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단상

20210423

by Logan

다수의 초면인 사람과 접하는 일은 분류하자면 스트레스에 가깝다.



특히나 상대방이 해당 공간에 있는 이유가 오로지 나를 평가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그 강도는 높아진다. 술자리에서 만난 사람도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한데, 면접은 그 사람에게 잘 보여야 할 이유가 있고 상대도 그 역학관계를 파악하고 있는 상황인 셈이다. 비유하자면, 나는 저 사람들을 암살하라는 특명을 받은 킬러인데 암살 대상들이 나의 신원을 파악하고 이에 대해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시간의 길이와 상관 없이 면접을 마치고 나면 늘 격렬한 전투를 치른 듯한 피로감이 들고는 한다.



그러나 면접과 같은 경험은 익숙해지는 부류의 것이기도 하다. 나의 커리어가 급선회하는 일은 없기 때문에 레쥬메의 황야에서 챌린징할 수 있는 영역도 한정되어 있고, 매 면접마다 피드백을 받다 보면 자연스럽게 해당 부분이 보완되기 마련이다. 또한, 회사를 다니는 연차가 길어질수록 사측에서 생각하는 요소에 대해 더 익숙해지고, 비록 정형화된 정답은 존재하지 않더라도 해당 포지션에 맞는 이상형의 인물을 그려내기라는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진정성 있는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철저히 잘 짜여진 페르소나를 작성하는 것과 그 일관성을 자아내는 것의 난이도가 높은 탓도 있지만, 면접은 일종의 통과 의례이고 향후 근무하게 된 이후에도 이 가상의 인격을 유지하는 것은 타고난 배우가 아닌 이상 어렵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대답을 생각함에 있어서 어떤 챌린징이 들어올지 뻔함에도 불구하고 눈을 질끈 감고 어쨌든 나를 노출하기로 결정한다. 이것도 하나의 용기라면 용기이다.



면접은 크게 보면 피칭의 한 부류라고 볼 수 있는데, 이 피칭도 거듭되다 보면 익숙해진다. 중/고/대학교 수업 시간 학우들 앞에서 발표하는 경험부터 지금과 같은 직장 면접, 직장 내에서 준비한 리포트에 대한 발표 또는 나의 사업 아이템의 매력성을 한없이 냉담한 VC에게 어필하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마이크를 잡으면서 손 떨림의 진폭은 줄어들고 주위를 살피는 시야를 늘어난다. 굳이 비유하자면, 백날 사격 훈련했던 훈련병보다 실제 전장을 겪은 병사가 상대적으로 빨리 베테랑이 되는 것과 같다. 그래도 실탄이 내 몸에 적중하면 여전히 아프다. 탄도를 알고 있더라도 곤란한 질문은 여전히 어렵고, 마치 정교한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처럼 답을 골라야 한다. 같은 내용을 말하더라도 상대의 눈을 바라보며, 나는 지금 머릿속 어딘가의 대본에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현장에 있다는 인상을 준다. 나의 대답에 따른 상대의 표정, 볼펜 돌리는 모습, 메모장에 급히 적어내리는 모습 등의 피드백을 주시하며 답변의 영점을 조정한다.



면접은 결국 상품이 나 자신인 세일즈이다. 처음부터 해당 상품이 자사에 필요한 것인지, 적절한 밸류에이션은 어느 정도인지 이미 견적을 내고 나온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는 일이다. 아무리 절륜한 입담이 있어도 맞지 않는 제품은 반려된다. 30평 에어컨 두 대의 가정집에 에어컨을 한 대 더 팔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또, 상품이 팔리지 않으면 지금 나와 마주하고 있는 클라이언트들은 결국 남이다. 일단 그들의 집구석에 자리를 배치받고 나서야 사후 관리의 프로세스가 생겨나는 것이다.



불꽃같이 할 말을 쏟아낸 세일즈맨은 이내 면접장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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