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의 언어를 알아야 하는 이유(상)

연주자에 대한 믿음

by NewGoNus

나는 1년에 40회 정도, 공연에 따라

여러 역할을 맡으며 무대에 오른다.

그중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는 10회 내외로 오르며,

독주 악기나 성악 가수와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것도

8회 이상이다.

그동안 이름만 들어도 아는 연예인, 뮤지컬 가수와

업계의 여러 유명 선생님들과 협연을 했는데,

지난 몇 번의 연주에서 느낀 점을 적어보려 한다.


오케스트라 연주라는 협업에 있어서

일의 성패는 어디에 달려있을까?

지금 생각나는 걸 마구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존중, 믿음, 요구, 판단, 명분, 명예, etc.


연주는 그저 악보에 충실히

따르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라기엔

관객을 위해 양질의 소리로 만들어내기에

아직도 너무도 다양한 요소들이 부재하다.


얼마 전 협연자와 리허설 중에 일어난 일이다.

함께 한 곡을 주욱 연주해보더니,

음향감독에게는 본인이 원하는 만큼의

(해당하는) 악기에 대한 음량을

높여줄 것을 포함해 이것저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오케스트라 쪽으로 돌아보더니

이곳저곳에 대한 요구사항을 이야기했다.

충분히 납득할만한 사항이었지만,

몇몇 부분은 살짝 날이 선 요청도 있었다.


활을 쓰는 악기들의 싱크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고,

음정을 정확히 맞춰달라면서,

최악의 경우

‘실제로 공연을 중단하고 그 부분부터

다시 시작’할 수도 있으며,

‘이 부분의 음정이 깨끗이 떨어지지 않으면

이 음악을 잘 아는 사람들에게

아주 창피한 일’이 될 것이라는

은은한 경고와 같은 요구를 했다.


리허설 과정은 살벌하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충분한 긴장을 타며 리허설이 진행되었다.


실제 연주는 어떻게 되었냐고?

협연자는 연습과 다른 애드리브(리허설 때와 비교해서

모두가 느낄 만큼 분명한 차이가 났었다) 덕분에

그가 지적한 곳만 그대로 되었고, 리허설 때 잘 맞았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싱크가 살짝씩 어긋나는 일이 벌어졌다.


며칠 동안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스스로 곱씹으며 끊임없이 분석해 보았다.

결국은 한 가지 원인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연주자에 대한 믿음'의 부재다.


이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그저 알게 된 사실(나는 빠른 시간 안에 스스로 깨달았다고 생각하게 된)은,

당장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연주자들이

결국은 해낸다는 것이다.

첫 연습 때 협연자든, 지휘자든

연주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이들이 연주자들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처음 모였을 때부터 이미 모든 걸 완벽히 준비하는

연주자는 두 세 부류인데,

음악가들이 존경하는 지휘자의 리허설일 때,

본인이 시향 같은 큰 단체의 단원일 때,

연주자 개인의 성향이 완벽주의에 가까울 때이다.

한 번은 첫 리허설 때 큐사인을 보지도 못하거나,

아예 시작도 못했던 단원들을 만난 적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큰 자괴감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

준비가 아예 안되어 있었던 거다.


“저를 위해 연주하지 마시고요. 내일 오실 관객분들에게 미리 들려주신다고 생각해 주세요.”

이 한마디에 소리의 질이 아예 바뀌어버리는 걸 듣고 두 번째 자괴감에 빠진 적이 있다. 하하..


한 곳에서 세후 월급 200 이상 받지 못하는

프리랜서 음악가들은,

여러 연주 기회의 총합을 200 이상으로

만들기 때문에 그리고,

한곳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여러 곳에 분산해야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준비의 질적인 부분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하나의 연주회에 할당된

두세 번의 리허설 안에서,

특히나 합주를 하면서

준비의 질을 급속도로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지휘를 하면서 맞이하는 첫 리허설을

중요한 포인트만 짚고 넘어가는 편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의외로 연주자들에게 굉장한 믿음을 보여줄 수 있는 행동이라고 믿는데,

이는 연주를 통해 그들이 보여주는 연주의 질에서

내 믿음에 대한 보답을

온몸으로 수없이 느껴본 경험을 미루어 알 수 있다.



업계의 언어를 알아야하는 이유(하) 에서 계속…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모르는 거 투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