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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Apr 22. 2016

나만 몰랐던 일

기억하며 살게요-


아주머니가 돌아오셨다. 사무실을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가 근 1년 만에 다시 우리 층으로 복귀하신 것이다. 층별로 근무자 수나 공간을 사용하는 성향들이 달라서 어디는 좀 더 고되고 어디는 좀 수월한 탓에 서로 간의 불만을 해소하고자 두 달에 한 번씩 로테이션을 한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몇 년 간 소소히 받은 사랑과 베풂을 뒤로한 채 그동안 아주머니의 안부도 여쭙지 못하고 지냈었다. 아이가 아프고 어린이집에 적응을 잘 못한다는 이유로 많은 것에 손 놓아 지내온 시간들이었다. 여전히 환하게 웃으시며 잘 있었냐고 인사해주시는 아주머니를 뵈니 그 간의 세월이 무색한 듯 아주머니와의 일화들이 어제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주머니는 나에게 그냥 청소를 해주시는 분이 아니었다. 그냥 이모 같고 자주 못 보는 엄마를 대신해 옆에 계시는 분 같았다. 더운 날이면 식혜가 책상 위에 올라 있었고 갑자기 직접 만든 약식도 맛볼 수 있게 해주셨다. 아주머니들과 함께 점심을 해 드시려고 준비하신 부침개를 본부 전체에 돌려주실 때면 꼭 나를 통해 전해주셨다.     

      

가끔은 지나가듯 사람들이 물었다. “왜 유화 씨한테만 그렇게 하시지? 신기하네.” 사실, 나도 그 이유를 잘 몰랐다. 내 어디가 예뻐서 그런 건지 단순히 편하고 말이 잘 통해서 그러신 건지. 고마운 마음은 당연하지만 가끔은 너무 많이 받아 죄송하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밖에서 점심을 함께 하자시기에 각자 데려온 동료와 함께 넷이서 식사하던 중이었다. “난 제가 처음 여기 온 날을 잊지 못해요. 나는 돈 벌러 처음 나와서 모든 게 낯선데 유화 씨가 날 보고 추우시죠. 하면서 커피를 한 잔 갖다 주더라고. 말도 걸어주고. 그게 얼마나 고마운지. 나는 내 뒤로 사람이 들어오면 꼭 데리고 가서 말 걸어 주고 차 한 잔 타 줘요. 우리 유화 씨가 저한테 그렇게 해준 것처럼요.” 갑자기 꺼낸 말씀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었고 너무나 작은 친절이었는데, 정말 별 거 아닌데.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한 잔의 커피는 마법이 되어 돌아왔다. 

그게 뭐라고 저렇게 마음에 담아두시고 좋은 기억으로 간직해주셨을까? 나는 고맙다 생각만 하지 제대로 전하지도 못하고 사는데, 나도 남들의 친절 기억하면서 살아야지. 정말 감사하면서 살아야지. 내가 해준 건 다 잊어도 다른 사람들한테 받은 건 갚아가야지. 언제나 후하게 돌아오는 걸 알면서도 몇몇 인간관계로 상처를 받기도 했던 시기에 그 갑작스러운 말은 그 어떤 책의 구절보다도 큰 위로가 되었었다. 그리고 나는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다시 돌아오신 아주머니는 또 책상 위에 밑반찬을 잔뜩 올려놓으셨다. 깻잎지며 김치볶음에 새우장까지. 없던 입맛도 돌아오게 할 만큼 맛깔난 반찬에 나는 무엇으로 갚아야 하나 정말 초라해지는 자신을 발견했다. 주부가 되어보니 어릴 적 먹던 반찬들이 그냥 뚝딱하고 나온 게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되어 그 반찬을 바라보는데 이상하게 슬픈 기분이 들었다.   

   

반찬을 해주신 아주머니께도 키워주신 할머니께도 지난 시절이 아련해서 슬프고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잘 먹을게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커피 한 잔의 힘이 이렇게 클 줄 알았다면 백 잔도 더 탔을 텐데, 아니 앞으로도 얼마든지 탈 텐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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