고 대견스러워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흔, 마음의 소리를 듣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