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眼)이 지배하는 세상

내 주변 지인들이 나에게 중요한 이유

by NewGoNus

나는 국외에서 유학하는 동안 한국인 커뮤니티에

스스로를 알리지? 않고 오로지 내가 하는 일에만

몰두했고 그러기에 충분히 바빴다.

(처음엔 그 이유는 모른 체 한국인과 컨택을

되도록 피해야 한다며 지인이 신신당부했기 때문이다)


빈 국립 음악대학교에서 공부했을 때의 일이다.

친구들과 음악과 철학에 진지하면서도

즐거운 대화를 나누면서

지식과 교양이 쌓여가는

고상한 재미와 즐거운 시간을 가지다가

잠시 화장실을 들렀다.


세 대의 세면대 위에 붙은

커다란 통 거울 위에 웬

코가 작고 낮은 검은 머리의 동양인이

화장실로 들어서는 것이다.

영점 몇 초는 그게 누구인지 인식하려는 순간

그게 내 모습인 걸 인지하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입을 벌리고 황당하여 놀란 내 모습에

걸음을 잠시 멈추었던 기억이 난다.


나와 함께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던

그들의 모습이 나에게 씌워진 걸까?

순간 내가 인종을 심하게 가리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처음 알게된 탓인지

그날은 특히나 생각이 많아졌다.


그들(서양인)의 고전 작품을 무대로 올리는데

나의 생김새가,

그들과는 다른 생김새가

이 문화를 향유하고 소비하는 이들에게

적잖이 불편할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클리셰, 고정된 이미지와 관념이

긍정적인 이미지가 아닐 수 있지만,

관련 산업이 지속되려면,

산업에서 생산된 상품이 지속적으로 팔리려면

구매자의 입맛과 클리셰, 고정관념은

고려되어야 하고 정말로 중요한 마케팅 요소다.


겉모습을 극복하고

그 산업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며 계속해서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도 업계에서의 일이지

업계가 미치는 바운더리를 떠나면

다시 대중의 클리셰(여기서는 인종적인 문제)에

노출된다. 동네 아저씨라는 존재로서는

업계의 인정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친구와 주변사람들이 나에게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오랜 시간 나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내가 몰랐던 내 모습까지도 알고 있는,

존재를 증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실존하다(Exist)의 라틴어 어원이

'바깥에 서다(ex-sistere)'라는데

나를 타인이 바라주는 것만큼

좋은 피드백이 있을까 싶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한국에서 생활을 시작한 지난 5년간,

진정 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 스승과 지인들이

안타깝게도

세상을 떠났다.


대부분이 지병으로 명을 달리했다.

내 입장만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누군가 나를 증명하기에 앞서서

내가 스스로 일어나 성장해서

그들이 나에게 어떤 존재였고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증명할 수 있어야 함을 깨닫는다.


이 글을 통해

최근에 세상을 떠난,

내 친척인 오페라 가수였던 그를 포함해

아무것도 없었던 나를 믿고 이끌어 주셨던

은사님 세 분의 평안과 저승에서의 안녕을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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