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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Apr 24. 2016

엄마의 말이 도달하는 시간

엄마 시간을 주세요

    

초등학교 때였다. 엄마 지인 댁에 다니러 갔다가 다섯 살 정도 된 그 집 손녀딸이 ‘자기가 꽂아야할’ 드라이기의 코드를 내가 꽂았다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억지를 쓰며 우는 모습을 봤다. 그 뒤로 나는 아이에 대한 트라우마 비슷한 게 생겼었다. '아이란 정말 제멋대로구나.'    

  

정말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행동, 그 자체였다. 그땐, 그 당시엔 그랬다. 아이를 무척 버릇없이 키운다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기억은  꽤 오랫동안 잔상으로 남아 어린 아이를 대하는 내 태도에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엄마가 된 지금 과거의 그 아이를 제대로 아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아이에게 안전을 이유로 안 되는 것이 너무도 많은 시기에 허용 범위 내에서 코드를 꼽고 뺄 수 있는 일은 얼마나 재밌고 특별한 일이었을까. 

    

칭찬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아구 잘하네. 또 해봐. 어서 해봐." 그래서 나만 하고 싶고 내가 하고 싶고 다른 사람이 할 수 있을 때는 자기가 허락해준 뒤라야 할 것이었다.

     

이해의 폭이 커지는 것이 부모 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아이를 이해하려면 과거의 다른 아이의 행동까지도 감싸 안은 다음에야 나는 내 아이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을 터였다. 

    

아이에게 제대로 된 취미 하나가 생겼다. 바로 아침마다 엘리베이터 닫힘 버튼을 신나게 누르는 것이다. 현관에서 엘리베이터를 불러오는 첨단시설을 이해할 수 없어 집 밖을 나서자마자 누가 눌렀는지 어리둥절해 하는 아이는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닫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낚아챘다. “엄마, 내가 닫았어요.”    

  

그런 아이에게 그 재미난 것을 뺏기는 일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으리라. 그런데 그렇게 지하주차장까지 도달하는 날은 그 행복한 기분이 끝까지 유지되지만 다른 층에서 이웃주민이 추가로 탑승을 하고 닫힘 버튼을 눌러야할 순간이 오면 엘리베이터 안은 소음으로 가득해졌다.      


다시 누르는 것도 본인이 해야 했던 것이다. 눈치 빠른 주민 분은 아이에게 몰랐다며 미안하다고 다시 눌러보라고 권했지만 이미 닫힌 문의 버튼을 누르는 것은 아이에게 의미 없는 일이었다. “내가 내가. 다시 다시. 내려 내려”를 연달아 내뱉은 아이는 아이대로 안달이 나있고 우리는 우리대로 곤란해졌다.    

  

그런 날들이 계속 이어졌다. 누가 탈까 신경이 쓰였다. 바로 달래보기도 하고 남편의 호통에 눈을 질끈 감기도 했으며, 그 짧은 순간이 갇힌 공간 속에서 영원처럼 느껴졌다.      


아이야 너는 공공예절을 배워야 할 때가 온 것 같구나


오래지 않아 아이는 버튼 판 앞에 바짝 붙어 다른 사람이 누를까 싶어 경계태세를 갖추던 모습을 걷어냈다. 엄마 옆이든 엘리베이터 구석이 되었든 편한 마음으로 그저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 엘리베이터의 본연의 기능에 익숙해졌다. 

          

다시 만나는 날이면 기억해주고 오늘은 네가 누르라며 아이에게 기회를 주는 이웃의 따뜻한 배려, 그리고 엄마의 설명과 조금의 기다림 아이를 결국 변화시켰던 것이다. 당연하지만 아이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누르게 해줬어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귓속말을 전한다. 아이가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았단 사실을 나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거야. 그리고 다른 사람이 눌렀다고 해서 울거나 하지 않는 거야.” 라고 했던 엄마의 말을.    


엄마의 가르침이 아이에게 자리 잡히는 시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의 습관으로 형성되는 시간,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길다면 긴 시간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폐가 되고 불편한 시간이었겠지만 아이의 인생에서 한 달은 너무나 짧은 기간이며, 그 기간 동안 사과는 부모의 몫이란 생각이 든다. 가르쳐주지 않은 일로 무조건 혼내기만 하는 것은 정말이지 반칙이다.    

  

아이가 먼저 누르게 해도 될까요?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단 한 번도 모른 척 어떻게든 상관없는 척 넘어가지 않았다.      


“어! 오늘은 너가 안 눌러?” 몇 번 아이를 만났던 이웃 주민이 아이의 변화를 알아채 주셨다. 아이도 다른 사람의 배려를 마음에 담고 자기가 받은 배려를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고 엄마는 오늘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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