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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wgonus 아빠토마스 Aug 24. 2022

멍 때리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

내 정신적 '디스크 조각모음'

4월부터 시작된 지휘자로서의 '몸을 쓰는' 바쁜 일정은 9월이 시작할 때쯤 소강상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원래, 몸을 과하게 쓰고 회복되는 시간보다 온 신경과 정신을 소진하고서 회복하는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린다.


돈을 쓰면 인력의 도움을 받거나 쓴 돈의 가치와 비슷한 물건을 얻게 된다.

그러나 보상의 개념으로 어떤 것도 얻지 못하는 시간이 지속되면 몸과 정신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어쩌면 의지조차도) 마음을 무겁게 하거나 몸을 무겁게 하는 방식으로 나를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아직 몸과 마음이 무거운 적은 없지만 나중을 위해서라도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요즘 느끼고 있다.


내가 4개월 동안 얻은 것은 무엇일까?

일단 몸이 가벼워졌다. 4월에 비하면 지금 6kg이 줄었는데,

운동과 식단 조절 없이 마음껏 밤에 군것질도 하면서 체중이 늘지 않아서 한 때 걱정 아닌 걱정을 한 적이 있다. 끊었던 과자의 세계에 다시 발을 들인 것도 일을 하게 되면서인데 물론 과자로 과식을 하지는 않는다.


체중, 체지방이 없어진 것으로 사실 굉장히 만족한다. 4월 첫 달부터 지휘 리허설이 많아서 1주일 3일 3시간씩 했더니 벨트를 잘라서 줄일 만큼 배가 들어갔다. 5월까지 총 리허설 시간이 50시간이 넘어서자 몸이 점점 가벼워지더니, 8월이 된 어제는 지휘를 하는데 셔츠가 자꾸 밖으로 삐져나와서 대학생 연주자들이 뻔히 보는데서 뻔뻔하게 셔츠를 스윽 바지 안으로 넣는 노련함(?)도 생겼다. (몰라, 나 막 40대 시작인 아저씨라서 괜찮아...라고 위로해본다;;)


어제는 예술고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차로 날아가서 다음 리허설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15분이 지났다. 계산해보니 어제 하루만 7시간을 리허설 시간으로 보냈더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내 차 '대우 토스카'도 "주인님, 근데 저 100킬로미터 밖에 못 갈 것 같아요" 하길래. 주변에 가격이 괜찮은 주유소에 들러서 가득 넣어 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금요일 강연을 위해 우리 앙상블 대표에게 전화했다. 항상 그의 충고가 참으로 감사한 이유는 나이를 떠나서 나를 참으로 객관적으로 바라봐준다는 거다. '형, 지금 학교일, 오케스트라 일, 앙상블 일 많은데 조금 멈추고 쉬면서 재정비하시는 건 어떨까요? 형이 책임감 때문에 그런 건 저도 아는데 일을 할 때마다 매번 그렇게 형을 갈아넣기만 하면 형은 무엇을 얻게 될까요? 요즘 같이 일하면서 형을 보면 재미를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앙상블 일 잠깐 쉬셔도 되니까 일을 조금 줄이면서 재정비해보는 것도 생각해보세요.'


그래 어쩌면 위험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하고 취하는 게 아직은 서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내가 원하는 거 했다. 밤에 일하지 말고 오랜만에 좀 자자! 해서 씻고 바로 누웠다.

항상 일찍 깨는 습관이 있어서 중간에 살짝 깼지만 오랜만에 7-8시간을 잤다. 머리가 엄청 개운한 건 아니지만 어제보다 몸이 좀 회복되는 것 같았다. 


아침도 9시에 먹고 일을 위해 집을 나서서 커피 전문점에 앉았다.

창문 밖에 보이는 아파트 상가의 병원들, 법률사무소, 약국, 전자담배, 스킨 테라피 간판을 멍하니 보는데 머리가 편안해졌다. 컴퓨터 화면, 오케스트라, 운전 중 보았던 도로 위 차들만 보다가 잔뜩 햇살을 받은 '정물'을 보니 건물의 단단함도 느껴지고 절대로 쓰러지지 않을 것 같은 안정감도 느껴지니 마음이 좀 나은가 보다. 그러다 이내 이런저런 생각 잡생각이 드니 머리가 더 편해졌다. 뇌는 그동안의 정보들을 정리하고 있었고 나는 그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사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그렇다. 쓰면서 정리하고 위로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나에게 말해주고 있는 거다. 어차피 앞으로 남은 일들 잘 해낼 것을 아니까.


언제든 멍 때리게 해 줄게. 내 의지만큼 너의 상태도 중요하니까. 네가 있어야 내가 있으니까.

커피나 한 두레박 더 길어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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